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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샨 카욱쉐

Ⅲ. 양곤

by 정효민

3. 샨 카욱쉐


어릴 때는 속담이나 어른들이 하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어른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엄마의 말은 더욱 그랬다. 떡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자는 도중에 떡이 생기다니, 생각만 해도 목이 턱 하고 막혀왔다.


하지만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바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그렇다. ‘아무리 좋은 일도 배부터 불린 후에 해야 더 즐겁다’라는 말 그대로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아무리 좋은 것도 여유를 가지고 접근해야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라는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눈앞에 좋은 것이 있으면 다른 것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뛰어들었다. 좋은 것뿐만 아니라 공부도, 연애도, 취업도 목표를 향해 달려갈 줄만 알았지 쉬어가는 방법을 몰랐다. 7년간의 사랑과 첫 직장에서의 열정이 실패했을 때, 비로소 나는 금강산을 바로 앞에 두고도 밥을 먼저 먹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여유는 여행 중에도 큰 빛을 발한다. 3년 전 초봄, 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내가 묵게 될 숙소는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근처에 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떠나왔기 때문에 몹시 지쳐있었고 등에는 15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이 지워져 있었기에 이 상태로는 가우디의 혼이 담겨있는 건축물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구글맵으로 성당을 등지고 숙소로 향해 걸을 수 있는 지하철역 출구를 확인한 후,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숙소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의 고딕지구를 거니는 오후 일정과 ‘캄푸 누’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를 직관한 저녁 일정 동안 ‘사그라다 파밀리아’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성가족 성당’을 바로 마주하게 된 건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지 이틀째 되는 오후였다. 한국에서 미리 신청해 놓았던 ‘가우디 투어’가 구엘 저택, 까사 바트요, 까사밀라, 구엘공원을 거쳐 무르익어갈 때 드디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역’에 도착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가이드분이 갑자기 “여러분 뒤를 돌아보세요"라고 외쳤다. 고개를 돌렸을 때 미완의 걸작이 온몸을 전율시켰다. 숙소에서 가까운 ‘사그라다 파밀리아 역’을 이용하지 않고 더 멀리 있는 지하철역을 이용하는 수고로움을 불사했던 노력이 감동과 환희로 돌아왔다. 아마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던 날 피곤한 몸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만났다면 지금 마음속에 남아있는 여운은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짝꿍에게 말했다. “술레 파고다도 식후경이지”


우리가 한국에서부터 유일하게 알아보고 온 식당이 마침 하차한 곳 주변에 있었다. 지도를 확인하니 도보로 4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문제는 엄청난 교통체증이었는데 가만 보다 보니 뭔가 어색함이 느껴졌다.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의 국가는 오토바이가 주 교통수단인데 양곤 시내에서는 오토바이를 단 한 대도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다소 황당했는데, 군부가 도시의 소음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오토바이 탑승을 금지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점성술사가 개입되어있다는 소문도 전해진다. 어떤 이유에서든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KakaoTalk_20210109_192012791.jpg 오토바이가 단 한 대도 없는 양곤의 도로


왕복 6차선 도로에는 보행자 신호등이 설치되어있어서 조금은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었다. 조금은 이라고 표현한 것은 보행자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와 있었는데도 그냥 지나가는 차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은 도로에는 보행자의 안전을 책임져주는 장치가 없었고 눈치껏, 능력껏 길을 가로질러야 했다. 마치 어릴 적 즐겨했었던 ‘달리는 차를 피해 도로를 건너는 개구리 게임‘처럼 느껴졌다. 더 끔찍했던 건 두 명의 개구리에게는 게임의 난이도를 높여주는 무거운 캐리어까지 쥐어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Jumper Frog-2.jpg 어릴 때 했었던 개구리 게임


'999 Shan Noodle Shop'. 400m, 4분이면 닿을 거리에 있던 식당에는 15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양곤의 물기를 가득 머금은 무거운 공기와 험난한 길을 걸어온 덕에 몹시 땀이 났다. 이대로 뜨거운 국수를 삼켜낼 수 있을까 걱정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감히 샨 카욱쉐(샨 누들)를 주문했다.


‘999 Shan Noodle Shop’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식당에서는 ‘샨 지방’ 국수를 맛볼 수 있다. 미얀마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있는 국가다. 버마족이 인구의 68%를 차지하고 있으며 샨족과 카렌족이 9%, 7%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 외에 135개나 되는 소수민족이 인구의 16%를 구성하고 있다. 미얀마 보다 14배 정도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소수민족이 55개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미얀마에 얼마나 많은 소수민족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20190824_093301.jpg 999 Shan Noodle Shop


미얀마는 특이하게도 음식문화가 그다지 발달되지 않은 국가로 자기 나라만의 고유한 음식이 거의 없다. 그나마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샨 지방’은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음식문화가 존재한다. 미얀마 인들과 관광객들이 ‘샨 지방’의 음식을 최고로 치는 이유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라도 음식과 비슷한 위치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샨 누들은 우리나라 국수나 베트남 쌀국수와 비교해 봤을 때, 떡처럼 끈적한 면발과 고소한 국물 맛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주문한 국수는 닭다리 하나가 크게 들어있는 닭곰탕 맛이 났다. 밤 비행과 험한 길을 걸어온 피로감이 싹 가시는 맛이었다. 다른 국수를 맛보던 짝꿍은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맞은편에 놓인 국수를 한입 떠먹어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아서 웃음이 났다. 흐물거리는 식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녀에겐 마치 어죽 같은 국수가 입맛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짝꿍의 수저는 가운데 놓인 찻잎 볶음밥과 파파야 샐러드만을 향한다.


20190824_094742.jpg 12시 방향 빨간 음식이 '샨 누들'


우리가 여행지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는 이렇게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고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또한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도전에 대해 추억이라는 값진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미얀마에서 마음껏 성공하고 마음껏 실패하고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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