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바간
긴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눈두덩이를 간지럽혔다. 관성에 익숙해진 눈은 쉬이 떠지지 않았지만 어렴풋이 빨갛고 노란 구체가 눈에 들어왔다. 바간에서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해준 것은 먹구름을 걷어내고 아름답게 떠오르고 있는 태양이었다. 양곤에서 느꼈던 정신적 피로와 장시간의 야간 버스로 인한 육체적 피로가 차창 밖 풍경들처럼 버스 뒤쪽으로 멀리 사라져 갔다.
버스는 약 9시간 만에 바간에 도착했다. 우기의 미얀마답게 대기는 수증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지만 사방이 탁 트인 초원 덕분에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른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는 오늘 하루 행복한 일만 가득할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바간 버스터미널에서 예약한 호텔이 있는 냥우 지역으로 가려면 택시를 타야 했다. 미얀마는 미터기 없이 정찰제로 택시를 운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택시 기사들은 정찰보다 훨씬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한다.
터미널에서 호텔까지의 정해진 가격은 6,000짯이지만, 아니나 다를까 택시기사가 10,000짯을 부르며 접근해온다. 뒤를 한 번 쓱 돌아보고는 그냥 터미널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 발 정도 걸으니 9,000짯을 부른다. 잠깐 발걸음을 멈췄다가 다시 캐리어를 끌고 걸어간다. 또 세 걸음을 떼니 이제는 8,000짯을 부른다. 불교의 나라답게 삼보천짯의 기적이 일어났다.
계속 내려가는 택시비에 피식 웃음이 나 더 걸어가면서 가격을 흥정하고 싶었지만 정찰인 6,000짯에 택시를 운행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블로그 글을 보기도 했고 더운 날씨, 무거운 캐리어에 그냥 8,000짯에 타기로 했다.
택시기사에게 호텔 이름을 말하며 구글 지도를 보여줬다. 그는 손님을 태우지 못한 다른 택시기사들에게 승리의 미소를 보이며 능숙한 후진 실력과 함께 터미널을 벗어났다. 얼마간 기분 좋은 아침 아침 공기를 마시며 달렸을까 택시의 속도가 조금씩 줄더니 이윽고 완전히 멈춰 섰다. 우리는 바간 여행 글에서 읽었던 도시세 납부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바간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바간 초입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 ‘도시세’를 납부해야 도시로 들어갈 수 있다. 1인당 우리 돈 20,000원 정도를 내면 5일간 바간에 있는 사원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어쩌다가 도시세를 내지 않고 바간으로 들어오는 외국인도 있는데 아난다와 같은 대형 사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적지에서는 티켓 검사를 따로 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아꼈다며 좋아하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배낭여행자에게 20,000원이라는 돈이 적지 않은 돈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바간의 도시 인프라를 위한 그리고 바간 사람들에 대한 복지에 사용되는 소중한 재정수입이기에 양심껏 납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3,000개가 넘는 사원을 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20,000원이라면 이 금액이 누구에게 남는 장사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택시는 좁지만 바간의 곳곳으로 연결되는 메인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한적한 골목길로 접어든 자동차는 우리를 빨간 벽돌로 지어진 3층짜리 건물 앞에 내려주었다. 호텔로 들어가는 짧은 길 양쪽으로는 코끼리 조각상이 그리고 현관문 양옆에는 합장을 하고 있는 부처님이 조각되어있었다. 우리가 드디어 바간에 도착했다는 게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