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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Dec 30. 2022

눈이 와서 좋은 날

지나고 나서 꺼내보는 묵은지 같은 이야기

'적설량 8cm.

아침부터 눈이 내릴 거라는 날씨예보.'


지난주,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밤늦도록 썰매를 타고 눈싸움을 했던 그날이 최고였다던 너희는 내일의 날씨예보를 듣고 이미 들떠있었다.

밤늦도록 자지 않는 너희에게, "일찍 자면 아침이 빨리 찾아오니까 얼른 자자"라고 말했다.

너희는 마치 그 말이 진리인 듯 "어 그러네? 빨리 자야겠다. 우리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가기 전에 놀다가 가자"고 했다.


"얘들아. 눈 온다! 일어나!"

너희는 '눈 온다'는 말에 벌떡 일어났다. 평소 깨우는 것보다 훨씬 수월한 아침이었다.

눈이 와서 그냥 좋은 녀석들은 옷도 입기 전부터 스키장갑을 찾았다.

하교 길에는 책가방을 엄마한테 맡기지만 등굣길에는 책가방이 제아무리 무거워도 스스로 메고 가는 녀석들이 오늘은 엄마가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너희의 계획이 눈에 선해서 엄마도 당연하듯 가방을 들어보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총알처럼 뛰어나간 너희는 눈을 밟고 쌓인 눈을 손으로 훑으며 눈뭉치를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던지다가 눈을 뒤집어쓰고도 좋아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부지런히 가도 지각인데 온이와 유는 참으로 여유롭다.

마음 같아서는 다그쳐서 빨리 가야 할 것 같은데, 많은 날을 서둘러 등교할 때가 많으니까. 오늘 같은 날은 계절 그대로를 온전히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다들 지각을 면하려고 서둘러 가는데 온이와 유에게만 시간이 멈춘 듯 느긋하게 눈싸움도 하고 눈에 발자국도 꾹꾹 찍었다. 

펑펑 내리는 눈도, 수북이 쌓여가는 눈도, 너희의 귀여운 모습도 그냥 다 예쁜 날이니까. 천천히 웃으면서 등교하자 싶었다. 화를 내서 학교를 보내고 나면 온종일 마음이 편치 못하기도 하니까.

교문은 닫히기 직전이고, 온이와 유는 마지막까지 한 번이라도 더 눈 뭉치를 만들어 던지고 싶어서 마음이 바빠 보였다.


"우리처럼 눈싸움하고 놀면서 등교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렇지?"


"응! 엄마가 최고야!"

생색내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엄마는 기어이 과분한 칭찬을 선물을 받아냈다.

설령 진심이 아니라도 표현해주어 고맙다. 

눈 올 때마다 썰매 타고 어린이집 갔던 기억을 아직도 생생하게 표현하는 너희를 보면서, 엄마도 이런 날은 다른 건 다 접어두고 너희의 예쁜 추억 하나를 더 해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엄마가 생각해 보건대, 오늘 가장 잘한 일은 너희를 재촉하지 않고 계절을 느끼게 해 준 것이고, 

지각할까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너희에게 화내지 않은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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