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GPT)
손원평의 장편소설 “아몬드”에 나오는 내용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엄마는 내게 본격적인 ‘교육을 시작했다. 내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건 그저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임을 넘어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무서운 표정으로 훈계를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예컨대 소리친다, 고함을 지른다. 눈썹이 위로 솟는다..... 이런 게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내겐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하나의 현상에 그 이면의 뜻이 숨어 있다는 걸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세상을 곧이 곧대로만 받아들였다. 엄마는 색종이에 여러 개의 문장을 쓴 다음 커다란 전지에 그것들을 일일이 붙였다.
차가 가까이 온다 – 몸을 피하거나, 가까워지면 뛴다.
사람이 다가온다 - 부딪히지 않도록 한쪽으로 비켜선다.
상대방이 웃는다 - 똑같이 미소를 짓는다
전지에 적힌 글들은 무궁무진했다. 또래 아이들이 구구단을 외우는 동안 나는 왕조의 연표를 외듯 그것들을 외워서 알맞은 항목끼리 짝을 지었다. 엄마는 정기적으로 나에게 시험을 치르게 했다. 보통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습득할 ’ 본능적인 규범들을 나는 그렇게 하나하나 암기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합니다. 특히 위험한 것은 공포심이 없어 생명유지의 본능적 방어기제인 두려움을 잘 모릅니다. 의사의 진단은 감정 표현 불능증(알렉시티미아)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엄마의 지속적인 노력과 희생, 가까운 사람들의 관심과 걱정으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치료) 해 나갑니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생뚱맞게 인공지능(AI)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요즘 인공지능(AI),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뭐지? 나는 AI와 함께 어떤 편리함을 구할 수 있지? 현재 AI의 한계는 무엇이고 어느 선까지 기대할 수 있지? 나도 App. 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지? 등등입니다. 나는 컴퓨터 관련 전공자가 아닙니다. 나는 70년대의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했고, 기계설계 비즈니스를 했으며, 대학원에서 창업과 관련된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말하는 생성형 인공지능(GPT)은 대형언어모델(LLM)입니다. 대단한 연산능력과 학습능력을 가진 녀석(Transformer)에게, 기존에 존재하는 가능한 많은 정보와 지식을 학습시켰습니다(Pretrained).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질문하면(Prompt), 이 녀석은 자기가 학습한 것을 기반으로 우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성(Generative)합니다. 그런데 이 녀석의 학습방법이 수학이나 과학처럼 논리적으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배우듯이 문장을 암기합니다. 마치 소설(아몬드)에서 주인공이 엄마로부터 교육받듯이. 언어를 배우듯이 학습(Large Language Model)한다 해서 이 녀석을 대형언어모델(LLM)의 생성형 인공지능(GPT)이라 말합니다.
다시 소설(아몬드) 속의 내용입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친구들이 새로운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보여주며 설명할 때 그 애들이 진짜로 하고 있는 건 설명이 아니고 ‘자랑’이라고 했다. 그럴 때 모범 답안은 ‘좋겠다’였고, 그게 뜻하는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 생겼다거나 잘했다는 식의 긍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고마워’ 혹은 ‘이 정도 가지고 뭘’이 맞는 대답이었다. 엄마는, ‘고마워’는 상식 수준의 답이고, ‘이 정도 가지고 뭘’은 약간의 여유를 부리는 태도로 내가 더 멋진 아이로 보일 수 있는 답변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언제나 제일 간단한 답을 선택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합니다. 질문자의 전후 상황을 고려하고, 무슨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는지를 파악하여, 그 상황에 맞는 대답을 합니다. 인공지능 GPT는 질문하는 사람의 숨겨진 의도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왜 원하는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냥 질문의 텍스트(문장)를 읽고, 그 질문(문장)의 대답에 적당한 단어와 문장들을 찾아보고 최종적으로 가장 적합한 문장을 구성하여 알려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의) 인공지능 GPT는 아주 똑똑한 8살의 어린 아이다”라 생각하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GPT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합니다. 적어도 2가지는 확실합니다. 하나는 지식과 경험에서 각(여러, 전)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그 전문성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는 우리의 몫입니다. 코칭 스킬에 코칭 철학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코치이는 모든 답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코치는 코치이가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파트너가 되어준다.” 코치는 코치이에게 체계적인 질문을 통하여 코치이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줍니다. 코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능력입니다. GPT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질문을 체계적으로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질문 한 만큼만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GPT가 가지고 있는 기능입니다. 문자(Text)로 주고받던 대화가, 이제는 음성으로, 이미지로, 동영상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그 기능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능들은 앞으로 우리의 삶(일)을 더 쉽게, 더 재미있게, 더 폭넓게 해 줄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 GPT와 어떤 관계로 함께 갈 수 있을까? 나는 GPT와 맺을 수 있는 관계 3가지 그룹을 생각해 봅니다. 첫 번째 그룹은 GPT의 지식과 기능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그룹입니다. 구글, 오픈 AI, MS, 네이버 같은 그룹입니다. 두 번째는 그런 그룹들이 개발한 상품(제미나이, 챗 지피티, 코파일럿, 클로바x 등)을 일상(개인) 또는 일(회사)에 이용하여 덕(효과)을 보는 그룹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개인(회사)이 GPT를 자기의 분야에서 쉽고 재미있게,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중간 다리 역할의 제품(App, 웹 등)을 개발하는 그룹입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모두가 두 번째 그룹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조금 더 GPT에 관심과 흥미를 준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마지막 그룹에서 인공지능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며 기대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는 만큼 질문할 수 있고 질문한 만큼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면 호기심이 생기고, 호기심이 있어야 질문하고, 질문해야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시야는 넓어지고, 더 많은 것이 보이니 또 호기심이 생기는 선순환 속에서 우리는 계속 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