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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Nov 20. 2021

21-24. 플라멩코 추는 남자

HugoBooks _ 우고의 서재

플라멩코 추는 남자


 밀리의 서재를 통해 완독 한 두 번째 책인 <플라멩코 추는 남자>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 책의 표지는 내 호기심을 끌만하기에 충분한 요소를 두 가지나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플라멩코'라는 스페인의 전통 춤이 제목에 적혀있었다는 것, 두 번째는 '세비야 스페인 광장'이 일러스트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 관련된 책이라면 우선, 구매하고 보는 나의 버릇이 여지없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좌) 플라멩코 추는 남자 책표지  /  (우) 내가 다녀온 세비야 스페인 광장


 67세의 남훈.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남성에 속하는 그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스페인, 플라멩코와 '굴착기' 기사인 남훈 사이에는 어떤 접점이 있는가?

 

 여기서 허태연 작가가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하나의 주제가 드러난다. 가정을 위해 헌신했던 가장. 하지만 가장이기에 앞서 한 명의 인간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대한민국의 중년, 노년층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


 대한민국에서 중년 혹은 노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에서도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고 유행 또한 빠른 속도로 바뀌는 게 대한민국이다. 이런 나라에서 중년과 노년은 세월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변화하지 못하는 존재들로 여겨진다. 

 소위 말하는 '힙'한 음식점과 카페에 들어서면 여러 개의 눈이 그들에게 집중된다. 어떤 이들은 그들과 내가 같은 공간과 서비스를 소비한다는 것에 노골적인 불쾌함을 표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소설 속 남훈처럼 백화점에 들어가 명품점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점원들은 그들의 행색으로 등급을 나누어 응대를 시작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회의 중심이 아닌 변두리로 내몰리게 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중년, 노년층은 열정도 생기도 잃고 황혼으로 저물게 된다.


 하지만 남훈은 26년 전, 마흔이라는 나이에 이미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새로운 삶을 얻은 기념으로 '청년 일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가장이라는 무게는 죽음보다 더 무거웠던 모양이다. 청년 일지를 쓰며 달라진 삶을 살기로 결심을 했지만 결국 2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는 '남훈'이 아닌 '남편'과 '아버지'로 살 수밖에 없었다.

가장이 아닌 남훈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다.


 남훈은 67세가 되던 해, 청년 일지에 적혀있던 '버킷리스트'들을 이루기로 결심을 하게 되고 가장으로서 남훈을 상징하는 '굴착기'를 팔기로 결정한다. 결론적으로 남훈은 굴착기를 팔지 못하고 한 청년에게 임대를 해주는데, 가장으로서의 삶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없는 남훈의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내와 딸을 부양하기 위한 '굴착기 기사'로 묶여버린 삶이 아닌,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굴착기'이기 때문에 어쩌면 굴착기를 팔아버리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부정하는 일이 될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굴착기를 팔지 않고 임대를 준 것은 '가장'의 삶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면서 '남훈'의 삶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로 하다



 남훈이 은퇴를 하고 처음으로 한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준비하는 일이었다. 여러 가지 언어를 고려하다 남훈은 '스페인어'를 선택하게 된다. 우리나라 말처럼 들리고 발음 그대로 발음하면 되는 스페인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스페인어는 DVD에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빨랐고 문법구조 또한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을 그만둘까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윽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지는 남훈


"어떤 언어 형식을 배운다는 건 새로운 관계를 준비하는 것과 같지요. 이 언어는 미래의 언어입니다. 멋진 기회와 새로운 만남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어요."


 스페인어 강사 '카를로스'는 남훈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실제로 남훈은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새로운 만남들이 생겼다. 굴착기를 임대해준 청년, 스페인어 강사 '카를로스', 플라멩코 강사 그리고 그가 애써 외면했던 첫 번째 딸까지.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자 했던 남훈의 결심은 새로운 관계로의 확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확장된 것은 관계뿐만이 아니었다. 스페인어를 배운 남훈은 스페인의 전통춤인 '플라멩코'를 배우기 시작했다. 플라멩코를 배우게 되면서 그는 최종적으로 '스페인으로 가야겠다'는 목표에 이르게 된다. 


