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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Mar 27. 2020

차가운 시간 그럼에도 봄

 

코로나 19가 참 많은 걸 바꾸어 놓았다.

일상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일상이지 않은 날이 되고,  <페스트>나 <눈먼 자들의 도시> 소설이 더 이상 가상이 아니라는 것. 시간이 더 할수록 이 책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선명해지고, 소설의 배경이 현실이 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금방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함 마저 사라지자 겁이 났다.


현관문을 걸어 잠근지는 한 달도 넘었다.

현관문이 열리면 바이러스라도 들어올까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 아빠에게 달려가 안기는 대신 멀찌감치 떨어져 겉옷과 가방에는 살균소독제를 뿌리고, 손에 소독제를 짜주는 것으로 반가움을 대신했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 갇힌 건지, 아니면 스스로 현실성이 떨어진 건지 이런 일상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 기가 막혔다.

그 사이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확진자가 나왔다. 관리사무소에서 확진자 소식을 알리는 방송이 나옴과 동시에 인터넷 기사가 속보로 쏟아졌다. 


"여보 우리 아파트에도 확진자가 나왔대. 오후에 아파트 전체 방역도 할 거라는데.. 여보 회사에 알려야 되는 거지?"


"응"


베란다 너머로 방역하시는 분들의 분주한 모습을 보면서 불안을 넘어 선 무서움이 느껴졌다.


통화를 끝으로 신랑은 출근한 지 세 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와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고, 그 후 재택근무 일 수가 늘어나고 출퇴근 시간도 조정되었다.

처음엔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놀이터라도 가자고 울고 매달리던 아이들은 더 이상 나가자고 하지 않는다.

어차피 집에서 있어야 하는 거면 먹는 거라도 잘 먹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활동량이 줄어드니 먹는 것도 시큰둥하고 삼시세끼 해대는 수고는 티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간식거리가 떨어져 아파트 상가라도 다녀와야겠어서 같이 나가자고 하면,


“코로나 걸리기 싫어요. 엄마 혼자 갔다 오세요.”라고 말한다.

몇 번을 되물어도 엄마 혼자 갔다 오라는 말만 계속하는 아이들을 두고 나갈 수가 없어서 멈추고 또 멈추었다.

그러다 겨우 옷을 겹겹이 껴입고 빵을 사러 나갔는데, 아파트 화단에는 언제 피었는지 모를 봄꽃들이 만개했다.

"엄마, 지금이 봄이에요?"


"언제 봄이 온 거예요?"


겨울에 갇혀 지내는 동안 봄이 온 줄도 몰랐는데,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옷을 두껍게 껴입은 온이와 유는 반달눈을 하고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봄이 어떻게 왔지? 엄마 마술 같아요!!"


"나는 봄이 제일 좋아요. 개나리가 너무 예뻐서 개나리랑 결혼할래요"


계절적 변화를 맞닥뜨리고 기뻤던 오늘처럼 평범한 일상을 맞닥뜨렸으면 좋겠다. 되도록 빨리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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