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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Dec 07. 2020

58. 그거 봤어? _ 김학준

HugoBools_우고의 서재

58. 그거 봤어? _ 김학준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다 한눈에 바로 들어오는 책 제목이 하나 있었다. 


 "그거 봤어?"


 학교든 회사든 사람들과 대화를 쉽게 시작하기에 이 보다 좋은 질문이 있을까?

 무언가를 함께 본다는 것. 마치 우리 전 세대가 마을에서 하나밖에 없는 철이네에 모여 김일 선수가 박치기로 상대편을 때려눕히는 장면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것. 또는 월드컵 때 거리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유럽의 강호를 상대로 손흥민 선수가 믿을 수 없는 결승골을 넣는 것을 보며 함성을 지르는 것. 그것은 단순히 함께 본다는 것을 넘어 함께 공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처럼 온 가족이 함께 거실에 둘러앉아 TV를 시청하는 것을 보기 힘든 세상에서 "그거 봤어?"라는 질문은 더욱 그 의미 갖게 된다. 하루에도 수 없이 생산되는 미디어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우리는 사실 '보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물론 댓글을 달거나 실시간 채팅을 통해 소통하긴 하지만 그것으로는 분명한 한계에 놓인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건강하게 본 것을 서로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




 김학준 CP가 쓴 <그거 봤어?>는 기존의 TV라는 매체를 통한 콘텐츠의 틀에서 벗어나 온라인 플랫폼(유튜브 등)을 통해 시청자에게 다가가는 콘텐츠를 제작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스로 TV 콘텐츠가 아닌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게 된 것을 좌천 혹은 유배 등의 표현으로 이야기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보면 새로운 길을 개척한 개척자이자 선구자라 할 수 있다.


 반백살, 냉동인간으로 불리는 박준형이 젊은 세대들의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는 '와썹맨'과 선넘규라 불리는 선을 넘는 남자 장성규가 여러 일자리를 체험해 보는 '워크맨'은 유튜브 상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와썹맨은 구독자 232만 명을 워크맨은 38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콘텐츠가 되었다. 누가 이를 보고 좌천, 유배라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온라인 콘텐츠 제작이라는 뜬구름 앞에 김학준 CP가 섰을 때는 정말 막막했을 것이다. 유튜브 방송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연예인 그 누구도 쉽사리 섭외되지 않았다. 작은 제작비는 오히려 실패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줬지만, 인력 또한 제작비에 따라 넉넉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 세계의 가장 큰 소비자인 1020 세대들의 생태계를 파악하는 것과 제작된 콘텐츠에 가장 큰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시청자인 2030 세대들의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와썹맨과 워크맨은 1020 세대를 통해 빠르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퍼져나갔고, 2030 세대들은 자신들의 현실을 알아주는 콘텐츠의 등장에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이 책을 읽으며 방송을 만들어 내는 기획자는 아니지만, 문화예술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획자로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상상도 노력이라는 말은 특히 와 닿았다. 콘텐츠는 책을 찾고, 사람을 만나고, 다른 콘텐츠를 보는 것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지만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상상'하는 것이다.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의 최종 면접 때 받았던 질문이 떠오른다. "지원자는 축제나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어떻게 하나요?"


 "저는 평소에 타 지역 혹은 타 기관에서 운영하는 축제들을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축제들이 비슷할지는 몰라도 똑같은 축제는 없기 때문에 늘 배우고 참고할만한 것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기획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책상에 앉아 있으면서, 밥을 먹으면서 또는 자기 전 침대에서 시작됩니다. 그 시간에 주로 상상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을 떠올리다가도 그 속에서 중요한 키워드를 발견하게 되고, 막혀 있던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상상은 저만의 기획의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기획을 하는 단계뿐 아니라 실행과 운영의 단계에서도 상상은 큰 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쉽게 일을 풀어갈 열쇠로 활용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들 때도 똑같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상상은 결코 망상(妄想)이 아닌 만상(滿想)이다.





 또 하나 좋았던 책의 내용으로 '벗어나기 위해 버텨라'는 메시지였다. '벗어난다'와 '버틴다'는 의미적으로 서로 상반되는 지점에 위치한다. 상식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만둬라' , '벗어나지 않기 위해 버텨라'라고 쓰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 메시지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내가 이 일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현실은 이 일을 미워하게 만들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벗어나기 위해 버텨'야 한다. 일을 일로만 하는 사람들은 부조리한 것과 비효율적인 것이 있어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편리함과 권력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바꾸려 하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어 발언권이 생길 때까지 버티고 버텨야 한다. 그래야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비로소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분명 구조와 권력에 핏대를 세우며 싸우는 것에 아낌없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자리에 올라가자 똑같이 구조와 권력이 되어버리는 것을 목도해 오면서, 버티는 것이 정말 벗어나는 것일까 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초심'이라는 단어가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오늘도 다짐을 한 스푼 추가한다.





 정리하며, 이 책은 사실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 보다 오히려 더 요즘 세대를 이해하는 책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서점에 깔려 있는 '90년대생' 들에 대한 책은 기성세대가 "너희는 이런 사람들이야!"라는 낙인을 찍어버린 책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품격 있는 꼰대 짓으로 볼 수도 있다. 사실 90년 대생들은 어떤 범주에 넣고 데이터화 하기 힘든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변하고 변하고 계속 변한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니까 잘 알 수밖에 없다.


 기획자라면, 어느 정도 90년 대생들이 어떠한 특성과 기질을 가지고 있는 지를 특정 짓고 가는 것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정확히 정해진 스탠다드는 없다. 상황에 시기에 맞는 그들의 기호와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것을 아는 것은 결국 90년 대생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지겨운 '라떼는 말이야'로 경험에서의 자기 이야기만 주야장천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물론 듣기만 하면 그것 또한 반발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90년대생이 어렵다 어렵다 하는 것이다. 적절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원래 소통이라는 말의 정의 자체가 그런 뜻이 아니었던가.

 

 나도 이제 2021년도 각종 사업계획 초안을 잡아야 하고 기획안들을 정리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지금 직장에서의 1년은 코로나 19 때문에 변수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없는 한 해였다. 내년도 사업도 큰 틀에서는 올해와 비슷한 흐름으로 조심스럽게 시작해야 할 테지만,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대상이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싶다. 그리고 올해는 나무를 보며 달리기 바빴다면, 내년에는 숲을 보며 나무를 심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고 배워야 할 것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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