첫 째딸 보연에 대한 무거운 마음


 

 이 책의 두 번째 주제는 아버지와 딸, 두 사람 간의 관계 회복이다. 남훈은 첫 번째 결혼 생활에서 '보연'이라는 딸을 가졌다. 하지만 첫 번째 결혼생활이 안 좋게 끝나며 그의 딸 보연을 전처에게 맡기고 남훈은 두 번째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남훈은 보연을 애써 잊고 살았다. 그녀가 중학생일 때, 학교 앞으로 찾아가 문구점에서 커다란 인형을 사준 게 다였다. 남훈은 청년 일지를 통해 자신의 딸 보연을 만나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보연은 남훈을 재회하고 자신을 왜 찾아왔냐고 화를 내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렇지만 남훈이 남기고 간 전화번호를 통해 다시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취한다. 동네의 한 돈가스 집에서 말이다.

 사실 남훈이 중학생 보연을 찾았을 때, 인형만 선물로 준 것이 아니었다. 남훈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돈가스 집에서 함께 돈가스를 먹었다. 보연은 그때의 돈가스 맛을 잊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아버지와 함께한 그 짧은 시간을 잊지 못한 것이었다.


 남훈은 보연에게 두 번째 선물로 노트를 사준다. 다른 선물도 많은데 고급 가죽으로 된 노트를 선물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왔다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귀하게 써 내려가라는 남훈의 마음이 담겼을 테다.

 보연의 나이 마흔, 남훈이 죽다가 겨우겨우 살아난 나이 마흔 하나. 부녀의 인생은 어쩌면 40이라는 숫자에서 다시 시작되는 공통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훈의 꿈을 이루는 순간에는 다름 아닌 보연이 있었다


 결국, 남훈은 스페인으로 향하게 되고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에는 지금의 아내도 지금의 딸도 아닌, 자신의 실패한 삶인 줄 알았던 그 시절의 딸인 보연이 함께였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남훈은 보연과 완벽한 관계 회복에 성공하게 되고, 앞서 걷고 뒤따라 걷는 부녀가 아닌 함께 걸어가는 부녀로 살아가게 된다.


 스페인 여행 이후, 보연은 남훈에게 '사진 앨범'을 하나에는 빈 공터들이 가득하고 다른 하나에는 공원, 건물, 도로 등으로 채워져 있다. 남훈은 의문의 앨범에 적잖이 당황하지만 이내 그 사진들의 정체를 알게 된다.

 비어 있는 땅은 남훈이 굴착기로 평평하게 공간을 다져놓은 곳이며, 그 위에 조성된 공원, 지어진 건물, 깔린 도로 등을 사진에 담은 것이다.

 남훈은 자신의 직업에 큰 보람을 느끼게 되고 헛된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마도 보연은 앨범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비록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지만,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굴착기로 잘 다져놓은 땅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본인은 그 위에 자신만의 모습으로 잘 세워져 있는 어떤 무언가라는 것을 말이다.  남훈은 앨범을 끌어안고 매우 매우 많은 눈물을 흘린다.

세비야 스페인광장에서 스페인 무희와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내는 남훈


 남훈은 '세비야 스페인 광장'에서 그토록 꿈꾸던 '플라멩코 추는 남자'의 꿈을 완성하게 된다. 스페인 무희와 함께 뜨거운 태양의 나라에서 누구보다 더 뜨겁게 불타는 열정으로 말이다.


 "플라멩코를 출 때 말이죠. 가장 중요한 건 사랑입니다. 그건 이성 간의 사랑만 뜻하는 게 아네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거죠. 그것이 타지를 떠돌며 살고 사랑한 집시의 정신입니다."


 자신밖에 모르던 남훈은 비로소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물론 그의 표현은 무척이나 서툴다. 마치 그의 플라멩코 동작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야 웃을 수 있다. 주변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청년 일지를 자신 있게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외침과 함께 말이다.


 "그래, 나는 플라멩코를 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이 났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플라멩코를 추는 남훈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남훈의 모습이 선명히 그려진 것은 아마도 세비야에서 실제로 플라멩코 공연을 봤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나는 플라멩코를 '여자가 추는 화려한 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만난 플라멩코는 오히려 남자의 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댄서의 구슬픈 하지만 열정적인 그 몸짓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열정적이고도 슬픈 춤을 68세가 된 남훈이 추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렀다. 나도 저런 열정을 저 나이까지 가지고 있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누구보다 타성에 젖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싫게 느껴졌다.

 그러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다. 나는 변해야 한다. 환경을 바꿔야 한다. 이런 생각에 닿으니 남훈이 딸 보연에게 마지막으로 던지는 말이 자연스럽게 내게로 향한다. 


남훈이 내게 남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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