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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Sep 01. 2022

세탁기는 빨래만 하는게 아니었다.

세탁기가 돌고 있는데 달그락 거리다가 세탁기 통에 부딪치는 소리가 쨍하다.

무엇 때문인지 이제 짐작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온이 바지 주머니 속에 있던 돌이 빠져나와 여기저기 부딪치다가 소중한 엄마의 세탁기를 때리는 소리다.

엄마는 이제 벌떡 일어나 세탁기로 달려가지 않는다. 

빨래가 끝나고 나서 건조기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은 돌들을 주워다 쓰레기통에 넣을 뿐.

그래도 다음날이면 또 양쪽 주머니 가득 돌을 주워 올 테니까.

엄마와 온이는 각자의 루틴대로 버리고 줍고를 반복한다.


지금은 세탁기에서 돌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지만, 예전에는 롤러코스터의 주인공이 '응가'였다.

온이와 유가 세 살 가을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 앞에 앉아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똥 똥 똥"거렸었다. 그러다 깔깔 웃다가 또 "똥 똥 똥"..

그냥 엄마를 찾지 않고 둘이 노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던 때라 그렇게 놀고 있는 너희를 가만히 보다가 꽤 오랜 시간을 제자리 앉아 있는 게 이상해서 엄마는 너희 옆에 앉아 너희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엄마는 잘못 본 건 아닐까 스스로 눈을 의심하며 유심히 지켜보았고, 너희는 계속 웃었다.

너희를 그렇게 웃게 했던 게 똥이었다니..

"엄마 똥이 빙글빙글" 깔깔깔. 

순간 현타가 오긴 했지만 말 그대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고 이미 벌어진 이 상황을 멍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온이와 유는 기저귀에 있던 동글동글한 똥을 손으로 집어서 세탁기에 넣었고, 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너희 침을 닦던 손수건과 함께 세탁기를 돌려버렸던 거였다. 그러고 보니 너희는 손에도 바닥에도 내복에도 똥칠을 하고 웃고 있었다.

엄마가 잠깐 편하자고 너희를 가만히 놔둔 대가는 너무 컸었다.

엄마는 세탁기를 멈추고 세탁조를 몇 날 며칠을 청소를 했는데도 계속해서 똥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오늘 세탁기에서 돌이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똥이 떠오르는 그때를 추억할 수 있어서 고맙다.

그때는 고단했던 일이 지금은 추억이 되었던 것처럼, 너희와 함께하는 오늘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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