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너희 손을 잡고 등교하면서 말했다.
"오늘은 눈이 아주 많이 올거래"
눈이 올 거라는 말에 이미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리고 한 껏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우와! 그럼 우리 오늘 썰매 탈 거야?"
"그럼 타야지!"
보슬 내리던 눈은 어느새 함박눈처럼 내렸다.
오랜만에 펑펑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 껏 들떴다.
내가 이렇게 들뜨고 설레는 정도니 온이와 유는 얼마나 더 좋을까..
삽시간에 눈은 가득 쌓였고, 교문은 나서던 너희는 펑펑 내리는 눈을 잡아보겠다며 뛰어다녔다. 쌓인 눈을 맨 손으로 훑으며 금세 손 안 가득 눈뭉치를 만들어 던졌다.
차가운 눈을 맨손으로 만지더니 빨개진 손이 아프다고 호호 불었다.
왁자지껄. 생기가 넘치는 하굣길이었다.
예상적설량이 10cm가 될 거라는 안전 안내문자대로 온통 하얗게 눈이 쌓였다.
눈사람 만들기도, 눈썰매를 타기에도 완벽했다.
이런 날은 당연히 놀아야 할 것 같았다.
엄마는 이면도로는 제설작업이 안 돼서 학원을 못 갈 것 같다는 핑계를 대고 너희와 놀 궁리를 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학원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교를 서둘렀고, 이미 기다리고 있는 학원 셔틀을 타는 아이도 있었다.
온이와 유에게 여덟 살에 어울리는 시간을 같이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오히려 날씨를 무기 삼아 핑계 대는 모습을 몸소보여주는 꼴인가 싶어 시원하게 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학원 안 가면 안 돼요?'라는 말이 나오면 '길이 미끄러우니까 오늘은 쉬어갈까'라고 말해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너희도 다른 아이들처럼 당연히 학원은 가야 하는 곳이었는지,
"엄마 우리 학원 마치고 눈썰매 타도 돼요?"라고 했다.
엄마는 그런 너희가 고맙고 안쓰러웠다.
"그럼! 당연하지 우리 스키복으로 갈아입고 눈썰매도 타고 오랫동안 놀자!"
우리는 작년까지 눈이 오면 썰매 타기 가장 좋은 곳을 찾아가서 눈썰매를 타고, 눈사람도 만들었다.
집 근처 공원에서도, 놀이터에서도, 한강에서 63 빌딩을 등지고 눈썰매를 탔다.
너희는 눈 속에 온몸을 파묻듯 바닥에 뒹굴고 기다시피 해서 눈을 쓸어 담았다.
입김에 속눈썹은 하얗게 얼고, 볼과 귀는 빨갛게 얼었다. 온이와 유가 옷이 다 젖도록 놀고서야 집에 돌아왔었다.
눈만 오면 옷이 젖도록 노는 너희를 위해 겨울이 되기 전 미리 스키복을 준비해두게 되었다.
눈 오는 날 원 없이 놀라고..
학원을 갔다가 저녁밥도 먹고 할 일도 끝내놓고 아무도 없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우리 가족 넷은 신나게 놀았다.
너희가 세 살 때부터 타던 썰매를 여덟 살 오늘도 아빠와 엄마는 열심히 끌었다.
너희를 태우고 누가 빨리 가나 시합도 하고 신나게 끌었는데, 이제는 온 힘을 다리에 주고 끌어도 속도 내는 게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썰매에 타서 빨리 달리라며 응원하는 너희의 목소리도, 깔깔깔 숨넘어가는 웃음소리도, 해맑게 웃는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맨 손으로 썰매 줄을 잡고 끌어서 손이 시리고 아픈 것쯤은,
추워서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만큼 그 순간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온이가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있잖아. 이번 겨울 중에 오늘이 최고야"
엄마는 너의 그 말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에 사로잡혔다.
너희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할 수 있어서 고맙고, 좋아해 줘서 고맙다.
말 그대로 행복했던 밤.
오늘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