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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Mar 21. 2021

21-9.전국축제자랑

HugoBooks_우고의 서재

전국축제자랑


 축제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득히 먼 곳에 수많은 점처럼 남아 있는 추억으로 떠올랐다가, 현재 내가 좇고 있는 하나의 가치와 도달해야 할 미션으로 점철된다.

 축제에 대한 추억 부분은 형의 탄생부터 시작해 우리 형제의 유년기를 책임져준 '엑셀'을 타고 전국으로 다녔던 시절의 기억이다. 아빠는 키를 잡은 선장, 나는 전국지도를 쥔 1등 항해사가 되어 전국의 축제들을 방문했다. 경주 집에 있는 사진 앨범을 들여다보면 더 많은 기억들이 떠오를 테지만, 지금 기억나는 도시들만 나열해도 손가락, 발가락의 개수를 훌쩍 넘어버린다. 방문했던 도시와 축제마다 품고 있는 지역의 정서들이 너무 좋았다.

 축제에 대한 미션의 부분은 지금 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경주에서부터 축제와 행사들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하다 보니 축제는 단순히 보고 즐기는 장이 아니라 일종의 공부해야 할 학습장이 되어 버린 점도 없지 않다. 여행을 다니다가도 축제 혹은 행사장이 보이면 괜히 옆에 가서 기웃기웃거리게 된다. 

 "천막을 저런 형태로 세웠네?", "현수막 디자인이 좀 아쉽다", "주차장을 저렇게 만들어놓으니 교통이 순환이 안 되지", "메인 프로그램 운영이 너무 부자연스러워" 등의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어린 시절, 정서적으로 많은 것들을 경험했던 그 날의 순수함을 이제는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니 매우 마음이 헛헛해진다.




 김혼비, 박태하 작가님의 <전국축제자랑>은 이방인, 여행객의 입장에서 축제에 대한 따스한 감정들을 풀어낸 책이다. 전국에서 만나는 'K스러운 것들'의 향연, 즉 <k 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읽고 있지만 듣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져 나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 책은 작가님들과 동등한 '관람객'의 시선으로 함께 축제장을 누볐다기보다는, 그들과 동행하는 축제 담당자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축제에 붙여 놓은 슬로건의 유치함을 이야기할 때, 왠지 내가 그 축제를 개최한 지자체의 담당자를 대신해 변명해주고 싶었고, 축제 중 프로그램 일정을 물어봐도 제대로 된 답변을 못 주는 안내원들과 행사 변경 공지를 제대로 해주지 않는 주최측의 안일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내 얼굴이 다 붉어졌다.

 그러다 그 축제만이 가지는 정체성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이 축제 너무 좋았어 라고 말해 줄 때는 내가 왜 감동을 받게 되는 건지.




 전국 축제장을 작가님들의 눈을 통해 함께 거닐다 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K 축제>들의 문제점들이 보인다. 주최자들이 스스로 느끼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렇게라도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다.

 특히, 소멸되어 가는 지방의 소도시가 그렇다. 꺼져가는 불씨에 작은 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도구로 축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축제를 통해 관광객을 유입시키고 지역민들을 결집시켜, 상권을 활성화하려는 하나의 정책인 셈이다.

 하지만 트로트, 품바, 막걸리, 전으로 점철되는 가치관도 정체성도 없는 지역의 축제는 꺼져가는 불씨를 오히려 꺼지게 만들어 버리는 바람이 될 뿐이다.


 이는 민(주민)은 없고 관(지자체)만 존재하는 축제로 결국은 아무도 찾지 않아 외면받는  축제로 전락하는 결과를 야기한다.




 또한 <전국축제자랑>에서는 생명에 대한 반성을 다루고 있다. 산천어, 연어 등 생명체가 축제의 메인 콘텐츠인 경우다.

 '맨손으로 OO잡기'와 같은 프로그램은 유행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가, 지금은 물고기와 전혀 관련이 없는 축제장에서도 이런 프로그램들이 떡하니 메인 혹은 서브 프로그램으로 자리하고 있다.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목숨을 걸고 돌아와 산란을 하는 자연의 숭고함이, 인간의 탐욕과 만나 잔인한 살육의 현장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연어를 직접 마주할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오감으로 생명을 느끼게 해주는 축제가 주는 이점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좁고 얕은 에어바운스 안에 연어를 풀어놓고 수백 개의 다리와 팔이 날아드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해내는 것 말고 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많은 축제가 취소되어 목숨을 건졌을 생명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2020년은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해왔기에 소중한 줄 몰랐던 '축제'에 대한 애정이 새롭게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던 한해였다. 더불어 2021년은 사회가 소규모 다양화되어가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축제 또한 큰 변화를 준비하고 시작해야 하는 한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제 축제는 기존의 대규모 인파, 대규모 예산, 대규모 장소,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양으로 모든 것을 때려(?!)녛는 '규모의 경제'에서 소규모 인파, 소규모 예산, 소규모 장소, 하나의 집약된 카테고리 안에서 깊이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범위의 경제'로의 대전환이 일어날 것이다.


 물론 한 번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지자체의 편성된 예산 혹은 지자체의 장의 의지, 지역사회 커뮤니티의 요구 등 축제는 어떠한 권력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부터의 당위성이 있더라도 참여하는 일반 객체는 코로나 19라는 최악의 전염병을 겪었고, 어떤 형태로든 트라우마는 그들에게 남게 된 상황에서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호흡을 함께 하는 축제의 장이 유쾌하게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축제를 기획하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또, 축제를 운영하는 행정가의 입장에서 어떤 방식, 어떤 대상, 어떤 장소, 어떤 주제, 어떤 가치로 앞으로의 축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너무나도 걱정이 되고 고민이 된다. 이미 뛰어난 아이디어로 앞서 나가고 있는 축제들을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초조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는 특히나 강연, 포럼, 워크숍들을 열심히 찾아다니고 최대한 많은 기획자들을 만나면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김혼비, 박태하 작가님들이 그랬듯 전국의 축제장을 직접 느끼며, 양질의 무언가를 찾아내는 여행을 한 달에 한 번쯤은 계획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내게 축제가 보여줬던 새로운 세계들이, 서른이 넘어버린 내게도 똑같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지난 3월 13일에 개최된 <제23회 제주들불축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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