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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Feb 23. 2022

오르간 오딧세이 : 사운드 볼트

롯데콘서트홀 기획공연 - 오르간 오딧세이 리뷰

오르간 오딧세이 : 사운드 볼트


Ⅰ. 파이프 오르간에 매료되다

 초등학생 시절, 모든 교과목을 다 가르치던 담임선생님은 피아노로 동요와 가곡 연주까지 완벽히 해내셨다. 사실, 그분이 완벽히 연주를 해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멋있고 존경스러웠다. 

 내가 교과목 중에 미술이 아닌 음악이라는 예술을 좋아하게 된 건, 그 당시 선생님이 연주하시던 풍금의 소리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다. 풍금을 연주하려면 선생님 옆에서 누군가가 가느다랗고 기다란 무언가를 옆으로 눌러주는 보조 역할을 해야만 했었는데, 열심히 손을 들어서 경쟁자들을 제치고 그 영광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치 내가 연주하는 기분으로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아 있다. 풍금이 오르간의 한자식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였다.

 초등학교에 보급되었던 풍금은 '리드 오르간'이었는데, 엄청난 크기와 개수의 파이프로 연주되는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로는 내 귀로 직접 파이프 오르간을 통해 나오는 음악을 듣고 싶은 꿈이 생겼다. 오르간이 내게 있어 로망이 된 것이다.

 이러한 로망이 경외로 바뀐 것은 스페인 여행에서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꿈들의 대부분이 스페인 여행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2017년의 이른 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였다.

 마드리드의 알무데나 대성당의 미사에 참여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파이프 오르간이 실제로 연주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파이프를 통해 나오는 음악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껴졌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공포물을 볼 때의 그런 오싹한 두려움이 아닌, 엄청난 대자연을 마주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두려움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한 없이 나 자신이 작게만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스테인드 글라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방문했을 때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울어버렸다. 가우디의 건축, 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 오르간의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경외감에 한참을 압도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너무 빨리 이 장면을 만나버린 게 아니기를 기도했다.


Ⅱ. 파이프 오르간과 다시 마주하다

  내가 파이프 오르간과 다시 마주하게 된 건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 「애니메이션 첼로 페스티벌 디즈니 vs지브리」 공연을 보러 간 '롯데 콘서트홀'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보게 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공연을 보고 나온 뒤 검색을 통해 우리나라 공연장 중, 유일하게 롯데 콘서트홀에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브런치를 통해서도 리뷰를 했던 「애니메이션 첼로 페스티벌」


 너무 기쁜 나머지 바로 롯데 콘서트홀 홈페이지에서 파이프 오르간 공연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2021년도 공연은 모두 끝난 상활이었다. 어쩔 수 없이 2022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고 새해가 되자마자 2월에 예정되어있던 「오르간 오딧세이」를 예매하게 되었다.

 수요일 오전이라는 시간의 제약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차를 써서라도 나는 파이프 오르간을 다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던 2월 16일이 다가왔다.


2022 오르간 오딧세이


 공연을 보기 위해 전 날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했던 터라 아침에 일어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잠실에 도착하는 순간부터는 피곤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객석이 오픈되고 가장 먼저 콘서트홀로 입장했다. 스크린 뒤로 아직은 그 위용을 숨기고 있는 파이프 오르간이 보였다. "저 파이프를 통해 어떤 소리가 뿜어져 나올까?" 무척이나 기대가 됐다.


롯데 콘서트홀 전경


 공연이 시작되고 파이프를 통해 첫 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아름다운 화음과 어우러졌다. 위풍당당 행진곡을 파이프 오르간으로 듣는 건 처음이어서 그랬던 건지, 문화재단 경력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너무 달리기만 해서 지쳐버린 내게 위로가 되어 그랬던 건지 눈물이 났다.

 내 글에서 무언가를 보고 듣고 울었다는 글을 자주 올리는 것 같은데, 내게 있어 예술을 평가하는 가장 큰 기준이 감동과 눈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Ⅲ.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저장하다

 오르간 오딧세이는 단순히 오르간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르간의 기능을 설명해주고 사회를 본 테너 김세일이 직접 파이프 오르간 내부로 들어가 오르간과 파이프가 어떻게 서로 작용되는지를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배움의 기회까지 제공해주었다.

 68가지 소리를 낼 수 있는 68개의 스탑, 오르간의 4단 건반, 500여 개의 파이프를 뿜어져 나오는 음악은 '악기의 제왕'이라는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의 황홀경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저는 오르간을 '사운드 볼트(Sound Vault)'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소리 보관소', '소리 저장고'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요. 냉장고에서 여러 재료를 골라 요리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소리를 보관하고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오르간이기 때문이에요."


 이 날 연주를 맡은 오르가니스트 박준호의 말을 들으니 파이프 오르간이라는 악기가 더욱 신비한 영물처럼 느껴졌다. 이어 파이프 오르간을 사람의 신체에 빗대어 설명을 시작했다.


 "파이프 오르간 내부 1층은 사람의 폐와 심장의 기능을 해 바람을 일으키는 송풍 기관, 2층은 소리를 내는 발성기관이에요."


 박준호에 이어 사람의 몸을 악기로 연주하는 테너 이세일이 디테일한 설명을 추가로 해주니 더욱 이해가 잘 되었다. 

 

 오르간은 보통 건물을 건축하는 단계에서 함께 지어진다고 한다. 여기서 조금 어색한 표현이 있었는데, 오르간을 '만들다'가 아닌 '짓는다'라고 표현한 부분이었다. 공간의 구성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확연히 다른 소리가 뻗어나가기 때문에 매우 섬세하게 건축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르간 제작자를 '오르간 메이커'가 아닌 '오르간 빌더'라고 부른다는 것도 신기했다.

 

테너 이세일과 오르가니스트 박준호의 커튼콜


 사람의 목소리 그리고 사람의 신체를 닮은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가 어우러져 완벽한 하모니가 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중 '나무 그늘 아래',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 헨델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모든 골짜기 높아지리라'가 울려 퍼지는 동안 눈을 감고 음악에만 집중했다. 

 마치 이곳이 유럽의 어느 성당처럼 느껴지며 스페인에서 느꼈던 감동들이 다시 몰려왔다. 눈을 잠시 떴을 때, 파이프는 금색으로 은색으로 붉은색으로 푸른색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참 감사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장면일까 봐 두려움에 눈물이 흘렀던 그 순간을 다시 마주할 수 있어서. 그리고  앞으로도 내 인생의 순간순간에서 이처럼 예술로 감동할 수 있는 날을 계속 만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별개로 가우디가 '사그리다 파밀리아'의 첨탑을 통해 오르간의 음악 소리를 바르셀로나 전역에 퍼지게 하려고 했다는데, 그가 성당을 완공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을지 잠시 상상해보았다. 2026년 완공될 예정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가우디의 꿈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 장소에 꼭 서 있었으면 좋겠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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