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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Jun 30. 2022

환장 아닌 환상을 느끼게 하는 '캠핑'

캠핑을 다녀서 좋은 건 캠핑장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도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나이를 묻고 금세 친구가 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이라서 가능하고, 또 그곳이 캠핑장이라서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경계하기보다 쉽게 마음이 열려서 금세 친구가 되고, 그런 너희를 보면서 엄마도 긴장감을 조금 내려놓게 된다.

생전 처음 이곳에서 처음 봤는데, 마치 원래 친구였던 것처럼 저녁까지 같이 풀밭을 뛰어다니고,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책에서 봐왔던 곤충을 잡았다.


"엄마 여기 이상한 씨앗이 너무 많아 이거 무슨 벌레야?"

유는 바닥에 한가득 떨어진 오디를 보자마자 오돌토돌하고 시커먼 게 너무 많다며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텐트를 치다 말고 돌아보니 그늘을 만들어주던 나무들은 전부 뽕나무였다.


"작년에 너 많이 먹었잖아. 이거 오디야"

유는 기억나지 않는 듯 "아니야 나 이거 처음 봐 징그러워"라고 말했다.


"그럼 이거 한 번 먹어봐. 보는 거랑 달라"

징그럽다며 잔뜩 인상을 찌푸리던 녀석은 손에 묻히기는 싫고, 맛은 보고 싶었던지 가만히 서서 입을 벌려 오디가 입 속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이거야 말로 손 안 대고 코 풀기의 정석이 아니던가..

한참이나 기다렸지만 오디는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유는 바위를 밟고 올라가 개중에 말끔한 오디를 따서 입으로 호호 불어 먹었다.

유는 맛있는 걸 먹을 때면 츄릅 소리를 내고 강아지처럼 헤헤거리는데, 표정과 소리만으로도 단 번에 알 것 같았다.

"엄마! 엄마! 진짜 맛있어"


유는 모든 놀이를 멈추고 나무에 매달렸다. 

따는 족족 입 속으로 집어넣기 바빴고, 한 컵 가득 오디를 따서는 캠핑장에서 처음 만난 친구에게도 선심 쓰듯 나눠주었다. 도대체 무슨 궁합인지 모르겠지만 오디를 밥 위에도 얹어서 먹기도 했다. 

계속해서 따 먹어도 여전히 먹을 것이 남아 있으니 유에게 뽕나무는 마르지 않은 샘이나 다름없었다.

바람에 떨어진 오디는 주워다 돌멩이로 찧고, 나뭇잎도 찧고. 어느새 멀쩡하던 티셔츠는 얼룩덜룩 오디 물이 들었다. 

너희는 오디를 따먹고 놀다가 지루해졌는지, 장거리 운전에 텐트를 치고 정리하고 이제 겨우 숨을 돌리려는 아빠에게 쉴틈을 주지 않고 카약을 타러 가자고 했다. 

해가 정수리에 있어도, 해가 넘어가도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 아빠는 강의 상류와 하류를 오가며 노를 저었고, 너희는 잠자리채로 뭐라도 걸릴까 강을 훑었다. 

팔이 빠지도록 노를 저은 아빠와 잠자리채를 그물 삼아 휘젓는 온이와 유는 삽시간에 피부는 까맣게 그을리고, 옷은 몽땅 젖어서 돌아왔다.

온이와 유는 캠핑장에서 최고의 간식과 최고의 놀잇감 그리고 친구를 만났다.


낮에는 그늘 아래로 숨어든 사람들과 사이트마다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텐트를 보면 흡사 난민촌 같은데, 밤에는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불을 바라보며 불멍 하는 모습들이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반전이 있고, 고생 끝에 잠깐의 낙을 즐기자고 하는 게 캠핑이 아닌가 할 정도로 낮과 밤의 모습이 달랐다.

낮에는 오디를 실컷 먹고, 밤에는 마시멜로우를 녹여 비스킷과 초콜릿 사이에 넣어해 먹는 스모어를 먹었다.

온이와 유는 캠핑을 와서 세상에 있는 달콤한 맛을 보는 중이었다.

한 개만 먹고 그만 먹었으면 하는 엄마 마음과 달리, 온이와 유는 알고 있는 모든 감탄사를 쏟아내더니 "캠핑은 스모어지!"라고 했다.

낮에 놀던 친구도 하나 만들어서 갖다 줄까 고민하던 녀석들은 어둠을 뚫고 친구에게 갈 용기는 없는지 대신 아빠와 산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장작불에서 멀어지고 불빛에서 멀어지자 별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온이와 유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을 찾았고, 알고 있는 별자리 이야기를 하면서 갑자기 사이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어려서 기억을 못 할 줄 알았는데 정확하게 기억하고 그때 느꼈던 감정까지 표현했다.

"온통 깜깜한데 별이 쏟아질 것 같아서 무섭기도 했는데 너무 환상이었어."


엄마는 가끔 너희를 보면서 환장하는데, 환상이었다고 말하는 너희를 보니 엄마도 갑자기 지금 이 순간이 환상이라고 느껴졌다. 이렇게 너희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고 쌓여 같이 추억할 것도, 기억할 것이 많아졌다는 걸 깨달자 갑자기 더 행복해졌다. 엄마는 이상하게 너무 행복하고 너무 좋으면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은데 그날 밤 산책을 하면서 그랬다. 


조용하고 조용한 밤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빠와 너희가 함께 카약을 타는 모습을 보고 사진에 담는 것도,

아빠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엄마에겐 최고의 행복인 것 같다.

아 갑자기 이 순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사랑해 내 사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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