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오늘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낮에는 스며있던 불빛이 노을과 함께 어둠이 내려오자 도로마다 온전한 빛을 나타냈다.
너희를 데리러 가는 길은 막히고, 엄마는 미안한 마음과 조급한 마음이 뒤엉켰다.
비상등을 켜 놓고 부랴부랴 유치원에 뛰어 들어갔을 때 몇 켤레 남지 않은 신발장을 보고 슬픔이 밀려왔다.
2층 계단에서 터덜터덜 내려오는 온이와 유의 지친 표정을 보니 미안함이 밀려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는 애써 주름 가득한 반달눈을 지어 보이며 양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너희는 이미 캄캄한 밤에 접어든 것 같은 어둠을 보고 밤이 되었냐고 물었고, 엄마는 밤이 되려고 한다고 했다.
엄마는 미안한 마음을 숨기고 오늘 종일반은 재미있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온이가 말했다.
"오늘 간식으로 짜장 떡볶이가 나왔는데, 너무 맛있어서 세 그릇이나 먹었어. 근데 그때까지만 재미있었어. 나는 종일반 규칙을 하나도 모르니까 친구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봤고, 모르는 거 투성이었어"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오랫동안 놀아서 재밌었겠다"
"아니. 힘들었어"
"그랬어? 종일반 친구들도 맨날 유치원에 오랫동안 있으니까 힘들겠구나."
"근데 매일 종일반 하는 친구들은 계속 종일반을 해서 익숙해져서 그런지 안 힘들대 괜찮대."
"아.. 그래."
"나는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단 말이야"
너희의 투정이 미안하고 고맙고 안쓰러웠다.
고작 하루였다.
이전에 몇 번은 다른 일로 아빠가 하원 시간에 맞춰 너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늘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너희에게 이해를 구했던 오늘이었는데, 너희의 졸음 가득한 표정을 보니 후회가 밀려왔다.
오늘 아침 유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가 형아들한테 하는 수업 있잖아. 그 수업은 학습 주제가 뭐야?"
"엄마 나도 엄마 수업 들을 수 있어?"
"엄마가 선생님이라니까 진짜 좋다. 멋있어. 나도 엄마처럼 가르치는 거 할 수 있을까?"
엄마는 너에게서 학습 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기대한 적 없지만 너는 다 큰 형아들처럼 구체적으로 물었다.
엄마는 온종일 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학습 주제'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엄마는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었다. 그냥. 너희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했던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너희가 책을 좋아할까?
어떻게 하면 책을 재미있게 읽힐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책 읽기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엄마는 너희가 책을 좋아했으면 좋겠고, 책을 즐겨 읽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삶이 풍성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희가 듣는 둥 마는 둥 해도 책을 읽어주었고, 수준과 상관없이 누군가 책을 물려준다 하면 마다하지 않았다.
엄마의 장점이자 단점이 지식쇼핑이라 배우는 것을 겁내지는 않은 것도 있었다.
너희에게 수를 쉽게 재미있게 알려주려고 주산을 배우고, 역사를 이야기처럼 알려주고 싶어서 한국사를 공부했던 것처럼, 효과적인 책 읽기를 해주고 싶어서 독서지도자 공부를 했던 거였다.
배운 걸 너희에게 연습했고, 제출해야 할 많은 과제들을 너희들에게 응용하면서 자격증을 따게 됐고,
결국은 너희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했던 일들이 엄마에게 새로운 기회가 된 샘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엄마의 오늘은, 독서지도 선생님으로 처음 초등학생 형아 방과 후 수업을 했던 날이었다.
엄마는 오늘 형아들과 두려움과 용기에 대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발문과 다른 맥락으로 형아 누나들의 속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마음이 저리는 순간이 많았고, 자연스레 너희가 생각났다.
'너희에게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를 참 많이 생각했던 날이었다.
엄마는 너희가 조금씩 크면서 사회에서 인정받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는데, 오늘 그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아직은 엄마의 작은 욕심으로 너희에게 공백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업을 했던 보람보다 하원을 늦게 시킨 미안함이 더 컸던 거 같다.
텅 빈 신발장을 본 그때 그 마음이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일하는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가지는 미안함이 어떤 건지 조금 알 것 같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