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의 중요성은 사회라는 조직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직접적으로 경험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첫눈에 느껴지는 인상'이라고 네이버 국어사전이 정의하고 있듯, 나와의 어떠한 접점도 없던 대상과의 이미지화된 첫 소통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첫인상'의 설렘과 기대감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미얀마와 양곤에서 이어지는 첫인상들은 급속도로 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이쯤 되니 "제발 특별한 이벤트라도 발생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언가 마음을 좀 달래줄 '이너 피스'의 시간이 내게 필요했다. 술레파고다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나오는 공원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마하 반둘라 공원
술레파고다를 나와 공원으로 걷기 시작하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출퇴근 길에 운전을 할 때, 한 번 신호에 걸리기 시작하면 회사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계속 빨간불에 차를 멈춰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곤 한다. 양곤에서의 하루가 그랬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무 대책 없이 여행지를 누비는 나와는 달리,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더니 길가의 노점에서 우산을 구매한 짝꿍이 내 곁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선견지명의 그녀
함께 우산 하나를 애틋하게 나눠 쓰며 공원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무척이나 습했던 날씨였기에 추적추적 내려주는 비는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고,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분노로 가득했던 마음을 조금씩 달래주기 시작했다.
마하 반둘라 공원은 식민지 시절 영국군에 대항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렀던 '마하 반둘라' 장군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마하 반둘라는 미얀마 화폐 중 '500 짯'에 그려져 인물로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위상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왕이 아닌 사람이 미얀마 화폐에 그려진 것은 마하 반둘라 장군이 유일해 그가 얼마나 특별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전투에서 패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삶 전체를 지불합니다. 그러나 나는 용기가 없어서, 우리보다 우월한 적과 만나서 전투에서 패했다는 모욕과 불명예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전투에서 최고사령관을 잃음으로 버마인이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버마인들의 투쟁 정신의 영원한 본보기가 될 것이며, 우리 민족의 명예와 영광을 되찾는 일이 될 것입니다.”
1825년 영국과의 다누부(Danubyu) 전투에서 마하 반둘라 장군은 전사했는데 위와 같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문장 중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삶 전체를 지불한다"는 말이 잔잔한 물결이 마음에 일었다. 삶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기에 아무렇게나 내 삶을 소비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그것이 주체적인 삶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각자의 가치를 위해 지불되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각자는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으며, '나'라는 존재가 그 누구와도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500짯에 그려진 '마하 반둘라' 장군
마한 반둘라 장군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난 뒤, 조금은 양곤이라는 도시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의 시작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일부러 부정적인 생각을 자꾸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신나서 '꽂게 춤'을 추고 있는 짝꿍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주다 보니 조금씩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진정한 미얀마 여행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영국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시청과 성당
마하 반둘라 공원 주변으로는 '양곤 시청', '고등 법원', '성당' 등의 주요 시설들이 밀접해 있다. 그만큼 교통의 요지이자 양곤 내에서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지라는 뜻이다.
사실 이 건물들은 미얀마의 아픔을 품고 있다. 영국의 강제 점령 시기의 이곳은 식민 정치가 활발히 이뤄졌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마하 반둘라 공원 인근의 건물들이 미얀마의 전통 건축 양식이 아닌 영국의 건축 양식을 띠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영국은 양곤의 중심에 그들의 문화를 이식시키려 했다.
또한, 마하 반둘라 공원은 '엘리자베스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었고, 공원 가운데 있는 '버마 독립 기념탑'이 있는 장소는 '빅토리아 여왕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경복궁 바로 앞에 조선총독부가 들어섰을 때, 우리 조상들이 느꼈을 찢겨질 듯한 아픔을 미얀마인들도 똑같이 느꼈을 거라 생각하니 더 이상 미얀마라는 나라가 완전한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라를 빼앗긴 아픔, 군부 독재 속 탄압, 민주화를 위한 노력 등 미얀마는 우리나라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버마 독립 기념탑
이제는 양곤의 더위가 그리 짜증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일상을 즐기는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한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연못에 앉아 오후의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커플이었다.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뭐가 그리 행복한 지 미소가 떠나지 않는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책이 한 권씩 들려져 있었다.
"아니 완전 미얀마판 '쑤&횸'이잖아? 나 저 커플 사진을 꼭 찍어야겠어!"
(*서로의 애칭으로 쑤는 짝꿍, 횸은 나다.)
짝꿍에게 말한 뒤, 커플에게 다가갔다.
"안녕? 나는 여행자인데, 너희 모습이 너무 예뻐서 사진으로 담고 싶어. 그래도 될까?"
"지금 부끄럽긴 한데, 괜찮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럴 때 보면 아빠의 염색체들이 확실히 내게 잘 전달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때 아무한테나 다짜고짜 카메라를 들이밀던 아빠의 모습을 내가 하고 있다니.
"그럼 찍을게! 하나 둘 셋!"
너무 예뻤던 두 사람 : 부디 무탈히 건강히 그 미소 그대로이길
두 사람이 나온 사진을 짝꿍과 함께 보면서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들의 미소가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 같았다. 더운 날씨에 풀어졌던 팔짱을 다시 한번 끼고 우리는 다른 양곤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에게 우리도 참 예쁘고 행복해지는 커플로 보여졌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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