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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May 20. 2021

21-15. 수상한 영화들의 수상한 제목

HugoBooks_우고의서재

수상한 영화들의 수상한 제목


 본캐(기획)든 부캐(글쟁이)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거나, 머릿속을 환기하고 싶을 때면, 텀블벅에 들어가서 기웃거리는 게 나만의 습관이다. 특히 전시, 공연, 출판 쪽을 주로 들여다보곤 하는데, 이번에 읽은 <수상한 영화들의 수상한 제목>이 가장 눈에 띄었다.

 본캐, 부캐 모두 '제목'을 잘 정하는 것이 성공적인 미션 수행에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제목'을 잘 짓기 위한 창의력 발휘에 많은 공을 들이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건, 내가 보지 못한 좋은 영화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영화의 제목에 숨겨져 있는 생각지 못했던 의도와 의미에 놀랐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1.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작품 속 촬영 기법과 특유의 색감 그리고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도 숨겨진 의미가 있었다.

 이 영화는 가상의 국가 '주브로브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호텔의 이름이자 제목에 특정 국가의 수도인 '부다페스트'가 나온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고, 부다페스트가 있는 동유럽의 헝가리는 당시 독일 나치의 피해국이었다. 

 또한, 가상의 국가 '주브로브카'는 '폴란드'의 상징적인 '보드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게다가 실제 영화의 촬영지는 헝가리가 아닌 독일인데,  독일의 세계 유산 도시 '괴를리츠'의 한 건물에서 촬영한 것이다. 그 이유는 '괴를리츠'가 반만 독일이고, 나머지 반은 동유럽(폴란드)이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인 웨스 앤더슨의 의도는 독일에 침략을 당했던 동유럽의 역사를 상징하기 위해 독일과 동유럽을 한 공간에서 담아낼 수 있는 최적의 촬영지를 선정한 것이다.


2, 그린북


 이 영화의 제목은 영화 초반부에 흑인의 운전기사로 고용된 백인 주인공에게 쥐어지는, 흑인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에서 따온 것이다.

 책이 초록색인 것은 맞지만 책 제목은 저자의 이름인 '빅터 휴고 그린'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흑인 우편배달부이자 여행작가였던 그린은 미국 방방곡곡을 떠돌면서 수많은 인종차별을 겪었던 사람이다. 그 경험을 토대로 흑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흑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숙소, 식당 등 편의 시설들에 대한 리스트를 모았다. 그 정보를 집약한 책이 바로 흑인 여행 안내서 <그린북>이다.

  '그린북'은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기인 1933년도부터 발행이 시작되어, UN에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선포한 1966년에 같이 막을 내린다. 그만큼 '그린북'은 그 자체로 인종차별의 역사를 상징한다.

 그린북은 아직 보지 못한 영화지만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영화로 이름을 올려두었다. 조만간 이 영화에 대한 리뷰도 브런치에 올리게 되지 않을까.

 

3. 그린 마일


 사형수가 교도소의 복도를 걸어 사형장까지, 즉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걸어가는 길을 '라스트 마일'이라 하고, 영화의 배경인 '콜드 마운틴 교도소'는 그 복도의 바닥이 '녹색'이었기 때문에 영화의 제목인 <그린 마일>이 탄생하게 되었다.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만큼 3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을 자랑하는데, 결국 영화의 주된 메시지는 제목인 <그린 마일>에 담겨 있다.

 '라스트 마일'인 그 길이 사형수에겐 '삶과 죽음'의 경계이지만, 사형수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탄생에서 죽음'까지 연결된 각자의 '라스트 마일'을 걷고 있다. 이는 교도소와 요양원이라는 이질적이지만 닮아 있는 장면의 오버랩으로 잘 표현된다.

 '라스트 마일'의 존재를 몰랐던 내게 영화의 제목과 설명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준 영화인 '그린 마일'은 소설이 원작이니 책으로 읽어봐야겠다.


4. 라라랜드


 환상적인 노래, 영상미가 돋보이는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는 단순히 LA를 뜻하는 의미 말고도 영화의 주제와 관련된 중요한 속 뜻을 가지고 있다.

 LA에는 할리우드가 위치해 있는데, 그것과 관련해서 '라라랜드'는 '꿈의 나라, 환상의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할리우드 지역의 수많은 '별'들을 보며 꿈을 꾸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말이다.(별=스타=연예인)

영화의 두 주인공은 '라라랜드'에서 각자가 꿈꾸는 별이 되고자 살아가며 <City of Stars>를 부른다.

 '라라랜드'는 사실 부정적 의미로도 자주 사용된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허황된 꿈을 꾸는 이들을 표현할 때가 그렇다. '몽상 속에서 살아가는, 헛된 꿈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지칭할 때 쓰이곤 한다.

 이렇듯 두 가지 뜻으로 쓰이는 '라라랜드'가 마치 영화의 결말 같아서 씁쓸하게 다가온다.


5. 셀마


 이 영화는 미국 흑인 인권 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그리고 그와 함께 인종차별에 대항했던, '셀마(미국 앨라배마 주의 도시)' 지역의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이 단순히 <마틴 루터 킹>이었다면,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향하게 하는 좋은 마케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흑인 인권 운동의 물결은 '마틴 루터 킹'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셀마' 지역의 핍박받던 수많은 흑인들이 함께 만든 것이기에 이 영화의 제목의 <셀마>가 되어야 함이 당연할 것이다.

 이 영화의 시사점이 바로 그 지점에 있을 것이다. 역사는 어느 한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연대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6. 쉰들러 리스트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의 제목은 <쉰들러의 방주>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제목 '쉰들러 리스트'는 쉰들러가 작성한 목록이 누군가를 구원해주는 '방주'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쉰들러는 사업가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임금 없이 유태인을 고용하는 등 사업 수완에 도움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었으나 우연히 유태인 학살의 실상을 목격하게 되면서 점차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결국 그는 유태인들을 구할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논란이 있다. 영화 제목인 '쉰들러 리스트'는 정말 쉰들러가 작성한 것일까에 대한 논란이다.

 '시뮬라시옹 현상'은 가상의 실재가 실재를 대체한다는 이론으로 특히, 가상의 실재가 많이 생산되는, 역사적인 사건을 그린 영화에서는 이 시뮬라시옹 이론이 자주 적용되기 때문에, 특히 더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모든 것을 경계하며 보는 것이 피로하고 영화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면, 영화를 본 이후에라도 보고 온 영화가 100% 실제를 반영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가져보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이 영화들 말고도 제목에서 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조금은 놀랍고 조금은 씁쓸하기도 한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렇기에 책을 읽어가면서 봐야 할 영화 리스트를 자연스럽게 작성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텀블벅 후원을 통해서 발간된 책이라 시중에서 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송영웅 작가님이 출판 계약을 하거나 추가로 펀딩을 하게 되면 꼭 구매해서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리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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