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이맘때였던 것 같다.
열이 펄펄 끓는 독감에 걸린 온이와 유를 데리고 어린이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가..
두 녀석 모두 팔에 링거줄을 꼽고 아파서 울고, 짜증 나서 울고, 안 먹겠다고 울었다.
엄마는 그런 너희를 어르고 달래다 속상하고 힘들어서 소리쳤다.
아침 식사도 안 했는데 점심식사가 와서 쌓였다.
머리는 며칠이나 못 감았는지, 그날 따라 티셔츠는 왜 그렇게 목이 늘어났는지..
아픈 너희 입 속에 밥 한 숟갈 더 넣어보겠다고 애쓰면서도 정작 내 입에는 물 한 모금도 넣지 못했다.
엄마는 밥숟갈을 들고 있는데, 너희는 밥숟갈 앞에서 도리질을 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던 벚꽃과, 분 단위로 지하철이 지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보면서 괜히 더 서러웠다.
엄마는 화장실에서 꺽꺽 거리며 울고 나왔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너희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때도 지금도 독감은 여전히 무시무시 했다.
한 반에 열 명 이상이 독감에 걸리다보니 비켜가는 게 이상했다.
감기가 겨우 떨어지는거 같더니, 고열에 기침가래까지 증상이 얼마나 지독하던지..
타미플루를 먹고, 엿새가 되도록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동네 병원을 전전하다 결국 그때 그 병원을 다시 찾은 오늘.
주사 바늘을 꽂고 링거줄을 매만지던 온이가 말했다.
"엄마 여기가 싹둑. 거기 맞지?"
"응?"
"이거 줄 말이야. 싹둑. 맞지?"
"어. 그게 기억나? 맞아! 이 거 가위로 잘라서 피가 철철 났잖아. 엄마가 얼마나 놀랐다고."
옆에서 듣던 간호사 선생님이 "너 대단한 아이구나!" 하며 웃으셨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 때를 우리는 헤프닝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다.
링거 줄을 자르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던 다섯 살 온이는 줄을 잘랐었고,
아홉 살 온이는 그 때를 기억해 냈다.
그때의 엄마는 주사 줄에서 피가 뚝 뚝 떨어지는 걸 보고 까무라쳤고,
간호사 선생님은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황당해 했었다.
그 때의 네 표정과 말투, 상황..모든게 선명했다.
힘들고, 서럽고 미안했던 그때의 감정도 아득한 줄로만 알았는데 되려 어제의 일처럼 또렷해졌다.
그리고 그 끝에 엄마가 너희를 키우느라 놓쳤던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고,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었다.
그래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서, 자괴감 같은 것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런데, 오늘 너희를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엄마는 너희가 이렇게 크는 걸 놓치지 않고 봐왔고,
당연하게도 너희에게 엄마가 필요했던 모든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당연해서 몰랐던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독감에 걸려서 고생했던 온이와 유 그리고 엄마,
독감 걸린 셋을 뒤치닥 거리 하느라 고생했던 아빠.
우리 가족은 지금처럼 팀워크가 좋은 팀으로 함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