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잘한기쁨 Jul 21. 2022

사물함에 넣어둔 팽이는 어디로 갔을까?

학교 교문에서 나오는 온이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언짢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시무룩한 표정이 못내 신경이 쓰였다.


"온아. 오늘 학교에서 뭐했어?"


"엄마 말하고 싶지 않아."

온이는 평소와 다른 말투로 지금까지 표현한 적 없던 말로 대답했다.

말하기 싫을 때는 '그냥'이라고 말하던 녀석이 정확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래.? 그럼 온이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해줘. 엄마가 기다릴게."

온이는 대답이 없고,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 채 걸었다.


'무엇이 녀석의 심기를 건드린 걸까. '


하루 종일 풀 죽어 있던 온이는 밤이 되어서야 속을 내보였다.

"엄마. 있잖아. 학교에서 선생님이 블럭을 나눠주셨어. 그래서 팽이를 만들어서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이랑 팽이 시합을 하거든. 근데 그게 없어졌어."


"팽이를 잃어버렸구나."


"아니야. 사물함에 넣어뒀는데. 사라졌어."


고작 1학년. 말이 1학년이지 하는 짓은 여전히 꼬꼬마인 여덟 살 아이들이 누군가의 물건을 몰래 가져갔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서랍에 둔 건 아니야? 엄마처럼 깜빡했을 수도 있잖아."


"분명히 어제 학교 마칠 때 사물함에 넣어뒀는데, 오늘 가니까 없었어. 엄마 근데 누가 가져갔는지 알 것 같아. 사물함에 넣어뒀는데 나처럼 없어진 친구가 두 명이나 더 있어."


"누군지 알 것 같아도 내가 본 것이 아니면 의심하면 안 돼. 어린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어른한테 도움을 구하는 거야. 선생님한테 말씀드렸어?"


"응.. 근데 잃어버린 건 못 찾는다고 하셨어."


그래. 선생님도 엄마처럼 생각했을 테지. 

여덟 살. 고작 1학년이 사물함에서 몰래 가져갔을 거라고 생각 못했을 테니까 온이가 잃어버렸을 거라고 단정 지으신 모양이었다.

온이는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잃어버린 게 돼버렸고, 도움을 구했지만 찾을 수 없다는 말에 억울했던 거였다.

온이의 잘못이 아닌데 온이의 잘못이 되어버렸다.

나였어도, 억울했겠지만 이건 바로 잡아야 될 문제였다.

누군가를 놀리자고 한 놀이였는지, 재미있어서 한 거였는지, 갖고 싶어서 한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인 건 분명했다.

허락받지 않은 다른 사람의 서랍을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되고, 친구가 찾고 있는 걸 보았다면 돌려주었어야 했다.

유별난 엄마는 내가 기대한 엄마의 모습은 아니지만 오늘의 일이 오늘로 끝나야 했다. 번복이 되어서 아이에게 억울한 감정을 누적되게 할 수는 없으니까.


'누군가의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가면 안 되는 거라고 일러주셨으면 좋겠다고, 

이런 일이 번복되면 서로 속상한 일이 생길 테니 지도를 부탁을 드린다고.'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엄마는, 엄마가 되고 많은 일에 '그럴 수도 있지'하고 생각하는 일도 많아졌지만, '그러면 안 되지'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할 일에 힘을 실기도 했다.


온아. 사물함에 넣어둔 팽이는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려고 하지 말자.

가져간 아이는 돌려줄 타이밍을 놓쳐서 이미 마음이 힘들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오늘처럼 언제나 엄마에게 훌훌 털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방패가 되었지만 언젠가 방어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의 힘이 커지고 용기가 생겨서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너희가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지혜롭게 자랐으면 좋겠다.

엄마는 오늘도 엄마가 하지 못했던 것을 기대하면서 바라기만 하는 것 같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팔은 흔들흔들 춤추는 오징어 다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