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이와 유가 미취학이던 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지금보다 더 마음에 여유가 많았던 것 같다.
꽃이 피는 계절에는 꽃 멍울을 찾아보며 꽃이 피는 것을 기다렸고,
비가 오면 물 웅덩이에 참방거리고, 빗 속을 뛰어다녔다.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 울음소리가 멈추는 날까지 매미 잡으러 다녔고,
가을이 되면 바스락 소리를 들으러 가자며 낙엽을 밟으러 갔다.
눈이 오는 날은 모든 날을 통틀어 제일 신났던 날이었다.
엄마는 너희에게 계절이 주는 온전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원시간이 빨랐고, 이후에 우리는 많은 시간을 뛰어놀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을 때,
사소한 것들이 하나 둘 쌓인 어느 날 '그때 좋았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희가 살아갈 많은 날 중에,
이런 자잘함들을 주춧돌 삼아 나아가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고,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힘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걸어가던 온이가 말했다.
"엄마 나는 비 오는 날이 참 좋아요"
"그래?"
"옛날에 비 오면 비 맞고 막 뛰어놀았잖아? 그때 정말 신났거든.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노는 친구는 우리 밖에 없었어."
"그랬지."
"비 오는 날도, 눈 오는 날도.. 엄마! 우리는 매미도 많이 잡았어 그치? 우리 이번에도 매미 많이 잡자!"
온이가 추억을 하나 둘 꺼내듯 좋았다고 말했다.
엄마와 함께 놀았던 시간을 추억이라 여기고,
그 추억들을 하나 둘 꺼내보는 시간이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났을 때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홉 살이 된 네가 추억을 곱씹듯 말하니 엄마는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온이가 '그때 좋았는데'라고 말하는 그때가, 지금을 버티는 힘이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던 거다.
너희가 학교에 다니고부터는 재촉하는 일도, 다그치는 일도 많아졌다.
노는 공부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그때와 다르게,
친구들과 다르게 흘러가는 일상을 꿈꾸는 게 어려워져서일까?
엄마의 주관은 어디 가고,
보고 익히길 바라는 공부 방향에 너희를 세워야 되는 당연함에 엄마의 욕심이 닿아서일까?
더 이상 유아가 아니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 수 있단 생각에 괴리감을 느꼈다.
그래서 온이도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비 오는 날이 참 좋다'
'그때 참 좋았다'
이 말에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걸 보니 엄마가 반성해야 할 것이 많은가 보다.
엄마는 여전히, 너희에게 엄마가 필요한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함께하고,
무심히 지나온 계절처럼 그렇게 너희 곁에서 함께하고 싶다.
그래서 아홉 살 온이와 유의 시간도, 훗날 참 좋았다고 기억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