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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Aug 11. 2022

안경이 제법 잘 어울려요.

여덟 살. 근시 진행 중.

유는 검은색 뿔테를 썼고, 유를 보는 사람들은 해리포터 같다고 했다.

해리포터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인물 책에서 본 조앤 롤링 이야기의 주인공과 닮았다는 말에 유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유는 안경을 쓰고 잘생겨졌고, 똘똘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빠 닮아. 안경이 잘 어울렸다.

안경이 잘 어울리는 건 다행이지만 안경을 쓰게 된 것은 못내 미안했다.


"엄마 진짜 잘 보여"

그동안 유가 보던 것들은 모든  선명하지 못했던  했다.

아마도 뿌옇거나, 흐렸겠지.

안경을 절대로 쓰지 않겠다던 녀석은 선명하고 깨끗한 세상을 보고 크게 놀랐는지 꾸밈없이 두리번거렸다.


이십 년 전, 내가 라식을 하고 처음 한 일은 창문을 열어 바깥세상을 보는 거였다.

라식을 하기 전에 봐왔던 모든 것들은 흩어지고, 몽달귀신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반짝반짝 빛나는. 티끌도 없는 유리창으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선명했고, 상쾌하다 못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선명하고 깨끗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그 느낌이 너무나 강렬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유도 그때의 나처럼 그런 거 같았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시력이 좋지는 않았지만 안경을 쓰는 건 조금 기다려 보자고 했다.

안경 쓰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아니까 아직 어린 유에게 그 불편함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안경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실망을 했고, 좋아질지도 모를 가능성을 두고 기다려 보고 싶었다.

안경이라면 울고불고 질색을 하던 유를 달래고, 설득도 해보고 겨우 안경을 씌웠더니

"엄마 진짜 잘 보인다."며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시 보고 싶은 듯 안경을 쓰고 한참을 둘러봤다.

그동안 안보여서 몰랐던 불편함을 알게된 유는 안경을 잘 찾아썼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안경을 쓰고 3개월 만에 다시 병원에 갔더니 시력은 그새 직하강을 하고 있었다.

신경을 쓴다고 쓰고, 챙긴다고 챙겼는데 어째서 시력은 뚝 뚝 떨어졌을까.


마스크를 쓰고 안경까지 쓰다 보니 불편한 건 당연했다.

실수로 밟고, 안경다리가 어디까지 벌어지는지 궁금해서 활짝 열어보다 3개월 만에 안경도 두 개나 부러뜨렸다.

드림렌즈가 대안이 될까 해서 검사를 했지만, 시력이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서 비용 대비 효과가 미미할 거라고 했다.

조막만 한 얼굴에 안경을 걸치게 하는 것도 속상한데, 안경알이 두꺼워지고 무거워지는 것까지 보태주고 싶지 않았고 시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멈춰주고 싶었다.

안약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선생님 말에 엄마는 고민 끝에 그러겠다고 했다.

무지한 엄마는 안약이 인공눈물액 정도 될 거라 생각했는데. 심전도 검사도 해야 했다.


심전도 검사에서 재검이 떴고, 소아전문병원에서 재검을 예약하고 검사받는 순간까지 엄마는 가슴을 졸였다.

언제나 그렇듯 너희가 아프면 엄마는 그게 지옥이었다. 그래서 숨 쉴 때마다 화살기도를 했다.

그동안은 살면서 무서운 게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너희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엄마는 그게 무섭고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무탈했다.

엄마가 마음고생을 하는 건 상관이 없으니까 그저 너희가 아프지 않은 걸로 충분히 감사했다.

안약 치료를 시작하고 눈부심이 심해졌고, 따갑고 부작용도 함께 왔지만 시력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모든 것은 점점 좋아질 거라고 믿는다.

너희를 위하는 일이 너희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기를 바라고,

언제나 너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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