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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Jan 08. 2021

고독사는 멀리 있지 않다

단절이 죽음이 될 수 있는 사회에 대하여

고독사는 멀리 있지 않다


 1월 7일 대한민국에는 폭설이 내렸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 역시 엄청난 양의 눈이 내렸다. 경상북도의 최남단, 쌓이는 눈이라고는 몇 번 보지 못하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는 이렇게 펑펑 내리는 눈은 괜스레 무척이나 감성적이고도 몹시나 낭만적인 마음을 가지도록 만들어 버린다.


 엄청난 눈이 내리고 있음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알려드렸더니 당신들도 아들이 보고 있는 하얀 것을 함께 느끼고 싶었나 보다. 불효자는 갑자기 효심이 지극해져 눈 오는 모습을 보내드리고 싶어 졌다. 이사 온 전셋집 옥상. 그곳에 올라가면 눈으로 가득한 세상을 휴대폰에 담아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맨발, 츄리닝 바지, 후드티 바람으로 나는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처럼 내린 모습 그대로의 눈이 가득 쌓여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그대로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과 내 발자국을 가장 먼저 남기고 싶은 두 가지 욕망이 공존한다. 결국 나는 최소한의 발자국만을 남기기로 하고 난간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카메라 어플을 켜 이리저리 눈으로 가득한 동네를 담아냈다. 미션을 완수하고 이제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려 찍힌 발자국을 역으로 밟아가며 옥상문으로 향했다.


 불행은 늘 예상치 못한 순간, 예상치 못한 당혹감, 예상치 못한 강도로 다가온다. 도어락의 열림 버튼을 누른다. 띠리릭- 잠금이 해제된다. 손잡이를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누른다. 그리고 그 힘 그대로 문을 당겨본다. 텅-


 어라?


 문이 열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어딘가에 걸려서 문이 당겨지지 않았다. 침착하자. 다시 문을 원래대로 닫고 잠금 버튼을 눌렀다. 삐빅- 문이 잠겼다. 그 상태 그대로 당겨본다. 아예 미동도 하지 않는 문. 그래 문은 잘 잠겨있다. 다시 해제 버튼을 누른다. 띠리릭- 도어락은 분명 해제되었다. 문고리를 다시 한번 내리고 당긴다. 텅- 텅텅텅- 이제 장난이 아닌 현실 상황이라는 것에 영 15도를 기록하는 날씨 가운데 식은땀이 흘렀다.


옥상에 고립되어 버리다


 휴대폰을 꺼냈다. 배터리가 5% 남았다. 날씨가 추우면 배터리가 빨리 닳고 언제 전원이 나갈지 모른다는 것은 현대인이라면 모두 한 번은 경험해봐서 알 것이다. 짧은 시간 가장 먼저 연락을 취해야 할 리스트를 머릿속에 그렸다.


 우선 여자 친구에게 옥상에 갇혔음을 알려야 했다. 그래야 내가 폰이 꺼져 연락이 닿지 않으면 119든 112든 신고를 해줄 수 있다. 바로 카톡으로 짧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1시간 후에도 연락되지 않을 경우 신고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두 번째, 빌라에 유일하게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는 '세대 대표'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 가장 가까이서 가장 빠르게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꽤나 긴 시간 흘러나왔다. 불안해지던 찰나 연결이 되었다.


사장님... 저 402호 입주자인데요. 죄송한데 저 옥상에 갇혔어요. 옥상에 오셔서 문 좀 열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 왜 이 시간에 옥상에... 잠시만 기다리세요.


 세대 대표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귀신 같이 휴대폰이 방전됐다. 나는 이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조난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5분 정도 기다렸을까. 칼바람이 부는 날씨 가운데 실은 50분처럼 기다림의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제가 문 한 번 열어 볼게요.


