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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Jul 05. 2021

21-18. 일간 이슬아

HugoBooks_우고의 서재

일간 이슬아


우리가 인생에서 글쓰기의 재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첫 번째 순간은 언제일까? 나는 초등학교(누군가에겐 국민학교) 시절 억지로 써 내려갔던 '일기'의 늪에 빠진 그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일상을, 내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 남기는 것의 가치는 지난 30일간의 방학을 재창조하는 노동으로 퇴색되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물론 나도 처음엔 엄마의 혹독한 교육이 아니었다면 '일기'로 관철되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일기'의 진정한 가치는 글의 나이가 많아져 현재의 나와 괴리감이 깊어질수록 커진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내가 쓴 글을, 현재의 내가 독자가 되어 읽는 순간. 진정한 나의 내면과의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결국 서두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일기를 쓰는 것의 가치는 알지만, 일기가 내 월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했다'는 것에 있다. <일간 이슬아>는 말 그대로 '이슬아의 일기'이다.

 그리고 <일간 이슬아>는 책으로 발간되기 전, 월 구독의 형태로 이미 수익 구조가 정착된 콘텐츠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을 쓴다는 것 또한 이제 다양한 유통 채널을 통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사실 나도 구독의 형태로 내 글을 원하는 분들에게 서비스로 제공을 해볼까 구상해 본 적이 있다. 물론 용기부족으로 시도해보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콘텐츠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제 책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이 책은 57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텍스트를 보유하고 있다. 사피엔스, 총균쇠, 나니아 연대기 같이 벽돌에 가까운 책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타고난 이야기 꾼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아무리 유느님이라도 그의 이야기를 자주 그리고 많이 듣는 지인들은 그를 질려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정말 '일간'일 때 더 빛을 발할 거라 생각한다. 내가 <일간 이슬아>의 구독자였다면, 매일 밤 메일을 통해 날아오는 문장들을 기다리고 또 단어들에 설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슬아의 이야기들은 독자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든다. 그가 겪는 일상이 때론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의 부모님의 이야기는 나의 부모님이 떠오르게 만들고, 그의 남자 친구 하마는 내 짝꿍을 보고 싶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오히려 내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 버렸다는 표현이 이 책을 설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한 문장일 것이다.


 직업이 되어버린 글쓰기가 주는 압박과 스트레스를 경험해봤기 때문에 글쟁이의 삶에 대한 로망은 이제 더는 없다. 로망이 없어졌을 뿐 수익으로 이어지는 글쓰기에 대한 욕구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라는 책의 제목처럼 글쓰기 자체가 꿈인 작가가 아닌, 내 글쓰기 노동에 대해 적정 수준의 수익을 보장받고 싶다.

 한 달의 20편, 1만 원의 구독료. 한 편에 500원짜리 글. <일간 이슬아>의 이야기다. 비트코인과 주식 그리고 대한민국의 끝판왕 부동산 앞에서는 정말 정말 무의미할 정도로 작은 금액이지만, 읽는 것의 의미와 가치가 무너져버린 현대사회에서 한 편의 가격이 500원인 글이 소비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내 꿈은 A4 한 두장에 내 일상을 담아 500원에 판매하는 일이다. 언젠가는 <일간 휴이> 혹은 <일간 우고>가 구독자에게 발송되는 하루의 끝을 꿈꾸며.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추천사는 이슬아 작가의 친구 혹은 지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도 "나의 다음 책의 추천사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받아야지"라고 생각해왔는데, 정말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추천사를 써줄 '횸잘알'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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