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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Jan 16. 2022

22-1. 오늘도 한껏 무용하게

Hugo Books_우고의 서재

22-1. 오늘도 한껏 무용하게


2022년의 첫 책은 에세이로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많은 생각을 혹은 깊은 공부를 해야 하는 책을 읽을만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읽고 조금은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나오더라도 휘리릭 넘기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 필요했다. 그런 책이 <오늘도 한껏 무용하게>였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하고 "그냥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감성적인 에세이겠지" 생각했고, 그저 광역으로 퍼져나가는 희망의 메시지를 노래하는 글이라면 지금 내게 독이 될 게 뻔했기에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다.


우리 인생 대부분의 순간이 그러하듯, 이는 기우였다.




<오늘도 한껏 무용하게>의 이성진 작가는 자신의 무용함인 '뜨개질'을 통해 훌륭한 한 편의 책을 만들어냈다.


장작불 앞에서 뜨개질하는 듯한 편안함 그리고 뜨개질을 하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호기심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을 말이다.


사실 세상에는 중요하다 여겨지는 일들(유용한)과 굳이 없어도 이상하지 않을(무용한) 일들이 공존하고 있다.


보통 유용한 일들이 모여 사회를 만들고 다시 한번 유용한 일들이 모여 그런 사회를 유지해 나간다.


그렇기에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들은 유용한 사람이 되어야만 존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부단히 유용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지극히 나다운 나를 만들어 내는 것은 보통 무용함에 있다.


나처럼 특정 팀의 축구 유니폼을 시즌별로 모은다던가, 우리 형처럼 나무젓가락 껍데기로 꼬깔(술꾼 도시 여자들에서 정은지가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기 위해 접는 그런 것)을 만든다던가, 짝꿍처럼 다이소 시즌 상품을 꼭 구경하러 간다든가 하는 그런 무용함 말이다.


남이 봤을 때는 "대체 왜 저런걸?" 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 사람에게는 일종의 루틴일 수도 있고 나를 나로 온전히 있게 만들어 주는 중요한 가치일 수도 있다.


인간은 아마 그런 각자의 무용함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런 무용함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못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개인이 아닌 집단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해왔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각자의 무용함은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숨겨진 채로 발현되어왔다. 하지만 시대는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이제는 각자의 무용함이 소위 말하는 '힙'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나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대명사'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을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각자 '한껏 무용해지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은 평화로워졌다.


내 모든 시선이 유용함에 꽂혀 스스로를 너무 괴롭혔다는 것에서 또 나 자신을 몰아세운 것 같아 미안해졌다.


그래서 당분간은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으로 한껏 무용해져 보려 한다.


물론 직장인으로서 해야 하는 의무는 충실히 이행하는 선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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