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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Dec 04. 2019

엄마는 공주님

다섯 살 나의 왕자들

온이와 유를 임신하고부터 지금까지 근 6년을 혼자 외출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임신했을 때는 금방이라도 뻥 터질 거 같은 배가 무거워서 두 손으로 배를 받치고 뒤뚱거리며 걷는 게 어려웠고, 후에는 조산이 될까 꼼짝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낳고 나서는 당연히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아이들이 자라나는 시간과 나의 늙음을 바꾸면서 우리는 세트처럼 늘 함께 다녔었다.


그런데 올해. 벌써 세 번째 외출을 했다.

외출이라고 해봤자 대학 동기, 작가 동기들 결혼식이 전부였지만 나는 오랜만에 눈썹에 결을 더하고, 볼과 입술에 색을 입혔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유는 말했다.


“엄마, 엄마 오늘 진짜 예뻐요 공주님 같이. 손톱도 발톱도 색깔이 예뻐요. 근데 엄마 신발이 제일 예쁜 거 같아요. 기린처럼 높은데 예쁜 소리가 나서 더 좋아요” 


그리고는 심심하면 가지고 놀라고 가방에 공룡메카드 다섯 개를 넣어주었다. 유가 가지고 있던 가장 소중한 장난감 전부를 주는 예쁜 마음은 눈물이 핑 돌만큼 감동이었고 사랑이었다.

처음 외출했던 날은 발도 안 떨어지고, 시간마다 전화를 하며 밥은 먹었는지 어디에서 뭐하고 노는지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마치 처음 어린이집을 가던 날처럼 데려가라는 전화가 걸려올까 싶어 어린이집을 맴돌던 그때 그 마음처럼.. 역시 처음은 어려운 거였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는 아이들도 나도 여유가 있었다.

엄마가 외출했다 돌아온다는 것쯤은 알고, 아빠와 함께 골프 경기를 보러 골프장을 갔다가 불꽃놀이까지 보고 돌아왔던 기억은 엄마의 외출이 어렵지 않은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또 기대하는 시간이 되었으니 외출하는 나도, 남은 셋도 거뜬했던 거다.


지난 주말, 결혼식에 갔다 올 테니 아빠와 놀아야 한다는 엄마 말에 온이가 말했다.

“엄마 공주님 만나러 가는 거예요?”


“응”


그러자 유가 말했다. 

“엄마 엄마도 아빠랑 결혼했으니까 옛날에는 엄마도 공주였어요?”


“그럼. 엄마가 공주님이었을 때 사진 보여줄까?”


“엄마 공주님 사진 있어요?”

“네! 네! 볼래요”


이제는 귀퉁이가 바래진 앨범을 꺼내 온이와 유 앞에 펼쳐주었다.

그러자 온이와 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 엄마 진짜 예쁘다. 진짜 공주님 같아”


“엄마! 공주님 옷 지금은 없어?”


“응 지금은 없어”


“엄마, 공주님 옷 입으려면 결혼해야 돼?”


“응”


“엄마 공주님 옷 입은 거 보고 싶다. 나중에 나랑 결혼할 때 입게 해 줄게”


“고마워”


결혼 준비하면서 웨딩 촬영했던 사진을 몇 번이나 열어볼까 싶어 할까 말까 많이 고민했는데 오늘 그 값을 치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침에 집을 나갔던 엄마는 해 질 녘 유칼립투스와 남천 다발을 들고 아빠와 온이와 유가 있던 국립 민속박물관으로 갔다. 저 멀리서 엄마를 알아본 온이는 달려와 말했다.

“엄마 이게 뭐예요?”


“유칼립투스야”


“엄마! 코알라가 먹는 게 이거예요! 코알라가 이렇게 향기로운 걸 먹었나 봐요!!”


유가 달려와 온이 손에 있던 다발을 낚아채며 말했다. 


“엄마 나도 이다음에 어른되서 결혼할 때 이런 꽃 들고 결혼하고 싶어.”


멋있는 게 좋아서 예쁘기만 한 엘사 같은 공주는 싫은데 엄마가 공주 되는 건 좋다던 온이와,

빨리 어른 돼서 엄마는 공주옷 입고 결혼하고 싶다는 유.

엄마는 다 가진 기분이라 행복하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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