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스물아홉 살이시라고..”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미간을 찡긋 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나는 조금 창피해서 웃음이 나왔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희망한다고 될 수도 없고, 허무맹랑한 말에 뜻을 담지 않고 했던 말이었다.
어른들은 당연히 농담인 줄 알고 건성으로 들었을 말에 온이와 유는 순수함 그대로 받아들였다.
너희는 순수함을 가졌고, 엄마는 뻔뻔함을 가지게 되었지만 엄마가 젊어서 좋다는 너희 말에 엄마는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 등 뒤에 서 있던 너희는 선생님이 하시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었고,
한 번 시작한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하더라도 엄마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순수함이 귀여웠고, 우리 엄마는 젊어서 좋다는 너희에게 실망을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희의 순수함에 엄마는 곧 들켜버릴 거짓말과 뻔뻔함을 보태보기로 했다.
“네!? 맞아요”
선생님은 당연히 눈치를 챘고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찡긋거렸다.
엄마 나이는 스물아홉. 사실은 마흔.
온이와 유가 한참 나이에 관심을 갖고 보는 사람마다 몇 살이냐고 묻던 작년.
"엄마는 몇 살이에요?"라는 말에, 엄마는 스물여덟이라고 했다.
그때 그 말을 기억하고 있던 너희는 올해가 되자마자 기쁘다는 듯,
"엄마 일 년 지났으니까 우리는 여덟 살이고, 엄마는 스물아홉 살이 됐어!"라고 말했다.
나는 시답지 않은 농담이었지만 온이와 유는 그만큼 순수했다.
그리고 어느 날 유가 물었다.
“엄마. 아빠랑 엄마랑 나이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는데 어떻게 결혼했어?”
"엄마. 근데 아빠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야. 내가 이십 살이 되면 아빠는 할아버지가 될 거 같아."
진지하게 묻는 너희의 말에 실소가 터졌고, 웃음이 새 나오지 않게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신랑은,
“너희 엄마 있잖아. 스물아홉 아니야. 사실은 사십 살이야”라고 말했다.
온이와 유는 그 말을 듣자마자 엄마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또 사실을 말할 수가 없어서 엄마는 올해 스물아홉이 되었고,
엄마는 젊어서 괜찮은데 아빠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 된다는 너희의 말에 엄마는 걱정거리를 덜어주었다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는 진짜 젊고 예쁜 것 같다던 너희 말에,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고 순간순간 너희는 몇 년 전, 몇 년 후를 얘기하며 나이를 셈할 때면 엄마는 말문도 막히고 생각도 막혔다.
그리고 너희는 이제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합리적 의심이라는 걸 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니 이미 엄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모르는 척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질문이 꽤 날카롭다.
"엄마 대학교는 4년이잖아. 대학원은 2년이니까 그럼 엄마가 학교 다 마친 거는 2년밖에 안됐어?"
"엄마 근데 아빠랑 십 년 전에 골프 쳤다고 했잖아. 그럼 엄마 열아홉 살에도 아빠를 만난 거야?"
"엄마 아빠랑 결혼한 지 11년 됐잖아? 그럼 엄마 18살에 결혼한 거야?"
너희는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자라는 것 같고, 생각 주머니의 깊이가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엄마가 괜한 거짓말을 시작해서 뜻하지 않게 너희는 탐정이 되어가고 있다.
장난으로 시작한 거짓말이었지만 사십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고, 너희 덕분에 내 나이가 들어가고 내 부모의 나이도 멀어져 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문득 맨날 제자리인 줄 알았던 모든 것들이 흘러가고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도..
엄마의 거짓말이 언젠가 들통났을 때 실망하지 않기를.
너희 말대로 늙지 않고 예쁜.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