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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리 Mar 0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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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나는 노약자석에 앉아있었습니다.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던 한 남성이 나에게 눈치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 코를 손으로 가리키며 나에게 뭐라 뭐라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뜻을 알 수가 없어 살짝 당황하고 있었는데 그 남성(노인)이 드디어 소리 내어 말했습니다. “마스크 올리세요!” 그제야 나는 그 남성이 나에게 말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앉아있는 한 여성(노인)에게 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여성은 마스크를 조금 내린 상태에서 핸드폰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곧바로 두 사람은 설전을 시작했고,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듣기 민망한 말들을 5분 동안 듣고 있어야 했습니다. 처음 남성이 “마스크 올리세요”라고 이야기했을 때 여성이 “예, 알겠습니다”라고 응대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럴 수 있었을까라고 스스로 질문해 보았습니다.



오늘 아침 미국에 있는 아들과 통화를 했습니다. 아들도 며칠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답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데 한 남성(백인)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답니다. 아들이 “마스크를 써 주세요”라고 부탁(?)했는데 거절당했답니다. 아마도 몇 차례 서로 언짢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한 모양입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미국 영화에서 보았던, 그러다가 총을 뽑는  광경이 상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충고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말고 관리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고.



친구들과 층간 소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의 어머니가 치매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막 고함을 치셨답니다. 본인은 잘 몰랐었는데 동네 사람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관리사무소 로부터 불편 신고를 접수 후 사태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셨답니다. 층간소음으로 이웃 간에 일어난 심각한 사고를  가끔씩 뉴스에서 봅니다. 당사자들 간에 직접 해결하려 하다 문제가 더 커지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관리사무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늘 아침 아내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어제저녁에 먹은 김치찌개는 너무 싱거웠으니 아침에는 좀 더 쫄이라고. 예전 같으면 이 대목에서 나는 기분이 상했고 화를 낼 타이밍입니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그런 아내의 자극에 무덤덤합니다. 아내의 입맛은 그것이 싱거웠고 아내는 그것을 솔직히 이야기한 것뿐입니다. 내가 기분이 상했던 것은 아내가 맛있다고 말해주기를 기대하는 나의 바람이 충족되지 않음에 대한 나의 반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입맛이 그런 걸 어쩌겠어요. 쫄여달라면 알았다 하고 졸여 주면 되지 기분까지 상할 것 없잖아요? 기분 상하면 나만 손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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