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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Oct 25. 2022

학원을 안 보낼 자신? 그런 건 없다.

학기초 밀물처럼 교문을 빠져나오던 아이들은 방과 후다 뭐 다해서 드문드문 하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교한 아이들도 학원이다 뭐 다해서 학교 앞 공원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은 채 30분이 되지 않는데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듯 뛰어다닌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렇게 지내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분명 마음껏 뛰어놀아야 하고,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학원 라이딩을 하고 있는 내 모습과 타이트한 스케줄에 이리저리 뛰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기껏해야 예체능과 영어학원이었고, 우리만 하는 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하니까 처음에는 당연한 것 같았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학원에 안 보낼 자신.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온 몸으로 체험하는 공부를 시켜줄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공부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 

공부가 인생의 좌표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언제 그 좌표에 스며든지도 모르게, 그 속에서 위치를 바꿔가며 옮겨 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공부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던 건 보이는 모습일 뿐이고, 공부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는 그 이면을 뚫은 건 아닐까..

공부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은 어딜 가고, 더해야 할 것 같은 욕심을 쌓게 될까 봐, 엄마 마음대로 방향을 정하고 너희를 끌고 가게 될까 겁이 났다.


학원을 안 보낼 자신? 이제는 솔직히 없다. 아이들이 원하는 수업이 있다면 무리 없이 듣게 해 주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중에 가지치기를 도와주고 다양한 경험 속에서 스스로 선택할 힘을 생기게 해주고 싶다.

학원이 모든 것의 대안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이미 학습적인 부분을 빼고도 많은 부분을 사교육의 도움을 받고 있고 부정할 수도 없다.

수영이 그렇고, 피아노나 미술도 마찬가지..

전공을 시킬 건 아니니까 어느 정도 익어가면 가지 치듯 정리가 되겠지만 또 어떤 시기에 학습적인 부분을 가지고 사교육에 의존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1학기가 다 지나가고 2학기 끝이 보이는 지금도 고민이고 앞으로도 가져가야 할 고민이라는 것만 명확해진다.

지금처럼 발맞춰 공부를 하는 게 맞는 걸까,

세상 보는 눈을 키우려고 조금 다른 길로 가도 되는 걸까,

학습을 피하고 싶어서 도망갈 길을 찾아보는 건 아닐까. 

한달살이를 해볼까, 아니 일년살이를 해볼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만 같고, 자유롭게 놀게 하고픈 이런 생각이 너희를 위한 건지 엄마가 하고 싶은 건지 생각하다 보면 엄마가 하고 싶어서인 것 같아서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엄마의 선택이 엄마 혼자만의 방향이 아니라 너희의 인생에 영향을 줄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겁이 난다고 할까.


결국 선택은 엄마가 할 거면서 계속해서 너희의 의견을 묻는다. 


"우리 제주도 가서 살까?"


"아니. 그냥 여행으로만 가자."


"거기 가면 더 많이 놀 수 있어."


"안돼. 전학가야 하잖아. 난 우리 학교가 좋단 말이야."


지금 학교가 좋다는 너희를 보면서 엄마는 힘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가 즐겁고 재미있는 곳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은 일이니까. 집안 정리도 미니멀이 그렇게 어렵더니 학습을 미니멀하려니 도통 정리가 되지 않는다.

더 하는 거 말고 덜한 방법을 찾고 싶은데 결국은 안 하는 게 돼버릴까 그것도 어렵다.

너희의 속도대로 가는 것이 맞는 건지, 대부분의 것들을 남들과 비슷하게 맞춰가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말 그대로 쉬운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거 하나는 알겠다. 

너희 스스로를 위해 하는 것들이 너희를 괴롭히는 일이 되지 않게 해야겠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엄마의 다짐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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