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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Mar 01. 2021

병풍의 나라, 조선

가리기 위한 것에서,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의 전환

병풍의 나라, 조선


 지금까지 '조선'이라는 국가명은 부정적인 단어들과 조합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실 조선은 나름의 품격과 예술성을 지니고 있었던 국가였다. 나는 이번 글을 통해, 조선의 예술 중 2018년 12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만났던 '병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병풍의 나라 조선>


 병풍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본래의 용도는 '바람을 막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무언가를 가리는 것'에서 '장식용'으로 점차 발전해 나갔다.


왕실의 행사를 담고 있는 병풍


 내가 '병풍'이라는 것과 실제로 마주한 날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주무시다 편안하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장례식이었다. 아버지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천으로 유교문화가 아직까지도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동네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머릿속에서 다시 한번 그려보면 '하얀 두루마기'와 '검은색 갓'을 쓴 '긴 수염의 할아버지'들이 복잡한 절차에 의해 장례를 치르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들이 절하는 '장례상' 뒤에는 '병풍'이 서 있었고, 그 너머 관 속에 할아버지가 누워계셨다.

 어린아이였던 그 당시의 나는 그 장면이 너무나도 기괴하고 무섭게만 느껴졌고, 저 병풍이 혹시나 쓰러져 할아버지의 관을 보게 될까 봐 몹시나 두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꽃이 그려진 병풍


 조선은 유교가 국가의 모든 근간이었지만, 민중에게는 토속신앙과 불교가 여전히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마음의 안식 혹은 지키며 살아야 하는 일종의 규범과도 같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병풍이 단지 '보기 싫은 것', '보여주기 싫은 것'을 가리는 목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 즉,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매개로 사용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조금 눈을 돌려 조선의 왕실로 가보자. 우리나라 사극을 보면 대신들과 논의를 하거나, 개인적인 공간에서 학문을 익히는 왕의 모습 뒤로 아래의 사진 속에 있는 '월올오봉도'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해와 달, 다섯 개의 봉우리, 소나무 등 왕이 통치하는 삼라만상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림이다. 조선에서 오직 '왕' 만이 가질 수 있는 병풍이었다.

 

 무언가를 가리기 위한 병풍이 아닌, 병풍 그 자체로 소유자의 권위와 품격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왕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병풍


 한자를 읽고 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양반'과 '유생'들은 아래의 사진처럼 '문방사우'가 그려진 병풍을 집에 둠으로써 '언제나 학문을 가까이한다'는 그들의 명분을 지켜줌과 동시에 자신들이 조선의 '엘리트 집단'임을 공고히 하는 도구로 병풍을 사용하기도 했다.


문방사우가 그려진 병풍


 그리고 '순수예술'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법. 산, 계곡, 새, 동물과 같은 자연을 화폭에 담아내어 병풍으로 만드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몇 첩에 나누어 그려진 산수화는 하나의 캔버스처럼 병풍 위에서 펼쳐졌다.

 또한, 민중화가들은 일상의 모습을 담아 병풍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일반 백성들의 일상이 담긴 병풍은 하나의 예술로도 뛰어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민중의 생활사'를 담고 있는 역사적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바람을 막는 막'에서 시작되어 '가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다,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발전하게 된 병풍의 이야기는 꽤나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병풍은 조선에만 있지 않다. 사실 대한민국, 우리 일상에서도 병풍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위의 사진을 보셔서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공사현장을 가리기 위해 설치된 펜스 등이 그렇다.



 이는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병풍이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가리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조선의 피가 흐르지 않는가. 최근에는 이러한 공사장 펜스를 이용한 '미술 작업' 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관에서부터 건설회사까지 다양한 주체가 자신들의 '공사 펜스'에 예술적 요소를 가미해줄 것을 '예술가'들에게 요청하고 있다. 상업적인 예술로 보여질 수도 있지만, 어떠한 의미로는 공공미술적 요소와 순수미술적 요소도 분명 포함하고 있다.


 서울시의 '아트펜스'처럼 숨겨져 있는 '21세기 병풍'들을 찾아다니는 여행도 무척이나 재미있을 것 같다.




 이 글은 '비닐하우스 1인 미술관' 스터디 모임을 통해 작성한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예술가나 예술 작품에 대해 자유롭게 작성하는 글인 만큼,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새로운 작가 혹은 새로운 작업을 만나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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