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과 수난의 조각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인물을 떠올려 보자. 누군가는 축구선수 메시를, 누군가는 입체파 피카소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토니 가우디'를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이다. 바르셀로나를 향한 사랑, 검소한 생활, 깊은 신앙심 그리고 안타까운 죽음. 그의 생애는 마치 성경 속에 등장하는 성자의 삶과 비슷했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 전역에 '건축물'로 자신의 영혼을 남겨 놓았다. '구엘저택', '까사밀라', '까사바트요', '구엘공원' 등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바르셀로나 시민들과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건축물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우리말로 '성가족성당'일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미완의 건축물로 현재도 완공을 위해 높다란 크레인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가우디가 생전에 완성시켜 놓은 것은 '새 개의 파사드' 중 '탄생의 파사드' 하나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시는 2026년까지 관공을 목표로 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완공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만나는 데에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바르셀로나의 다른 이름 '가우디'를 소개하고자 함이 아닌, '수비라치'라는 인물을 소개하기 위함에 있다.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는 한국인들에게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일 것이다. 아마도 가우디라는 위대한 조각가의 이름에 가려진 탓일 것이다. 수비라치는 세 가지 파사드 중 '수난의 파사드'를 이어 조각한 현대 조각가다.
그의 조각은 가우디가 '탄생의 파사드'에 조각해 놓은 것과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조각이 되어 있다. 가우디의 조각은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사실적인 묘사와 저절로 경외감이 들게 하는 웅장함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수비라치의 조각은 간결한 표현을 통해 인간과 신의 경계를 허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난의 파사드'가 예수가 인간의 몸으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인류 모두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성경의 이야기에서 생각해보면, 수비라치의 조각이 가우디의 조각보다 '고난의 파사드'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가우디를 사랑하는 바르셀로나 시민, 스페인 국민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수비라치의 작품을 보고 졸작이라며 대놓고 손가락질을 하거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곁을 지나며 한 숨을 쉬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천재적인 건축가이자 조각가였던 가우디의 뒤를 이어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웠을 텐데, 가우디라는 인물에게 향했던 많은 이들의 애정까지 감당해야 했던 '수비라치'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수비라치가 정말 지혜롭게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수난의 파사드'에 조각되어 있는 하나의 장면 때문이었다.
수비라치는 성경 속 가장 슬픈 장면에 속하는 장면에 '가우디'를 함께 새겨 놓았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장면을 슬프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가우디를 향한 애정, 신에 대한 경외, 면사포에 남아 있는 예술의 형상을 표현해낸 조각 기술. 자신을 향한 모든 비난을 이 장면 하나로 시원하게 무마시켜버린 것이다. 나는 예술에 있어서 이러한 통쾌함을 마주할 때면 정말 깊은 곳에서부터의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는 내가 예술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수비라치는 수난의 파사드에 각 국의 언어로 된 '주기도문'을 새겨놓았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방문해서 한글을 찾아보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를 선사해줄 것이다. 우리말로는 주기도문의 어느 부분이 새겨져 있을지 궁금하다면 꼭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나보시기를 권하고 싶다.(혹은 제 책 <마드리드 0km>를 읽어 보시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앞 광고 주의)
나는 이 글을 통해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그리고 전 세계가 기대하는 위대한 건축물을 이어서 조각해 나간 예술가의 마음이 어땠을지 함께 상상해보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며 써 내려왔다.
가우디는 1926년에 사망했고, 수비라치도 2004년 우리의 곁을 떠났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시작을 알린 '탄생의 파사드'를 조각한 예술가와 자신의 삶이 비난과 수난이었던 '수난의 파사드'를 조각한 예술가 모두가 '미완'의 성당을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의 예술은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안토니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지 100주년이 되는 2026년, 코로나 19로 인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완공을 우리가 볼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지만, 마지막으로 건축되고 있는 파사드의 이름이 '영광의 파사드'이듯, 성당의 완공과 함께 세상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완공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나도 꼭 서있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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