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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Dec 22. 2022

초등학교 1학년 첫 운동회

지나고 꺼내는 묵은지같은 일기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1학년 첫 운동회(어울림 한마당)를 했다.     

익숙하고 당연한 운동회라는 이름은 세련되고 예쁘게 바뀌었지만 학부모 참석은 불가한다는 아쉬운 소식도 함께였다.       

첫 운동회라니 온이와 유가 긴장하고 기대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기대했다.     

코로나가 주된 이유겠지만 학무보 참석이 되지 않으니 학부모들은 학교 담벼락에 빼곡히 서서 구경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내 새끼를 찾아보겠다는 대단한 모성애와 부성애는 목을 빼고 수 백 명 사이에서 내 새끼를 찾아냈다.     

멀어서 안 보이고, 침침해서 안 보이는 노안까지 무력화시키며 말이다.  희한하고 대단한 일이다.      

수백 명 사이에서 까만 점 같은 내 아이만 눈에 쏙 들어오고, 전체가 무얼 하던 내 눈에는 너 밖에 안 보이는 상황에 그 자리에 있던 부모들은 하나같이 내 아이가 주인공이었다. 마찬가지로 엄마에게 주인공은 너희였다.               

운동회가 열리기 전 운동회의 꽃인 계주를 뽑았다.     

"아, 나 1등 할 수 있었는데."     

집에 오자마자 아쉬운 마음을 쏟아내듯 말했다.               

"오늘 학교에서 달리기 했어?"               

"응 이번주에 학교에서 어울림한마당 하는데 거기서 반 대표를 뽑으려고 달리기 했는데 2등 했어."               

"우와. 2등? 너무 잘했는데?"               

"1등 하고 싶었단 말이야."               

1등으로 달린 친구가 반대표로 계주를 할 수 있는데 유는 2등을 해서 반대표로 계주를 못하게 됐다고 속상하다고 했다.               


엄마는 그런 너에게 엄마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달리기는 맨날 꼴등 아니면 그 바로 앞이었다.     

운동회 때 여섯 명 중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손등에 3등 도장을 찍은 게 제일 잘한 거였는데, 기분 째지는 그때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한 거 보면 엄마에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어쩌면 유도 '하면 되는구나?' 하는 짜릿한 느낌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5명 중에 2등은 엄청나게 잘한 거니까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엄마는 달리기는 못하지만 완주를 목표로 하는 마라톤 대회도 여러 번 해봤다. 우리는 전부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다르다.      

그러니까 등수보다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과정을 같이 찾아가면 된다고.  

1등이면 어떻고 2등이면 어떨까. 안 다치고 재미있게 즐기면 그게 1등이지.'               

유는 이제 매일 저녁마다 달리기 연습을 해서 다음에는 꼭 1등을 하겠다고 했다.     

그게 말 뿐인 다짐이라고 해도 엄마는 너의 그런 마음이 기특했다.      

누군가를 이기려고 하는 것보다 스스로의 실력이 좋아지면 되는 거라고 알려주는 건  정말 어렵다. 명확하고 이상적인 이론을 너희에게 대입하려면 감정적으로 치닫던 엄마도 이성의 끈을 잘 잡아야 한다. 다분히 감정적인 엄마에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다 보면 너희가 엄마보다 나은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으로 말하게 된다.                

너희의 첫 운동회에 엄마는 정말 요즘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나 때는 말이지..' 하며 옛날이야기를 너희에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너희는 엄마의 이야기를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 듯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엄마가 어렸을 때 운동회는 온 동네잔치 같았다.     

운동장 흙먼지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고, 운동장 귀퉁이마다 커다란 돗자리를 깔고 우리 집 너네 집 할 것 없이 3단, 4단 도시락을 꺼내 먹을 것을 나누어 먹었다.      

한쪽에서는 과도를 꺼내 사과를 깎고, 배도 깎았다. 그리곤 김밥 싸 온 도시락 뚜껑을 뒤집어 마치 뷔페 접시처럼 음식을 골고루 담아 맛보라며 오늘 처음 본 옆사람에게도 나누어 먹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흙이 잔뜩 묻은 손으로 양념치킨을 집어먹었다가 손가락에 묻은 양념까지 야무지게 다 빨아먹었다. 지금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촌스럽고 그리운 추억이 떠올랐다.'               

수 백 명 사이에서 백 팀을 응원하던 너희를,      

바구니 속에 공 던지기를 하던 수많은 아이들 속에서 온이와 유를 찾아 헤매던 엄마의 시선을.      

입술을 앙 다물고 젖 먹던 힘으로 뛰던 너희의 표정과 몸짓.     

또 그 모습들이 뭉클해서 응원보다 숨을 죽이고 바라보던 떨리던 마음을. 

목을 있는 대로 빼고, 종아리가 아프도록 까치발을 들고 너희를 찾던 오늘을.     

엄마는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오늘 너희의 하루를 빗대 엄마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엄마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줘서 고맙다. 

오늘도 많이 사랑한다. 내 소중한 온이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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