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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Dec 28. 2020

59. 브루클린의 소녀 _ 기욤 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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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브루클린의 소녀_기욤뮈소


 겨울은 기욤 뮈소의 계절이다. 그의 책이 매 해 12월에 주로 발간되어 그런 건 지, 소설 속 배경에 겨울과 눈이 많이 등장해서 그런 건 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소설은 내게 겨울로 다가온다.

 기욤 뮈소를 처음 접한 게 2006년 발간된 <구해줘>부터였으니 벌써 14년째 그의 팬임을 자처하고, 읽을만한 소설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들으면 늘 가장 먼저 그의 이름을 입 밖에 내곤 한다.

 16권. 내가 읽은 기욤 뮈소의 책 권 수다. 세상에 읽을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한 작가의 책만 16권을 읽었다는 것은 정말 팬이 아니면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 평균 월 독서량이 0.8권임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한 작가의 책을 16권 읽은 것은 꽤나 자랑스러워해도 될 것 같다.






 이번 소설 <브루클린의 소녀> 역시,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펼쳐지는 일종의 수사극, 추적물, 스릴러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소설이 달랐던 점은 기욤 뮈소 특유의 판타지적 기법 없이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게 해주는 알약, 다른 차원으로 가는 등대, 과거와 이어주는 노트북 등 기욤 뮈소는 언제나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선사하곤 했다.

 이번 소설은 지극히 현실에 기반해 스토리가 전개되고, 오히려 그 지점이 사건과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인물들의 감정에 충실히 이입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생각한다.






 기욤 뮈소는 과거를 중요시하는 작가다. 내가 아는 한 모든 그의 소설은 과거의 사건이 중심이 되어 현재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거의 프로이트만큼이나 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지점이 나는 좋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은 동일하게 적용되며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그래서 과거를 다룬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다룬다는 것이며, 모든 사람들의 인생은 모든 소설로 이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 <부르클린의 소녀>는 결혼을 앞둔 라파엘과 안나가 펜션에서 좋은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라파엘은 안나에게 "결혼을 하려면 서로에게 말 못 할 비밀이 없어야 해"라며 그녀에게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한다. 안나는 극구 그런 거 없다고 하지만 라파엘의 집착에 이기지 못하며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당신은 감당하지 못할 거야"

 안나가 보여준 사진은 놀랍게도 불에 탄 시신 세 구. 그리고 안나는 자신이 한 일이라 말한다. 라파엘은 그 사진과 지금 일어난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펜션에서 나가 차를 타고 도망친다.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펜션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약혼자 안나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안나가 프랑스로 돌아간 것까지 확인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는 그녀. 실종 신고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에게 같은 아파트 이웃이자 전직 강력계 형사였던 마르크가 그녀의 아파트에 함께 가보자고 한다. 아파트에 그녀는 없었지만, 위조된 여권과 엄청난 현금이 들어있는 노란색 스포츠 가방이 발견된다. 심상치 않은 일임을 직감한 라파엘과 마르크는 그녀의 과거를 조사한 끝에 그녀가 이미 미성년자 납치 및 감금 사건 끝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는 '클레어 칼라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욤 뮈소 답게 이후의 사건은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마르크는 프랑스에서 라파엘은 미국에서 각자 '클레어 칼라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마르크는 형사 입장에서 상황을 분석하고 있는 반면, 나는 소설가의 상상력을 발휘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라는 라파엘의 말처럼, 형사인 마르크는 상황을 분석해야 하고, 소설가인 라파엘은 상상력을 발휘하며 시너지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중반부를 지나 후반부로 가면서 형사도 증거와 실마리가 없을 때는 상상력을 발휘하며 사건을 재해석했고, 작가는 상상력에 기반해 상황을 분석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들을 검증해나갔다.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다. 아니, 애초에 형사든 작가든 같은 결의 사고와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말이 완벽한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채로 많은 의미를 함유하며 끝이 나는 게 정말 우리의 현실을 너무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는 분명 따로 존재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사건에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때론 가해자보다 더 많은 마음의 짐을 지고, 더 많은 속죄를 행하며 인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또한 군중은 제2차, 3차의 피해자를 쉽게 만들어내며 또 피해자들끼리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 가해자는 아이러니하게 법의 보호를 받으며 그 모습을 여유롭게 지켜보기도 한다.

 결국 피해자만 그리고 피해자를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들만, 바닥이 어디인지 가늠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기욤 뮈소의 <브루클린의 소녀>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들을 위해 던져진 낙하산이자, 군중 속에 숨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자들을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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