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두리 Apr 19. 2022

꿈 보다 해몽

밤 12시가 다 된 시각에 동네 마트(슈퍼)에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상기된 얼굴로 숨 가쁘게 들어왔습니다. 여인은 복권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마트에서는 복권을 판매하지 않기에 없다 하니 가까운 곳에 복권 판매점이 있느냐 물었습니다. 근처에 한 곳 있으나 문을 닫았을 것이라 하니 여인이 매우 난감해하였습니다. 어제 길몽을 꾸어 복권을 사려하는데 오늘 안으로 꼭 사야만 효력이 있느냐 묻길래, 잠깐 생각한 후 내일 사도 괜찮을 것(?)이라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 여인의 안도한 듯한 표정이 지금도 또렷합니다. 돌아서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좋은 꿈을 꾸었기에 저리도 절박할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아무쪼록 내일 복권을 잘 사고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나도 어제 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호랑이 한 마리가 10마리 정도의 새끼 호랑이와 함께 있었는데, 새끼 몇 녀석은 어미의 젖을 먹고 있었고, 다른 녀석들은 어미의 등을 오르락거리며 놀고 있었습니다. 나는 참 아름답고 평화로운 광경이라 생각하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놀던 새끼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가자 어미 호랑이가 성큼성큼 걸어서 내 곁으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나는 지금 내 옆에 있는 것이 호랑이구나 라는 것을  알면서 두려움이 일었습니다. 새끼 호랑이와 놀던 그 인자한(?) 어미가 설마 나를 잡아먹지는 않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새끼들에게 을 먹인 후라 배가 고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호랑이에게 애써 친근함을 표하려 호랑이의 목을 나의 손으로 살살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호랑이는 가만히 있었지만 나의 긴장감은 계속되었고 그러면서 잠이 깨었습니다. 잠을 깬 나는 직감적으로 그 꿈이 길몽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내일 복권이나 한번 사 볼까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어제 꾸었던 꿈을 기억하며 며칠 전 마트에서의 여인이 생각나 혼자 웃었습니다. 나는 평소에 꿈을 많이 꾸는 편입니다. 그리고 내가 꾼 꿈에 관심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꿈을 의식과 무의식이 대화하는 장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오는 동안 나의 무의식은 나에게 여러 방법으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으며 그 메시지 전달 통로의 하나가 꿈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무의식은 필요하면 항상 우리에게 꿈을 통해 메시지를 줍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의 메시지를 바르게 읽을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의 메시지는 언제나 상징적이며 은유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꿈에 대한 호기심이 많습니다. 잠들기 전 오늘은 어떤 꿈을 꿀까 궁금해합니다. 나(의식)는 나의 무의식을 인정하며 존중하고 신뢰합니다.

    

나는 나의 꿈을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호랑이가 새끼들과 함께 노는 모습을 평화롭게 바라본 것은 요즘 딸이 아침저녁 영상으로 보여주는 손주를 보며 딸이 엄마가 되어 아들과 함께 즐겁게 사는 모습을 바라보는 행복한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호랑이는 나에게 위협적이지 않았고, 나도 호랑이에게 친근함을 보이려 했습니다. 호랑이는 나의 무의식이며 나는 무의식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호랑이와 나의 관계는 세상과 나의 관계를 말합니다. 세상은 나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며, 약간의 긴장은 있지만 편안하게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그 약간의 긴장은 세상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것이며 그것을 즐기라는 메시지로 해석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자기가 생각해도 좋은 꿈같답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 있을까? 당신은 복권 살 사람도 아니고, 또 지금은 태몽 꿀 상황도 아니고, 게다가 당신은 특별히 좋은 일 안 일어나도 잘 살 수 있잖아! 그리고 당신에게 가장 좋은 일이란 우리 애들이 잘 되는 일 아니겠어? 그 꿈 딸에게 주는 거 어때? 마침 그 꿈이 호랑이 꿈이고, 우리 딸이 호랑이띠잖아!”


나는 오늘 아침 딸에게 내 꿈을 주었습니다. 딸은 꿈은 사야 효과가 있다며 굳이 꿈 값을 치르겠다 하네요.  


딸아! 앞으로 너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은 다 아빠 꿈 덕분이야, 알았지!               


(5월 31일 봉은사길 산책중 우연히 발견한 벽화)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