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만족스러운 첫 끼니를 뒤로한 채, 다시금 양곤이라는 혼돈 속으로 들어갔다. 오늘 밤, 나이트 버스를 타고 '바간'이라는 도시로 이동할 계획이었지만, 오랜 비행과 무덥고 습한 날씨에 지쳐버린 몸을 잠시나마 쉬게 해 주기 위해 우리는 호텔을 예약했다. 유럽이나 물가가 비싼 도시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사치였다.
호텔로 가는 길은 샨 누들을 먹기 위해 멈추지 않는 차들을 피해 길을 건넜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더욱 고통스러웠다. 양곤의 도로변은 하수도 공사를 하기 위해 성인 남자 키만큼 파헤쳐져 있었고 인도 위에는 파낸 모레가 잔뜩 쌓여있었다. 좁아진 인도로는 도저히 사람들이 오갈 수 없어 도로의 마지막 차선은 차와 사람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상황이 펼쳐졌다. 캐리어를 끌고 가야 하는 우리는 이보 전진 일보 후퇴를 거듭하며 겨우겨우 전진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가장 참기 힘들었던 건, 무더운 날씨 속에 증발되어 사라지는 오물의 냄새였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숙소.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은 바로 무너져 내렸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3시간은 더 지나야 체크인을 할 수 있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 그렇지 여행은 쉽게 풀리면 안 되는 거지. 체크인에는 실패했지만 우선 꼴 도보기 싫은 캐리어부터 맡기고 화장실에 들어가 물로 세수라도 하고 나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어차피 나이트 버스를 탈 때까지의 시간은 양곤을 구경하는데 쓰기로 했던 터라, 우리는 부지런하게 조금 서둘러 나온 셈 치기로 했다.
손에 있던 캐리어만 없어졌을 뿐인데, 이제야 양곤의 모습이 그리고 미얀마인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른 점심을 먹는 사람들, 바삐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들,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은 삭막해 보이는 양곤의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이른 점심을 먹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의 곁을 지나 버스에서 내렸던 '술레 파고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미얀마에서의 첫 파고다는 '술레'로 정해진 것이다. 목적지를 향해 걷는데 대부분의 남자들이 '롱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치마가 남자의 일상복인 것이 당연한 사회에 들어와 있다는 게 다시 한번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미얀마 전통의상 '롱지'를 입은 남자들
무거운 짐을 두고 걸어서인지 금방 '술레 파고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술레의 모습은 마치 주상복합 아파트 느낌이 들기도 했다. 1층은 상가로 둘러져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사원이 나오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육교처럼 생긴 구조물을 따라 올라가니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술레 파고다
미얀마에 오기 전, 이곳에 관한 여러 책들을 읽은 덕분에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것과 여자들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원으로 들어가기 전 내 옷차림과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드디어 기대하고 또 기대했던 '파고다'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는 사원 앞에서 잠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색감과 낯설어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건축 양식에 시선을 빼앗겨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스페인에서 처음 만났던 '톨레도 대성당'도 똑같이 내 눈을 매혹했지만, '술레 파고다'는 그 느낌과는 어딘가 많이 달랐다.
대성당은 '인간은 신 앞에서 아주 작은 존재'라는 신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했다면, 파고다는 '인간은 신과 함께 있을 때 특별한 존재'라는 신에 대한 열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사원과의 깊은 교감을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들려서는 안 될 낯익은 언어가 시작된 곳을 바라보니 스님 복장의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짝꿍과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할 줄 아는 한국어가 없는지 영어로 자기소개를 이어 갔다. 그가 우리에게 건넨 소개를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짝꿍과 내가 경계와 불신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일관하자 그는 휴대폰을 꺼내 자신의 사진첩을 보여줬다. 거기에는 우리나라의 '불교 대학' 같은 곳에서 교육을 받는 장면들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술레 파고다를 방문했을 때의 모습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누구나 알 법한 유명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접근하는 사람은 늘 조심해야 하는데, 미얀마의 상징과도 같은 '술레 파고다' 안에서 게다가 '승려'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을 의심하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우선 그와 동행하기로 했다.
부처님께 공양드리는 제단
그는 바로 옆에 있던 제단을 하나 보여주며, 우리에게 생년월일을 물어봤다. 생년월일에 따라 지정된 제단이 있다는 것이었다. 짝꿍의 생년월일을 말해주자 스마트폰에 정보를 입력하더니 우리에게 따라오라며 다시 한번 앞장서 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 조금 걷다 보니 하나의 제단이 나왔다. 짝꿍의 생년월일 상 'Thursday(목요일)'이라고 적힌 제단에서 공양을 해야 한단다. 그러더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손수 시범을 보여준다.
