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공원을 빠져나와 다시금 양곤의 도심으로 향했다. 한 번 걸어본 길이라고 조금은 여유가 생겨 이리저리 눈길을 돌려봤다. 아파트라고 해야 할까 빌라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많은 수의 미얀마인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을 건물에는 빨래가 한가득 널려있었다.
발코니마다 빨래를 말리고 있는 모습
조금만 습해도 빨래가 잘 안 말라 옷에서 꿉꿉한 냄새가 나는데, 양곤의 이 어마어마한 습도를 뚫고 빨래가 마르긴 할는지 심히 걱정됐다. 게다가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이 그대로 옷에 흡착되지는 않을지 우려스러웠다. 물론,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가 대중화된 대한민국 국민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제법 길었던 양곤 모험을 마치고 잠시 숙소로 돌아왔다. 인천에서 출발했을 때 입고 있던 옷을 아직도 그대로 입고 있었고, 습도의 맹공을 받은 몸을 더 이상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맡겨놓은 캐리어는 친절히 3층 우리 방으로 옮겨져 있었고, 우리는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욕실과 에어컨을 쟁취할 수 있었다. 따뜻한 물로 여독을 씻어 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니 "천국은 하늘 저 멀리 어딘가가 아닌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이곳에 있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비가 내리는 양곤의 골목
아침 겸 점심으로 국수를 먹었던 터라 슬슬 배가 고파왔다. 호텔 컨시어지에 주변의 맛집을 물어보니 한 군데를 추천해주는데 전제가 있었다. "식당이 깔끔하고 음식도 맛있는데, 조금 비싸요"
호텔 직원의 비싸다는 말에도 우리는 알려준 식당으로 향했다. 깔끔하고 맛있다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식당은 호텔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있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위험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모습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1층 입구에는 시선을 강탈하는 것이 있었다. 우리가 흔히 '두꺼비집'이라 부르는 배전함이었는데,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전선이며, 열려 있는 배전함 뚜껑이며, 한데 얽혀 있는 전깃줄과 호스(수도 호스로 추정)도 놀라웠지만 전깃줄에 아무렇게 널려 있는 젖은 바지는 정말 압권이었다.
자본주의는 개발과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달려간다. 특히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이 맞물릴 때는 더욱 그 목표는 뚜렷해진다. 군부가 장악하고 있던 독재정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미얀마도 마찬가지였다.
경제발전의 이름 하에 재난과 질병으로부터의 사회 안전망은 가장 뒤로 밀려난다. 전선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매설하게 하는 건설안전법이나 젖은 옷을 전선에 걸지 못하게 하는 안전불감증에 대한 교육은 먹고살만해지면 그제야 챙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지럽게 놓인 저 전선들 덕분에 시원한 실내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자본주의가 가진 강력한 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양곤을 떠나며
저녁식사를 마치고 인근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하고 나니 그토록 미워한 양곤을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숙소에서 다시 한번 긴 여정을 떠날 채비를 끝낸 후, 택시에 올라 '아웅 밍글라' 버스터미널로 가달라고 말했다. 해가 저문 양곤의 밤은 잔뜩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사기꾼을 만났던 술래 파고다를 지나 양곤의 상징과도 같은 '쉐다곤 파고다'도 멀리 보였다. 이 여행의 끝에 저기 보이는 쉐다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에 놓여진 지금 하나의 등대처럼 느껴졌다. 항구를 떠난 배가 다시금 등대를 보고 마을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미얀마의 상징 '쉐다곤 파고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창구에 예매 정보가 담긴 종이를 내밀었다. 창구 직원이 종이를 확인하더니 떠나는 시간을 종이에 써준 후 옆 쪽 계단을 가리켰다. 알고 보니 미리 예매해둔 버스가 VIP 등급이라 버스터미널 2층에 위치한 VIP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었다. 2층에 올라가니 열 명도 되지 않는 인원이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었다. 1층 대합실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에어컨 없이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던 모습과는 상반된 장면이 왠지 울적하게 다가왔다. 한국에서 프리미엄 버스가 비싸다는 이유로 일반 버스를 타고 고향인 경주로 내려가던 내 모습이 1층 대합실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미얀마 사람들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나와 미얀마에서의 나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환경에 놓이면 풍족한 것으로 변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 행복은 가진 것이 적고 많음에서 오는 절대적인 것이 아닌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플랫폼에 세워져 있던 야간 버스에 불이 들어왔다. 현지인과 여행자의 짐이 버스회사 직원들에 의해 한데 섞여 실렸고 짐의 주인들도 설렘과 피곤함을 안고 버스 안으로 향했다. 정시에 출발한 야간 버스는 9시간 30분간의 행군을 시작했다. 드디어 우리는 애증의 양곤을 탈출할 수 있었다.
