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쓴 글을 소개하며 내 자랑을 좀 하려 합니다. 딸은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을 했고, 코로나로 인한 장기간의 재택근무 및 출산 때문에 현재 애틀랜타에 있는 시댁에서 1년 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시부모님의 도움으로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경험한 느낌과 생각의 글을 몇 편 모아 “엄마는 처음이라서”라는 제목의 작은 에세이집을 만들었습니다. 그중 ‘환상의 짝꿍’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으며 너무나 가슴 벅차고 고마워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환상의 짝꿍’은 남편에게 주는 메시지로 “당신은 나 같은 아내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자신의 장점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무던한 성격이 주위의 걱정 어린 시선과는 달리 일 년 이상 자기네 세 식구가 시부모님 댁에서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에게는 한국인의 정서가 있고, 관계를 중요시하기에, 교포인 데다 실용적인 남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모님의 미묘한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가 지금 내가 소개하려는 내용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내게 마음이 깊고 현명한 부모님이 계신다는 거야. 그게 왜 나의 장점이 되느냐고 하겠지만 우리의 결혼이 유지되는(?) 데엔 내 부모님의 공도 꽤 클 거야. 내가 누구 편이냐고 하소연을 할 정도로 엄마 아빠는 나보다 더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시고, 나도 그럴 수 있게 도와주시거든. 그리고 난 테오에게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있는데, 이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의 근거는 내가 좋은 부모를 가졌다는 거야. 내가 내 부모와 맺은 관계를 내 자식에게 대물림한다는 말, 내 부모와의 관계에서 경험된 대로 자식을 대한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걸 테오를 키우면서 피부로 느껴. 나의 부모님은 우리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언제나 우리를 민감하게 관찰하고,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고, 대화를 통해 생각과 마음을 나눠주시는 분들이야. 그리고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공부하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이고. 그런 부모님을 보고 자란 난 테오에게 좋은 엄마가 될 거야. (중략)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질 모르겠지만 네게 나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네가 깨닫는 날이 올 거라고 믿어. 그날을 대비해 고마운 마음 미리 받을게 :)”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나는 딸과 함께 어느 유명인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아들이 인터뷰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데 아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것을 눈치챈 딸이 “나도 아빠 존경해”라고 말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그렇게 말해 주는 딸이 고맙기는 했지만 내가 스스로 자랑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딸이 자기는 좋은 부모를 만났기에 자기도 좋은 부모가 되리라 자신한다는 말이 내 삶 전체를 자랑스럽게 만들어 주네요.
나의 40대 초반,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방황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성공이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내로부터 “당신하고 함께한 시간이 즐거웠어요, 고마워요”, 그리고 아이들로부터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어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번 생의 내 삶은 성공한 것이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그 후 나에게는 하나의 좌우명이 생겼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려거든 좋은 남편이 되어라, 그리고 좋은 남편이 되려면 좋은 아빠가 되어라.”라는.
딸의 이 글은 자기 남편을 향한 말입니다. 나는 사위가 이 글을 보고 자기 아내가 얼마나 멋진 여성인가를, 또 자신의 장인/장모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가를 빨리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위는 한글로 쓰인 이 글을 스스로 읽고 이해할 능력이 모자랍니다. 나는 그가 이 글을 꼭 읽고 이해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사위가 읽을 수 있도록 영어로 번역하기로 하였습니다. 내 비록 영어 능력은 빈약하지만 사위가 반드시 이 글을 읽어야 한다는 바람이 강했기에 도전할 수 있었고, 일주일의 씨름으로 영역을 했고, 그리고 딸에게 보냈습니다. 물론 보내기 전 아들에게 최종 검수를 받았으며 나름 괜찮다는 아들의 칭찬도 들었습니다.
‘아내는 내 삶의 동반자다. 난 그를 존경과 신뢰로서 대할 것이며, 모든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다. 아이들은 삶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난 그들을 관심과 배려로서 대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삶을 찾아가는데 함께 할 것이다.’
20년 전에 작성한 <나의 사명서>의 일부 내용입니다. 아이들은 삶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고, 아이들과 함께했던 나의 시간은 기쁨이었고 보람이었습니다. 딸에게서 너무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내가, 내 삶이 자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