불상 앞 제기에 담겨 있는 물로 제단 아래에 있는 동물(아마 수호신 같은 의미인 것 같다)을 여섯 번 적셔준 후, 불상 위 방울을 다섯 번 손으로 만지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옆에 있는 징을 세 번 치면 끝이라고 했다. 하기 싫음과 호기심 사이 어딘가의 표정으로 짝꿍이 공양의 절차를 훌륭히 소화해 냈고 젊은 승려의 박수갈채를 쟁취했다.
정성스레 기도를 하는 미얀마인
그는 우리를 술레 파고다 곳곳을 데리고 다니며 안내해주었다. 여러 불상 앞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신에게 어떤 기도를 올렸을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우리 어머니처럼 가족들의 건강, 아들들의 행복을 빌었을까? 아니면 내가 과거에 그랬듯, 사회에서의 성공을 빌었을까? 아니면 오늘도 당신 앞에 나와 기도할 수 있는 일상을 선물 받았음에 감사하는 소박한 기도를 올렸을까?
나는 우리나라의 전통 사찰들을 사랑한다. 산과 구별되어 있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절을 방문할 때면, 속세에서 받은 상처나 아픔들이 그대로 씻겨나가는 것 같은 평화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종교가 불교가 아님에도 조각되어 있는 부처님을 마주할 때면 그 은은하고도 온화한 미소에 절로 마음이 좋아지곤 한다.
하지만 술레 파고다에서 만난 불상들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부처님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널리 퍼진 불교의 종파와 미얀마에 퍼져 있는 불교의 종파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각 나라의 문화의 차이 예술적 관점의 차이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술레 파고다에 있는 불상들은 채색이 되어 매우 화려했지만, 아직까지는 세월에 색이 바래진 우리나라의 불상이 조금 더 편하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아직은 내 마음의 문이 전부 열리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젊은 승려와 함께 하는 '술레 파고다 투어'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불탑 앞에 서 더니 가방에서 향초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 향초를 피우고 소원을 빌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뭔가 기분이 싸했다. 이 향초를 피우면 뭔가 안 될 것 같은 여행자의 직감 같은 것이 번쩍 스쳤다.
"이거 무료예요?"라고 묻자 그는 "아니, 50,000짯을 나에게 줘'라고 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 잠깐 50,000짯은 계산하기 편하게 환산하면 우리 돈 50,000원이 된다. 우리나라에 있는 사찰을 어떤 스님이 투어를 해주고 50,000원을 요구해도 엄청 비싸게 느껴지는데 더욱이 이곳은 미얀마다. 미얀마에서 50,000원이 얼마나 큰돈인지 실감을 하려면 미얀마의 1인당 GDP를 살펴보면 된다. 미얀마의 1인당 GDP는 1527달러(2020년 기준) 수준으로 글을 쓰는 현재 환율기준으로 우리돈 175만원 정도가 미얀마인들의 한 해 소득이 된다. 즉, 월 145,000원 정도로 계산이 된다.
결국, 승려를 가장한 이 사기꾼은 노동자가 8시간 이상씩 10일간 일해서 버는 돈을 단 1시간 만에 우리에게서 갈취하려고 했던 것이다. 더욱 황당한 건 우리에게 한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여주던 그가, 향초를 피우지 않겠다는 답변을 듣자 무서운 얼굴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름 투어를 시켜준 노동의 대가는 챙겨주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자는 합의를 마친 우리는 그가 요구한 돈의 1/5을 쥐어주고 그 자리를 떴다. 우리 등 뒤로 그가 뱉어내는 언어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 분노와 경멸이 가득한 언어였을 것임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상황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미얀마인과의 밀접한 첫 관계에서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에서 우리는 큰 실망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가져간 10,000짯 또한 미얀마 노동자의 거의 이틀치 임금이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열악한 도로 사정, 많은 양의 차, 파헤쳐져 있는 인도, 승려를 가장한 사기꾼까지 미얀마와의 첫 만남인 양곤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우울감이 나에게 깊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다가가기엔 너무 멀게만 느껴진 양곤
※<Unnamed Pagoda : 이름 없는 사원>은 매주 금요일에 업로드됩니다. 작가의 변덕에 의해 게릴라성으로 추가 업로드될 수 있으니, 빠르게 에세이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은 구독신청 부탁드릴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