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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Feb 07. 2020

육아 6년차

 

아들을 키운다고 특별히 어렵다거나, 특별히 힘든 점은 없다고 생각했다.

딸을 키우는데서 오는 어려움의 정도나 아들을 키우는데 드는 품은 막연히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성별보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보호자로서 역할과 그 노동 자체가 어려웠던 거라고.. 이 모든 게 다 처음이니까 당연히 쉬울 수가 없는 거라고..

그럼에도 육아라는 게 조금 익숙해지려 하면 아이들은 자라니까 매번 마주하는 거리들은 새롭고 다른 날의 연속이었다. 완전한 나인지도 모르겠는데, 콩알만 한 아이들을 완전한 인격체로 대하기엔 나의 역량 부족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이 모든 게 힘에 부칠 때면 내 속에 잠재돼 있던 활화산이 터지면서 동시에 본적 없던 본성을 맞닥뜨렸다. 익숙해지기 무섭게 레벨 업하고 있는 아이들을 쫓아가기에도 급급한데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의문이 드는 날이 많았다.


엄마가 불러도 듣지 못하고 덤벙대다 쏟고 흘리고 넘어지는 모습이 불안하고, 높은 곳에 기어오르고 뛰어내리는 놀이를 멈추지 않으니 엄마는 어디라도 다칠까 애간장이 녹는데 요즘은 싸움놀이까지 더해져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저어가며 노느라 엄마는 고개 숙여 사과할 일이 많아졌다. 너희는 당연히 엄마한테 혼나는 상황이 늘었다.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맞게 노는 게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상대적으로 별 나보이는 모습 때문에 어렵고 불편한 순간도 종종 있다. 때문에 나 같은 엄마들은 ‘아들’이라는 말만 붙어 있으면 내가 모르는 해결책이 있을까 하여 시선과 시간을 빼앗기나보다.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왔던 패널이 했던 말이 잊히지가 않는다.

‘딸은 엄마를 피 말려 죽이고, 아들은 엄마 혈관 터져 죽게 한다.’는 말이 귀에 꽂히자마자 신랑과 나는 웃음을 터트리다 못해 한참 동안 눈물을 짜내가며 웃었다. 

웃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가 왜 이렇게 공감하고 있는지 모를 씁쓸함과 그리고 나만 미치광이가 되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 그리고 무엇보다 내 속에서 이따금 꺼내지던 괴물은 혈관이 터지기 전에 나타나는 전조증상과도 같은 거라고 생각하니까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나 자괴감 같은 것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평범하게 완전한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위안을 더했다.


그럼에도 잠든 아이들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깊은 잠에 들 때까지 발을 주무르고 등과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언제 이렇게 많이 자랐나 싶어 스스로가 큰 일을 해낸 것 같은 뿌듯함에 사로잡힐 때도 있고, 또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는 게 기특해서 고마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대부분 아이들이 대여섯 살쯤 "너 몇 살이야?"가 시작되는데, 온이와 유는 이제는 그걸 넘어서서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말투에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을 빼곡히 채워 말한다.


"저 여섯 살 이에요."


"얘는 몇 살이에요? 저는 여섯 살인데"


온이와 유는 스스로 큰 형님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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