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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Oct 25. 2022

초등학교 1학년. 첫 소풍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첫 소풍을 갔다.

엄마는 현장체험학습이라는 말이 입에 붙지 않아서 계속 소풍이라고 하고, 녀석들은 엄마의 표현을 자꾸만 바로잡는다.

"엄마 현.장.체.험.학.습 이라고요"


소풍 가는 날이 확실해지자, 온이와 유는 기대에 부풀었다.

몇 밤이나 더 자야 소풍을 갈 수 있는지 매일 손가락을 꼽아가며 빨리 현장체험학습을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기다리는 내일이 온이와 유에게는 더디게 와서 애가 타고, 엄마는 총알 같아서 마음이 조급 해지는 참 알쏭달쏭한 시간이다.


말 그대로 첫 소풍.

온이와 유는 설레고 기다려져서 잠 설치는 날이고, 엄마는 난데없는 도시락 숙제에 없는 솜씨를 어떻게 부려야 할지, 부지런을 또 얼마나 떨어야 할지 설치게 되는 날이다.


유치원 소풍 때 소담하게 김밥과 과일과 과자를 싸서 보냈는데, 소풍을 다녀온 녀석들은 김밥도 맛있었지만 다음에는 예쁘게 꾸며서 도시락을 싸 달라던 녀석들의 말이 늘 마음에 남았었다.

그래서 이 번에는 왠지 그렇게 해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도시락은 싸지 않아도 된다는 희소식에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온이와 유는 김밥과 유부초밥을 주문했다.


"피자 만들기 체험을 하고 점심으로 먹는다고 했는데 피자가 어떻게 식사야? 엄마 나는 김밥 싸주세요."


"엄마 나는 유부초밥 싸주세요."


"응? 선생님이 도시락은 싸지 말라고 하셨는데?"


"응 근데 간식 먹고 싶은 거 싸오라고 했으니까 김밥을 간식으로 먹을게"


"맞아. 나는 유부초밥이 먹고 싶으니까 간식으로 먹을 거야. 소풍은 유부초밥이지!"


"아니지 소풍은 김밥이지"


식성이 다르고 먹고 싶은 게 다른 너희는 김밥과 유부초밥이라는 쌍두마차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가지 메뉴로 통일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은 저 멀리 날아갔다.


온이와 유가 잠든 늦은 밤. 

우엉을 썰어 졸이고, 당근을 채 썰어 볶았다.

어묵을 썰어 삶아 양념을 하고, 햄을 삶아 볶았다.

계란 지단을 만들다 집어먹고, 

썰고, 볶아 김밥 속 재료를 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다섯 시간 후 압력솥에 새하얀 밥을 안치고, 

과일을 씻어 도시락통에 넣었다.


'두근두근 기대되는 너희의 첫 소풍이 

오래도록 기억될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란다. 

안전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길 사랑해'라고 포스트잇에 미리 편지도 썼다.


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몽롱한 상태로 한 김 식힌 밥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했다.

어떤 건 단무지를 빠트리고, 또 어떤 건 햄을 빠트렸다.

그렇게 김밥 몇 줄이 자유롭게 만들어지고 나서야 모든 재료가 빠짐없이 들어간 김밥이 완성되었다.


김밥을 썰어 도시락에 넣고 남은 꼬다리를 입에 넣으며 유부초밥 양념을 하고 한입 크기의 유부초밥을 만들어 온이와 유 도시락을 각각 완성했다.


도시락이 다 챙겨질 때쯤, 온이와 유는 일어나라고 깨우지 않아도 혼자 스스로 일어났다. 

그리고는 현장체험학습에 가져갈 준비물들 하나씩 챙기면서 칠판에 써놓은 체크리스트에 표시했다.

한껏 들뜨고 부푼 온이와 유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침에 주스 한잔으로 출근하던 아빠도 김밥을 먹었고,

온이와 유도 김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온이는 김밥 맛을 보더니 유부초밥을 빼고 김밥으로 바꿔서 싸 달라고 했다.

느긋하게 하려고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준비했는데, 갑작스러운 변경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도 탄수화물만 잔뜩 들어간 유부초밥 보다야 김밥이 나을 테니까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번갯불에 콩을 볶아 봤다.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학교 가는 길에 만나는 친구마다 반갑게 인사했고 참새처럼 총총 뛰었다. 난데없는 뜀박질을 하면서 웃음이 넘쳤다. 오랜만에 보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너희는 40인승 리무진 버스를 타고 현장체험학습을 떠났다.

교문을 통해 버스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려고 많은 엄마들이 스스로 라인을 만들고 손을 흔들며 배웅을 했다.

기분이 참 이상했다.

단지 소풍을 가는데, 도착지가 멀어서 버스를 탔을 뿐인데도 짙은 선팅 사이로 내 아이를 찾아보겠다고 까치발을 들고 목을 빼서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이게 뭐라고 울컥했다. 

내 아이가 보이지 않아도 안전하게 잘 다녀오라는 마음으로 손을 흔들던 엄마들의 모습이 새삼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다 키운 것 같은 서운함은 뭐고, 기특함은 뭔지 모르겠다.

온이와 유 덕분에 별거 아닌 거 같은 작은 일에 감동하고, 행복하고 벅찬 감정까지 평생 모를 뻔 한 감정들을 느끼게 해 줘서 고맙다.

너희의 첫 소풍이 오래도록 기억될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란다.

엄마도 오늘 너희의 표정을 오래도록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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