(좌) 쾌적한 VIP 라운지 / (우) 야간 버스
야간 버스는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고속도로라고는 했지만 흙길을 그대로 달리는 비포장도로인 곳도 많았고 포장된 도로도 왕복 2차선에 불과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놀라운 것은 차선이 하나밖에 없지만 두 대의 차량이 나란히 달리는 엄청난 장면을 비몽사몽간에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출발한 지 두 시간 정도 지나 도착한 첫 번째 휴게소에서 버스는 30분간 정차했다. ‘리프레쉬 타임‘을 갖기 위해 승객 모두를 내리게 했고 버스 문은 굳게 닫혔다. 리프레쉬를 우리말로 표현할만한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마치 우리 사회가 리프레쉬라는 말이 어색할 만큼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넘어가는 버스를 탔을 때도 이런 경험을 했었는데 오랜 시간 버스를 운전해야 하는 기사에게도 긴 시간 버스에 앉아있어야 하는 승객에게도 꼭 필요한 30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의 고속도로 휴게소 모습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대중교통이 예상 도착 시간에 비해 단 몇 분이라도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다양한 교통 변수가 존재하는 도로 위 버스에도 이 같은 시간적 잣대는 그대로 적용된다. 몇 해 전, 예상 도착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고 버스 운전기사를 무릎 꿇게 만든 승객이 뉴스에 등장한 적이 있다. 그 기사를 접하면서 참으로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무릎을 꿇게 된 운전기사의 심정,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한 승객.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닌 빠름이 하나의 경쟁력이 되어 버린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고속버스로 먼 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휴게소에 정차하여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15분 내외로 한정된다. 화장실에 들러 중요한 용무를 해결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통감자를 사서 버스로 돌아오려면, 출발 드림팀 장애물 경기에 출전하는 마음으로 잽싸게 움직여야 한다. 만약 중요한 용무가 큰 것일 경우 통감자의 행복은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비단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서만 ‘리프레쉬 타임’으로 30분을 갖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1년에 몇 번은 버스 기사의 졸음운전으로 큰 사고가 나는 것을 뉴스로 접할 수 있다. 보도되지 않는 경미한 사고들까지 합친다면 꽤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버스 사고가 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휴게소에서 모든 승객이 내리고 기사 또한 마음 놓고 30분간 휴식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된다면, 그로 인해 한 건의 사고라도 예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적게는 몇 명 많게는 몇십 명의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는 10여 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가치가 있지 않을까.
30분이 흘러 쉬고 있던 엔진은 다시 거친 숨을 내뱉었다. 버스 안은 상쾌함으로 가득했다. 하나둘 담요를 목 까지 끌어당기고 탑승자 확인을 위해 밝게 켜졌던 불은 다시금 어두워졌다. 우리가 향하고 있는 천 년 전의 도시를 만나기 위한 밤은 길고 또 길었다.
※<Unnamed Pagoda : 이름 없는 사원>은 매주 금요일에 업로드됩니다. 작가의 변덕에 의해 게릴라성으로 추가 업로드될 수 있으니, 빠르게 에세이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은 구독신청 부탁드릴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