 삑삑삑삑 삐리릭- 텅! 텅텅텅! 역시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 너머의 세대 대표도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둘이서 한참을 실랑이했다. 하지만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문제는 온몸이 몹시나 빠른 속도로 식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 너머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입주민이 올라온 모양이다. 셋이서 힘을 모았다. 물론 머리도 함께 모았다. 하지만 문은 역시나 철옹성 같이 잠겨져 있을 뿐. 세대 대표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옥상에 문이 안 열려서요. 혹시 도움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아마도 다른 입주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올라오신 다른 입주자도 여러 가지로 시도를 해보지만 역시나 미동도 하지 않는 문. 나는 몹시나 지쳐갔다. 옥상에 있는 창고에라도 들어가서 눈과 바람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움을 주고 있는 분들을 두고 창고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내 쪽에서 해야 할 일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앞서 도움을 주던 여자 두 사람과는 달리 마지막에 올라온 남자 입주자는 힘을 쓰기 시작했다. 기술적으로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어깨를 이용해 문을 밀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렇게 몸무게를 실어 문을 쾅하고 쳤을 때, 드디어 문은 열렸다.


머쓱한 나. 황당한 얼굴의 세 사람. 정말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공존했다. 이사 오고 이렇게 첫인사를 나누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순간 가장 버티기 힘든 건 추위도 피로도 아닌 부끄러움이었다. 힘으로 억지로 연 문이었기에 줄을 이용해 바람에 문이 열리지 않도록 고정만 시켜두고 각자의 집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고 남자 입주자가 말했다.


 신고식을 이렇게 하네요. 올해 좋은 일 많으려나 봐요. 추웠을 텐데 얼른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씻고 쉬어요.


 11시라는 늦은 시간에 도움을 준 것도 모자라 덕담까지. 무엇인가 굉장한 것을 빚진 느낌이 들었다. 조만간 도움을 준 세대 대표, 502호, 403호 분들에게 과일이라도 드리면서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이제야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브런치에 글을 남길 수 있는 에피소드로 남은 과거의 일이지만, 사실은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아찔한 일이었다. 뉴스에서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아 그 안에서 오랜 시간 갇혀있다가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넘어진 빨대건조대가 문을 막아 집안에 갇혀서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아니 어떻게 저런 일이 발생할 수 있지? 화장실에 휴대폰은 왜 안 가지고 들어간 거야?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되면 주변에서 궁금해하는 게 정상 아닌가? 등의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의 발단은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 또 찰나의 순간에 있다는 것이 문제다. 나 같은 경우에도 휴대폰이 아예 처음부터 방전되어있었다면? 옥상에서 지상을 향해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어야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밤 11시. 게다가 엄청난 눈이 내렸던 날씨를 고려한다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내 목소리를 듣고 대신 119에 신고를 해줄 수 있는 확률이 그다지 높진 않았다. 게다가 여자 친구가 그날 일찍 잠들었다면, 내가 이런 상황에 쳐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적어도 내 지인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내 휴대폰이 켜져 있었다고 한들 위의 상황처럼 여자 친구가 일찍 잠들었거나, 세대 대표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극한의 상황을 맞이했을지 상상도 하기 싫어진다. 추위에서 나를 지켜줄 옷차림도 아니었고 아침에 되려면 적어도 7시간은 더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내게 찾아온 것은 '나도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공포였다.


위기의 순간에도 세상은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2020년 4월의 인구통계자료를 보면, 전체 22663,240세대 중 1인 가구는 8,642,826세대로 38.14%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비율이 높은 2인 가구보다 약 3,000,000세대가 많아 비율로도 약 15%가 더 높았으니 1인 가구가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자연스러운 형태가 되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아파트 혹은 다세대주택 형태의 주거환경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이웃과의 교류는 0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가족, 소가족의 가족 구성으로 자라난 청년세대는 더더욱 이웃과의 교류는 못 하는 일이 아닌 안 하는 일이 되어버리고 있다. 내 개인의 사생활을 침범받기 싫은 만큼, 타인의 사생활에도 굳이 관여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고독사'는 주로 노년층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로 인식되어 왔으며, 보건복지부 통계 자료에 의하면 1년에 4200명 정도가 고독사를 당한다고 한다. 현재는 40% 이상이 65세 이상에서 고독사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1인 가구 중 청년이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고, 특히 코로나 19 유행으로 인한 우울감, 단절감, 소외감으로 인해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은둔형 청년'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고독사가 노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그 누구나 고독사는 찾아올 수 있고, 고독사는 더 이상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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