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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May 26. 2022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

여덟 살 그리고 스승의 날.

언제나처럼 온이와 유가 잘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믿음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그 덕분인지 학교 가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괜찮게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커가면서 내 눈으로 확인하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줄어들고 있고, 또 모든 상황을 낱낱이 알 수 없는 당연함에서 녀석들은 스스로 부딪치고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조바심을 내지 않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무 잘 알면서도 당연하듯 걱정이 앞서게 될까 봐.

막연하게 아이들의 모든 행동을 믿어버리기로 했다. 


"잘하겠지." "잘할 거야"

내 마음 편하자고 말이다.



입학식을 하던 날부터 쭉 우리 선생님은 진짜 좋은 선생님이라고 하던 너희는 이렇게 좋은 선생님 반이 된 건 행운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선생님의 모든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너희의 모습에 엄마는 뭔가 믿는 구석이 생긴 것처럼 든든해졌다.

이렇게 적응하는 건 엄마인 내가 잘해서도, 아이들 스스로 잘해서도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온이와 유가 자라면서 낯선 곳에서 적응하는 시간과 새로운 것을 접하는 대부분의 기회는 유치원을 통해서였고,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관계 속에서 배운 것들이 지금 생활에 큰 바탕이 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떤 날에 온이와 유가 지나가는 유치원 차량을 보며 말했다.


"엄마 우리 유치원 진짜 좋았어."


"맞아. 유치원에서 활동도 많이 하고 재미있었고, 선생님도 진짜 좋았어"


"맞아. 생각해보니까 소피아 선생님은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는 거 같아"


등하교하다 유치원 차량이 보이면 차량이 멈추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뜀박질을 하는 녀석들이나,

신호대기 중에 유치원 차량이 마주치면 차량 지도 선생님을 확인하려고 시선을 쫓는 엄마나,

너희와 엄마가 유치원에 대한 기억과 선생님에 대한 마음이 이렇게 좋다니 엄마는 정말로 기뻤다.

훗날 사람 자체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을 알게 된다면, 그 베이스가 선생님에 대한 좋은 기억이 되길 바랐다.

신랑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검은 머리 짐승은 되지 말자'라고 했는데 온이와 유도 그랬으면 했다. 

그래서 좋은 기억은 오래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은 표현했으면 했다.


온이와 유는 우리 선생님이 알려주셨다며 말했다.

"엄마, 스승의 날은 나를 가르쳐준 선생님한테 감사하는 거래 그래서 일곱 살 때 선생님한테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고 했어" 

야무지게 잘 배워온 스승의 날의 의미를 되새겨 주려면 유치원에 가야 했다.

그게 너희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산교육이니까.


녀석들은 선생님이 좋아하는 도라지꽃이 그려진 편지지를 골라 저녁내 쓰던 편지와,

이 것도 주고 싶고, 저 것도 주고 싶어서 온 집을 둘러보며 무엇을 줄까 찾던 너희는 색종이로 열심히 접었던 새 한 마리와 아껴두었던 포스트잇 몇 장을 뜯어 선생님께 나눠주겠다며 봉투 속에 담았다.


졸업한 지 불과 3개월, 유치원을 둘러보던 유는 "유치원이 원래 이렇게 작았나?" 하며 온이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온이 역시 익숙하던 곳이 낯설었을까 선뜻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녀석들 말 끝에 그동안 몰랐던 성장이 보였고, 바닥에 철퍽 주저앉아 신발을 신던 너희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희는 갓 부화한 병아리를 보고 그때의 이야기를 꺼냈고 선생님은 기억해줘서, 찾아와 주어 고맙다며 눈물을 그렁거리며 반겨주셨다. 진심이 닿는 모습에 엄마도 울컥 눈물이 났다. 


돌아오는 길에 너희는 말했다.

"엄마 오늘 오길 정말 잘한 거 같아"


진심이 닿는 것, 누군가의 기억 속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어떤 건지 너희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 행복했다. 

엄마는, 너희가 마음이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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