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효민 Feb 06. 2021

몬타나 존스를 보고 고고학자를 꿈꿨던 아이

만화 이면에 숨겨져 있던 무서운 이야기

몬타나 존스를 보고 고고학자를 꿈꿨던 아이


Ⅰ. 만화를 보며 꿈을 가지다.

 1996년에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거치고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MBC에서 방영해주었던 <몬타나 존스>를 기억할 것이다. 

 어느 날 주인공인 '몬타나 존스'에게 LP판이 배송되고 거기에서는 그의 스승 '길트 박사'의 육성으로 녹음된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매 화 반복되는 도입부지만, 그 시절엔 전혀 지루하거나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LP판이 어떻게 스스로 폭파될까 기대의 눈으로 브라운관을 응시했다.

 길트 박사의 의뢰를 받아 도착한 고대 유적지나 귀한 보물이 있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제로 경'과 그의 부하들이 나타나 유물, 보물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을 벌이곤 한다. 언제나 결과는 '니트로 박사'의 "더 많은 예산과 시간을 주신다면..."이라는 변명과 제로 경의 극대노로 귀결된다.



 어린 시절, 나는 전 세계의 유적지와 문화유산을 누비는 몬타나 존스의 활약에 매료되었다. 악당들에게서 소중한 보물을 지켜내는 모습에 나도 고고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 편의 만화영화가 내 인생에 꽤나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이 꿈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2차 수시전형으로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산대학에 진학하기 직전까지 말이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전혀 관심 없는 영남대학교 무역학과에 진학하여 꿈은 이루지 못했다.

 

고대육적을 만나는 설렘을 주었던 '몬타나 존스'


Ⅱ. 하지만 나는 속았다

 내가 몬타나 존스를 보면서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성인이 돼서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던 것이 있다. 몬타나 존스의 전체적인 줄거리가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만화는 제로라는 악당을 내세워 몬타나 존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더 나아가 응원하게 만든다. 마치 보물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미개한 후진국으로부터 보물을 가져와 가치를 알고 잘 보관할 능력이 있는 선진국에 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프레임을 짜는 것이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 프랑스 '케브랑리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약탈 문화재들이 떠오르는 것은 나의 상상력일 뿐일까?

 영국과 프랑스까지 갈 것 없이 현실판 몬타나 존스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경주의 '금관총'이 누구에 의해 파내어졌는지, 경주 남산의 수많은 불상들이 어디로 옮겨졌는지 생각해보면 머리 끝까지 화가 치민다. 더욱 화가 나는 건 '몬타나 존스'가 제국주의의 최전선에 있었던 일본, 이탈리아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소름 돋지만 제작에 참여한 국가가 하나 더 있는데 그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점이다. 제국주의에 의해 엄청난 아픔과 고통을 겪었던 나라가 오히려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만화를 제작한 것도 모자라 가해자들과 합작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우리의 문화재를 우리의 손으로 훼손케 하여 수탈해간 일본


 TV는 바보상자가 아니다. 하지만 TV를 통해 흘러나오는 콘텐츠들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브라운관에서 내 손안에 쏙 들어오는 스마트폰으로 바보상자의 계보가 바뀌면서 우리는 콘텐츠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마음만 먹으면 잘못된 가치관을 빠르고 광범위하게 심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콘텐츠의 범람 가운데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자극적인 헤드라인(신문)과 썸네일(영상)을 기본이며 팩트체크되지 않은 거짓 정보들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에서 수백 편의 몬타나 존스가 제작되고 유통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살 수는 없으니 우리는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분별력을 키우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겠지만 내가 추천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① 독서  

 독서라는 두 글자를 보고 이 글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온 사람이라면, "책도 콘텐츠 아닌가?", "거짓 정보로 가득한 책도 있지 않나?"라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 '책'이 아니라 '독서'다. 현대인들이 콘텐츠를 접하는 방법은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영상 시청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혹은 등하교하면서 가장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영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인의 경우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에너지를 발산하며 새로운 활동을 하기보다는 침대나 소파에 자리를 잡고 유튜브를 시청하는 게 가장 큰 취미이자 힐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영상을 보면서 휴식을 취한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뇌가 그저 자극적인 이미지를 받아 들기만 하기 때문이다. 반면 독서가 어렵고 귀찮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글을 읽는 과정의 복잡함에 있다. 글자를 읽는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낭독을 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을 뿐이다. 또한 텍스트에 숨겨져 있는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상상하게 된다.

