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효민 Nov 30. 2020

가을은 찬란히 아름답다.

무언가를 잃고 무언가를 얻는 삶에 대하여

  코로나 19 확산으로 2020년의 모든 사업이 가을로 몰렸다. 문제는 개인적인 일들도 함께 내 일상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공과 사. 그야말로 내게는 공간이 없는 가을이었다.


 일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뒤로 하더라도, 개인적인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10월 24일 토요일, 나는 할머니를 하늘 나라로 보내드렸다. 오랜 기간 약해진 몸을 이끌고 살아오셨지만, 정신만은 누구보다 강하셨던 분이 한 순간 위독해져 사랑하는 가족들의 곁을 떠났다. 


 군 시절부터 삶의 힘든 순간마다 나는 할머니를 의지했다. 대부분의 순간 전화기 너머의 할머니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것도 참 서럽게 울었다. 할머니는 손자의 흐느낌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나는 참 나쁜 사람이다. 힘들던 시기가 지나고 내 인생 최고로 평온한 시기가 왔다. 나는 더이상 할머니를 찾지 않았다. 슬픔과 좌절을 할머니에게 모두 던져버려놓고, 기쁨과 행복은 할머니와 함께 나누지 않았다. 내가 웃는 소리를 그 누구보다 기다리셨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끝까지 손자를 위한 배려를 잊지 않으셨다. 가뿐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할머니는 고통스러운 그 순간은 버티며, 내 마지막 고백을 다 들으신 후 떠나셨다.


 "할머니가 기도해준 덕분에 좋은 짝꿍을 만났고, 할머니가 기도해준 덕분에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할머니가 기도해준 덕분에 나를 신뢰해주고 함께 일하는 것의 가치를 아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늘 힘들 때만 할머니를 찾아서 미안하다. 그래도 나는 할머니를 너무 많이 사랑했다. 그리고 할머니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할머니는 인천대교가 바라다 보이는 바다를 통해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셨다. 북한에 있는 고향땅과 가까운 곳이니, 그리운 그곳도 스윽 돌아보고 그토록 사랑하는 하나님 품으로 가셨을 것이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헤어진 할아버지와도 반가운 재회를 하셨을 것이다.


 나는 찬란하게 아름다운 가을날. 무조건 적인 내 편, 할머니를 잃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나는 생애 첫 전세로 이사를 했다. 인천에 올라온 지, 약 2년 4개월만에 월세를 탈출했다. 사실 할머니 장례와 회사의 살인적인 공연 스케줄때문에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이사를 해서 무척이나 힘들었었다. 마음과 몸 모두 정상이 아닌 시기였다.


 2년 간의 전세계약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집이 생겼다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컸다. 1.5룸을 전전하던 내게 거실을 포함해 2룸이라는 공간은 너무나도 소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나만의 서재를 갖게 된 행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 삶을 지탱해주던 가장 큰 요소인 독서와 글쓰기가 철저히 무너졌던 지난 몇개월동안 솔직히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았었다. 하지만 서재에 앉아 글을 써내려가는 지금, 참을 수 없는 미소가 입가에 번지고 있는 것을 보니 지금의 나는 정말 행복하다는 증거겠지.



 이 곳에서의 2년은 내게 어떤 시간이 될 지 궁금하다. 부산의 사직동에서 보냈던 시간, 인천의 청학동에서 보냈던 시간 보다는 분명 안정적인 상태로 더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연재를 멈췄던 <이름 없는 사원>과 <새겨지다, 간판>의 원고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가 왔다. 더불어 첫 산문집을 준비하며 일상의 글조각들을 모으는 작업도 함께 해나가야 겠다.


 나는 찬란하게 아름다운  가을날, 무조건 적인 안식을 주는 나만의 공간을 얻었다.






#할머니 #죽음 #집 #전세 #전세집 #부동산 #서재 #집꾸미기 #가을 #일 #여행 #여행에세이 #에세이 #인문학 #역사 #간판 #미얀마 #수필 #산문집

매거진의 이전글 숲이라는 단어가 없었던 때로부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