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잘한기쁨 Nov 24. 2022

여덟 살, 심부름에 도전한다.

'하고 싶다고 하는 건 뭐든 다 해주고 싶다'는 부모님의 말을 나는 똑같이 온이와 유를 보면서 생각한다.

맹목적인 이 말이 당연하게 느껴지게 될 줄은.. 예전엔 몰랐다.

나는 독불장군처럼 혼자 큰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너희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처럼 아낌없이 주고 싶은 마음이 넘치지 않게, 그저 내 부모가 가졌던 마음 그대로를 고스란히 너희에게 전하는 내리사랑을 하고 있다. 


내 부모에게 내가 귀한 자식이듯, 너희 역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이들이다.

그런 너희가 시작하는 것과 배우는 것에 두려움에 없기를 바라고,

그래서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고, 언젠가 완전한 독립이 되기를 바란다.

바라고 바라는 일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 많은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은 매일 다짐처럼 하게 된다.


'등교도 혼자 하겠다. 하교도 혼자 하겠다.'

혼자 하겠다는 말에 서운한 마음이 컸던 학기 초.

등하교를 혼자 하는 아이들은 이미 많고, 너희도 당연히 혼자 다니고 싶어 하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이제 등하교를 해주는 건 완전히 끝날 것 같았다.

조금 더 크면 등하교를 같이해주고 싶어도 완강한 거부에 엄두를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날씨가 더울 때는 가위바위보 하면서 진 사람이 부채질을 해준다거나, 그늘을 찾아 나무 밑으로 달려가 매미를 찾아보는 거, 추울 땐 양손에 온이와 유의 손을 꼭 잡고 주머니에 넣는 건 완전히 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거였다. 너희와 등하교를 함께하면서 느끼는 자잘한 기쁨을 놓기엔 아쉬워서 엄마는 시간을 좀 더 갖고 싶었다.


그래서 등하교는 당분간 함께, 혼자 해보는 건 심부름으로 하기로 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아파트 상가에 있는 마트지만, 혼자 물건을 찾아와 계산하고 가져오는 것이 조금 무섭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며 호기심을 보였다.

엄마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잘 다녀 오라며 인사를 하고, 얼른 베란다로 달려가 심부름 가는 유를 보았다. 유는 무전기와 장바구니를 들고 아파트 상가에 있는 마트까지 전력질주를 했다. 아무래도 겁이 났던 모양이다.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리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고 귀여웠다. 왜인지는 몰라도 코끝이 찡했다.


마트 갈 때 곱게 접어갔던 장바구니는 돌아올 땐 커다랗게 부풀어 있었다. 

시장바구니 가득 유가 좋아하는 잔치국수도 있고, 온이가 좋아하는 양파링과 유가 좋아하는 포카칩도 들어 있었다.

필요한 건 스파게티 면이었지만, 유는 좋아하는 것, 먹고 싶은 것을 골고루 담아왔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온 장군처럼 기세 등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나 잘했지!"

'아무렴 잘했고 말고!' 영수증과 카드를 돌려주는 자신감으로 완충된 표정을 보니 엄마도 마음이 들뜨는 것 같았다.

수학 문제 하나 더 맞추는 것보다 심부름을 잘 마친 게 훨씬 더 대견했다.


온이도 심부름을 시켜볼까 했더니 처음. 혼자. 해야 하는 게 겁이 났던 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종이접기를 하는데 원하던 색종이가 없자 온이는 색종이를 사러 집 앞 문구점을 갔다 오겠다고 했다. 그리곤 수첩을 꺼내와 문구점에서 사야 할 것을 적었다.

금은 색지, 양면 색종이, 단면 색종이, 문구점에서 파는 색종이를 종류별로 사려고 수첩에 연필로 꾹꾹 눌러쓰며 목록을 적었다.

'만약에 내가 찾는 물건이 없으면 어떡하지?' 묻던 온이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럼 작은 학종이도 하나 사야겠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온이는 수첩에 적힌 대로만 물건을 사 왔다.


심부름을 시켜보니 온이와 유가 또 얼마나 다른지 알겠다.

유는 부딪치면서 배우는 아이고, 온이는 정확하게 그려져야 행동으로 옮기는 아이였다.

같은 날, 고작 1분 차이로 나왔는데도 이렇게 달랐다.

온이와 유는 물건을 고르는 재미도 알았고, 둘 중에 하나만 골라야 할 때 가격표를 보는 것도 배웠다. 

시장놀이 같았던 심부름이 재미있다고 했다. 

심부름을 보내고 나면 돌아올 때까지 불안한 마음이었는데, 온이와 유는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해냈다는 경험으로 자신감이 더해졌다.

봄부터 시작한 심부름은 이제 좀 익숙해졌는지 시킬 것이 없는지 곧 잘 물어온다. 

덥석덥석 물건을 사 오던 유는 마트에 가기 전 메모해서 꼭 필요한 것만 사 온다.

그래서 가끔 장을 봐올 때 너희에게 심부름시킬 것 한 두 개 정도는 빼놓는다. 

엄마가 믿는 대로 믿어주는 대로 크는 너희에게 필요한 건 너희를 믿고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조금 더 담담하게 바라보는 건데 그게 조금 어렵다.

'안돼' '하지 마' '위험해' '그만' 이런 말을 조금 덜 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쉽지 않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초등학교 1학년. 첫 소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