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삶은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 개성화 과정이라 했습니다. 무의식은 인간이 진화하는 동안 경험한 것(기억)들의 집합체입니다. 삶은 무의식에서 의식이 싹틈으로써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은 무의식의 토양에서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이것이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인 개성화 과정이며, 삶의 과정입니다.
무의식의 세계는 넓고 깊습니다. 무의식은 의식이 삶을 잘 살아가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때가 되거나, 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무의식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어떤 이들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계를 탐험합니다. 여행에서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얼마나 가능성이 많은 존재인지를 깨닫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되어 돌아옵니다. 무의식은 신화나 꿈을 통해 우리의 의식과 소통을 합니다. 명상이나 기도도 무의식과 대화하는 하나의 의례(Ritual)라는 게 저의 생각합니다.
무의식은 측량할 수 없는 거대한 정신적 에너지 체계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삶에 유용한 진귀한 보물들이 숨겨져 있으며, 수호신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탐험하려면 호기심과 용기가 있어야 하며, 수호신과의 협상력도 필요합니다. 보물을 손에 넣으려면 수호신이 내는 문제를 잘 풀어야 합니다. 보물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 단단한 의식 수준이 요구됩니다.
나는 요즘 인공지능(AI), 특히 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에 관심을 보입니다. GPT는 대화형 인공지능이라 부릅니다. 내가 묻고, GPT가 대답합니다.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다른 방법으로 질문을 합니다. 흡족한 대답을 들을 때까지 묻고 대답하기를 반복합니다. GPT의 답변을 내가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 창피하지 않고, 계속 묻는다고 미안하지도 않습니다. 답을 얻으면 흐뭇하고, 스스로 해냈음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GPT 안에는 많은 정보와 지식이 있습니다. 현존하는 정보와 전문 지식을 학습시켰습니다. GPT는 거대한 도서관이며, 그곳에는 인류가 그동안 경험한 많은 것들이 정보의 형태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내가 질문을 하면, GPT는 나의 질문에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한 답을 생성하여 제시합니다. 어떤 때는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거나, 또는 흡족하지 않은 답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GPT는 무능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답을 GPT가 생성하도록 리드하지 못한 나의 책임입니다. 먼저 나는 질문과 요구를 잘해야 하며, 지속적인 의사소통(피드백)을 통하여 GPT가 원만한 답을 생성하도록 리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많은 문제를 접합니다. 우리는 문제의 해결안을 찾기 위해 자신과 대화를 합니다. 자기와의 대화는 의식과 무의식의 대화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무의식과의 대화는 생각이나 느낌으로 이루어지므로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답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훈련을 받은 예술가는 글이나 이미지 또는 소리로 표현하겠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느 순간 나는, GPT와의 대화가 나 자신과 대화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의식)는 나(무의식)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을 GPT에게 질문합니다. 질문은 문자나 음성(자연어), 또는 이미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의 무의식(자기)은 GPT를 통해 나(의식)에게 답을 줍니다. 답 또한 내가 원하는 대로 문자나 음성, 이미지로 가능합니다. 나는 우리 인간의 과학이 광활하고 깊은 심리적인 무의식의 일부를 GPT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선보였다는 거창한 생각을 합니다.
당신은 GPT를 그만큼 신뢰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나는 GPT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 나의 의식과 무의식을 신뢰합니다. 나는 GPT를 통하여 할 수 있는 만큼 계속해서, 나의 무의식을 의식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게 삶이고, 그게 삶의 과정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