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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Jul 28. 2020

숲이라는 단어가 없었던 때로부터

2020.7.26. 성수동 '그린랩' 방문기

Ⅰ. 서울숲


 2019년 발표된 산림청 자료에 의하면, 전국 도시림(도시지역 내 산림) 비율은 46.71%라고 한다. 이 중 수도권(서울·인천·경기)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은 전국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비율을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서울 24.9%, 인천 27.17%, 경기 32.55%로 나타난다. 우리가 지내는 일상의 1/4 정도만 숲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서울숲. 이 단어를 접할 때면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마음을 두드린다. 하나는 숲에 이름을 붙일 만큼 희소한 것이 되어버린 안타까움이다. 다른 하나는 서울이라는 메가시티에 마지막으로 지켜내고 싶은 숲에 대한 애정의 마음이다. 


 "서울에 있는 몇 안 남은 숲이라는 뜻과 서울이 커다란 숲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창을 통해 바라본 서울숲






Ⅱ. 비어있는 시간을 소비하는 세상


  서울숲과 바로 인접해 있는 성수동을 방문했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힙'한 동네다. 카페, 레스토랑, 독립서점, 공방 등 젊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 오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진 곳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성수동을 찾은 가장 큰 이유는 '그린랩'에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린랩은 도시의 번뇌를 떠나 나만의 리추얼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공간을 소개하는 글에 적힌 문장이 나의 호기심을 이끌어냈고, 지체 없이 예약을 했다. '그린랩'은 예약제·시간제로 운영하고 있어 옆 사람으로 인해 내 시간을 방해받을 염려가 없었다. 적당히 떨어져 있는 좌석 간 거리는 코로나 19 시대를 통해 느끼게 된 지나치게 가까운 인간대 인간의 물리적 거리에 대한 피로감을 덜어주었다.


적당한 거리감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공간


 해소된 건 거리감을 통한 안정감뿐만 아니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수많은 소리들로부터 해방되었다. 현대사회에서 공간을 이용한다는 것은 그 공간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함께 소비하겠다는 암묵적 동의이다. 그리고 그 소음은 백색소음을 넘어 소음공해로 다가올 때가 많다. 이쯤 되니 우리의 오감 모두가 공간을 이용한다는 이유로 공간에 잠식당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쯤 비어있는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린랩은 그런 점에서 '비어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현대인들로부터 '비어있는 시간을 소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1시간에 17,000원이라는 금액이 다소 비싸다 여겨질 소지가 충분하다(금액 안에 차와 말린 과일 그리고 편지지 등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가성비'는 구시대의 유물로 저물어가고 있다. 내가 지불한 금액 대비 내 마음의 만족도가 높다면 그게 합리적인 소비인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처음 입장하고 10분간은 이렇게 좋은 공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을 독려하는 공간에 놓이니 일종의 '금단' 현상이 발생했다. 이러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빠르게 몇 장의 사진만 남긴 후 카메라를 가방 깊은 곳에 넣었다. 비로소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린랩에서 제공해준 '리추얼 세트'






Ⅲ. 숲이라는 단어가 없었던 때로부터 


 통창을 통해 바라보는 서울숲, 공간에 흐르는 새 지저귀는 소리, 맛있는 차와 말린 과일 그리고 힐링되는 책 한 권. 이보다 더 완벽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고 '리추얼 세트'에 들어있던 종이 원고지를 조심스레 꺼냈다. 무릎에 종이를 올리고 머릿속 추상적인 것들을 연필로 구체화시켜 나갔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도 모르겠는 나의 마음을 가장 명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과정인 것 같다. 특히 필기구를 통해 써내려 갈 땐, 도구의 끝을 통해 내 세포까지 종이에 스미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마음을 한가득 표현해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을 땐 여전히 종이와 펜을 집어 들게 된다"


 코로나 19 유행 이후로 자연에 대해 새로운 감정이 생겼다. 인간이 활동을 최소화하자 지구가 회복되어 갔다.  황사 없는 봄을 보낸 마지막이 언제였던가? 그뿐인가 멸종위기 종들은 자연수정에 성공했고, 인도에서는 육안으로 히말라야 산맥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자연과 생명체에게 인간이 '코로나 바이러스'같은 존재였던 것이 자명하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며 가장 안전하고 풍족한 삶을 영위해왔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자연과 분리되어 행복할 수 없다. 여름철 마스크 착용이라는 형벌을 통해 인간은 그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는 중이다. 이 모든 마음을 담아 원고지에 짧은 글을 한 편 썼다. 그리고 '숲이라는 단어가 없었던 때로부터'라는 제목도 붙여 보았다.

숲이라는 단어가 없었던 때로부터 _ 정효민 쓰다


"숲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 우리는 이곳을 무어라 불렀던 것일까?

숲과 나의 구분이 없어 나와 그저 동일시하지는 않았을까? 하여 

나도 숲의 한 부분으로 그렇게 횡으로 연결된 삶을 살아가지는 않았을까?

나를 통해 숲을 보고, 숲을 통해 나를 보아, 우리는 결국 하나였으리라.

자 자신을 무어라 부르지 않듯, 숲도 무어라 부르지 않아도 되는 나 자신이었으리라"





Ⅳ. 마무리하며


 "한국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뭘까? "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여러 단어들이 뇌리를 스쳤다. 그중에서도 비움과 쉼이라는 단어는 가장 깊게 박혔다. 인간이 욕망에서 비롯된 소유의 동물이라면, 한국인들은 그 정점에 위치한다. 공유와 임대의 가치를 정면에서 부정하며 오로지 내 것인 것들에 집중한다. 임대아파트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조롱거리가 되고 고급 아파트도 자가인지 전세인지를 따져 계급을 나눈다. 캐피털로 구매한 차량에 대해서는 부러워하면서 리스차량은 부끄러워한다.


 한국인들은 끊임없이 채운다. 주말에 약속이 없는 사람은 '아싸'라는 프레임이 씌워진다. 토요일 오후까지 늘어지게 자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직장인들을 괴롭히는 '자기 계발'은 퇴근 후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아 간지 오래다. 신조어 '플렉스'는 겨우겨우 '미니멀리즘'이 태동되던 한국사회에 다시 한번 '맥시머니즘'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원흉이 되었다. 채움은 결국 쉼과는 멀어지는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건강하게 쉬는 방법을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 앞에 노트북이나 문제집 같은 게 없을 경우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한국인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팔자 좋네"라는 말.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아 갈 때, "젊은 놈이 앉아서 가네"라는 말. 스스로도 쉬는 법을 잘 모르는 민족이 다른 사람의 쉼 마저도 무시해버리니 건강하게 잘 쉬는 방법이 이 땅에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오죽하면 멍 때리는 걸로 대회를 만들어서 쉼으로도 순위를 매겨버리는 나라일까.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비움과 쉼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면, 돈을 주고서라도 이 두 가지를 소비하기를 권하고 싶다. 꼭 '그린랩'에서 그럴 필요는 없다. '템플스테이', '북스테이' 같은 곳에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고 지방의 한적한 한옥 대청마루에 앉아 하늘색이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것을 느껴도 좋겠다. 


조금 더 행복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 이번 주말은 '비어 있는 시간'을 소비해 보는 건 어떨까?


행복을 위한 내 삶의 비어 있는 시간






※매거진 '현재였던 수많은 과거에 대해"는 일상에서 만난 순간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작성하는 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시로 업데이트될 수 있습니다. 업로드와 동시에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꼭 구독 신청을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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