 영상이 '본고 듣는다-생각한다-이미지로 남는다'의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면, 독서는 '본다-읽는다-말한다-생각한다-상상한다-이미지로 남는다'의 더욱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복잡한 과정을 거칠 수록 콘텐츠를 통한 정보에 무분별하게 잠식되는 것을 방지해준다.

 독서의 주체는 책을 읽는 나 자신이고, 영상 시청의 주체는 영상 제작자인 타인에게 있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책 또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고 책을 쓴 목적이 있기 마련이지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가 재창조되고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영상은 콘텐츠를 제작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어떠한 주제를 주입시키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특히 영상 밑에 달리는 자막은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시청자의 상상과 판단을 차단해 버리며, 제작자의 의도대로 상황을 인식하게 만들어버리는 매우 위험한 장치로 작용한다. 

 이러한 점에서 독서는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훈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독서는 당연히 어렵고 귀찮을 수밖에 없다


② 문화예술

 무분별한 콘텐츠의 범람 속에서 나를 보호하는 방법 두 번째로는 '문화예술'을 가까이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예술'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는데 공연, 전시 등을 경험하는 것을 지칭한다. 

 미술관에 방문하면 기본적으로 동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는 일정 수준의 호흡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호흡은 작품을 보고 상상하고 내 것으로 체득하는 과정을 가능케한다. 다른 이와 함께 감상을 한다면 서로 다르게 받아들인 것들을 나누며 내 사고를 확장시킬 수도 있다.

 공연장 또한 외부와의 완벽한 차단을 통해, 상상 속의 어느 장소로 순간 이동한 것 같은 효과를 준다. 뮤지컬이나 연극의 경우,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와 스토리의 전개에 대한 나만의 상상을 통해 어느샌가 능동적으로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발레나 무용은 사람의 신체에 대한 미적 감동과 동작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숨은 의미에 대해 무한한 상상을 선물해 준다.

 영화나 드라마 또한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영상의 위험성은 주로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짧으면서도 자극적인 내용으로 상상을 배제시켜 버린 콘텐츠에 대한 경계로 이해해야 한다. 잘 만들어진 영화와 드라마는 영상이 가지고 있는 장점에 문화예술의 장점을 더해 깊은 영감을 주기도 한다. <인생의 아름다워>와 같은 영화가 부성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홀로코스트'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고, <타인의 삶>이 냉전시대의 감시와 검열을 다루면서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다뤘듯 말이다. 우리는 영화에서 표면적인 스토리 이면에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문화예술은 독서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사고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전시와 공연을 통해 나의 사고를 성장시킬 수 있다


이제 결론이다. 이 글을 쓴 궁극적인 목적은 나처럼 바보같이 콘텐츠에 속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노파심에 있다. 특히 한창 꿈을 키워가고 무한한 상상력이 성장의 거름으로 작용하는 어리고 젊은 미래세대들이 말이다. 만약 몬타나 존스를 보고 고고학자의 꿈을 키웠던 내게 누군가가 '제국주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면, 나는 새로운 꿈을 찾았거나 다른 방향으로 꿈을 발전시켰을지도 모른다.

 하여 나는 어른이 되고 싶다. 객관적인 이성으로 진실을 말해주고 주관적인 감성으로 상상을 독려해주는 진짜 어른 말이다.

 



#몬타나존스 #만화 #만화영화 #영화 #고고학 #고고학자 #제국주의 #문화예술 #문화 #예술 #공연 #전시 #무용 #연극 #뮤지컬 #발레 #춤 #댄스 #사진 #회화 #그림 #미술관 #미술 #박물관 #공연장 #독서 #책 #유튜브 #넷플릭스 #인생은아름다워 #타인의삶 #탈피 #뜻밖의연수 #금요예술무대 #플레잉연수 #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 #꿈 #진로 #멘토 #작가 #드라마 #드라마작가 #영화감독 #축구선수 #예술가 #음악 #피아노 

매거진의 이전글 Between chance and Opportunit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