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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Feb 08. 2020

어쩌다 제주도 여행

지나고 써보는 여행기

“여보 나 애들 데리고 제주도라도 다녀올까?”


“그래! 애들 좋아하겠다.”


“여보가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뭐 가도 좋고, 안 가도 좋고 하고 싶은 대로 해”


“응”


바깥활동에 제약이 많은 겨울 방학을 ‘어떻게 버텨내지’ ‘여행이라도 가볼까’ 긴 방학을 집에서 어영부영 지지고 볶고 버티는 시간으로 남는 것보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한 번 해본 말이었다.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그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물으면 안 되는 거였다.

신랑은 눈이 어쩌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물었다.


“갈 거야?”


“어디?”


“제주도 갈 거라며”


“누가?”


“애들이랑 갈 거 아니야?”


“내가?”


“가려고 한 말 아니었어?”


나는 여행을 가면 어떤 모습인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는 거였고, 신랑은 가고 싶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호응하듯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는데 이미 신랑은 숙박과 렌터카를 알아보고 있었다.

큰 뜻 없던 입방정에서 비롯된 온도차는 조금씩 선명해지더니 여행을 가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신랑에게는 자유시간을 나에게는 긴장감에 박진감까지 더한 육아 기행이 시작되었다.


제주도 여행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일기예보는 여행기간의 절반을 우산이 그려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출발하는 날 겨울비가 내렸다.

비행기 타러 간다고 신나서 나왔는데, 택시까지 탄다고 하니 신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서로 창 측에 앉겠다고 아웅다웅하던 온이와 유는 창가에 얼굴을 기댄 채 창밖으로 지나는 풍경을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느라 신이 났다.


“엄마 엄마 비가 창문에 묻었는데 너무 예쁘게 묻었어요. 빗방울이 너무 예뻐요.”


“엄마 엄마 바람도 부나 봐요. 나무가 춤추고 있어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온이와 유는 날씨와 상관없이 이미 신났고, 걱정스러운 건 엄마 몫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일정과 코스가 없던 여행을 했었다. 도시에 머무르면서 지내면서 그때 그때 가고 싶은 곳은 갔었다. 그렇게 얻어걸린 추억이나 경험이 좋아서 해외여행은 당연히 그러했고, 국내여행도 대부분 그랬다. 그래서 온이와 유가 태어나면서 여행을 계획하거나 일정을 짜는 것은 당연히 신랑 몫이었다. 주최자가 없는 여행에 주도적인 인솔자가 되어야 하는 부담감이 ‘여행을 가볼까’하고 생각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걱정이 더해졌던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는 건 이미 뱉어진 말. 그놈에 입방정 때문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이번 여행을 함께하기로 한 신우네를 기다렸다. 공항은 결항과 회항 가능성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멈추지 않았고, 제 때 떠나지 못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와중에 비행기는 언제 타냐며 안달 나던 아이들은 되물었다.


“엄마 회항이 뭐예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거야”


“우리 그럼 제주도 못가?”


“그럴 수도 있대.”


“안되는데. 가야 된단 말이야.”


출발하게 될 거라는 확신은 어디서 비롯된 건지 결항과 회항 가능성. 집에서 아이들과 다시 복작거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그 모든 가능성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제주도는 지금 최고기온이 영상 23도 온실이라는데 아래위로 히트텍까지 입혀 와 땀 찔찔 흘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번 여행은 어쩌면 시트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비행기는 제시간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고, 비행기가 이륙하자 식탁을 내리며 물었다.


“엄마 밥 언제 나와?”


“배고파?”


“응. 도시락이랑 장난감은 언제 주는 거야?”


“오늘은 금방 도착할 거라서 없어. 대신 도착해서 엄마가 사줄게. 우리 조금만 자자”


“나는 배가 고파서 잠을 못 자겠어요.”


배고프다는 유를 달래는데 녀석은 배고프다고 울기까지 했다. 가엽고 귀여운 영락없는 아이 모습에 짠하다가 웃음이 났다.

얼마 안 있어 비바람이 등 떠미는 제주도에 도착했다.

바람에 머리카락은 뒤엉키고, 장마처럼 퍼붓는 빗줄기에 우산 하나에 머리 셋이 들어가는 건 포기하고 온이와 유에게 함께 쓰라고 쥐어준 우산마저 바람이 뒤집어 버렸다.


“엄마 바람이 너무 세요.”


“그렇지? 이렇게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제주도는 바람이 유명하대. 내일은 송송이 돌 현무암 보여줄게”


“우리 얼른 차 받으러 가자”


바람이 머리채를 잡고 흔들건, 습한 바람이 훅하고 온몸을 감아도 들뜬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바닥에 고인물에 퐁당뛰어들었다. 신발은 젖고 엄마의 언성은 높아져 가는데도 너희는 비를 맞고 깔깔대다가 바람에 뒤집어지는 우산처럼 배꼽을 잡고 뒤집어졌다.

날씨와 상관없이 우리 이렇게 배꼽 빠지게 재미있게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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