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같은 반. 득일까 실일까?

by 자잘한기쁨

새 학기마다 듣는 말 중에 단골은 "왜 애들 같은 반 안 했어요?"라는 말이고, 그다음이 "안 힘들어요?"다.

형제나 자매가 있어서 같은 학년을 두 번씩 보내는 학부모도 있는데 그나마 나는 학년이라도 같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정보력에 있어서 강자인 셈이다.

그러니까 '힘들어요.'라고 하면 엄살인 것 같고, 그나마 적당한 말이 '괜찮아요'인 것 같다.

할 만하다고 하기엔 엄마가 깜빡하고 놓치는 게 많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체크해 가면서 가방을 챙겨주지는 않는다.

스스로 하다가 빠트리고 혼도 나 봐야 고칠 기회도 생기는 거라고 믿기 때문인데, 이 부분은 사실 잘하고 있기보다 여전히 연습하는 단계라고 봐야 한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5학년이 시작된 지금까지도 풍월은 아직도 멀었고, 언제쯤이면 빠트리지 않고 잘 챙겨 다닐지 궁금하다.

그나마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확인하는 습관이 좋아지고 있으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속 터지는 걸 꾹 참을 수 있는 아량이 있는 엄마이거나 무계획이 계획인 엄마라면 추천해 봄 직한데, 나는 후자에 가까운 편이라 잘 견딜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게 또 자식 일이다 보니 열 번에 두 번 정도는 화가 나서 샤우팅을 했던 것 같다.

작년에 학부모 상담 주간에 상담하는데,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쌍둥이인데, 둘 사이가 안 좋아서 분반했나 하고 생각했어요."


"아..그건 아니구요. 서로한테 의지하지 않고 각자의 사회생활을 해보라고…."

사이가 안 좋아서 선택한 분반이기보다 정말. 말 그대로 각자의 사회생활을 연습할 수 있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었다. 서로 의지하고 보듬는 형제애는 집에서도 충분할 테니까 엄마의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한 선택이었달까.

하지만 각자도생을 위한 선택이, 멀리서 볼 때 어쩌면 오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괜한 걱정이 보태지는 것 같았다. 또 달리 생각해 보면 다양한 경험치가 있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곧이어 선생님이 말했다.

"근데, 제가 잘못 생각했더라고요. 친한 친구 이름 쓰는 칸이 있었거든요. 유가 다른 반 친구 이름을 써도 되냐고 묻더니 쌍둥이 형 이름을 쓰더라고요. 그때 사이가 안 좋은 게 아니구나!' 했어요."


멀리서 보이는 모습이 오해되는 건 안타깝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으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쌍둥이가 각각의 다름이 인정받기보다, 그와 다름으로 비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쌍둥이의 각자 개성이 다른데 마치 한 세트처럼 묶이는 경우가 많아서 독립적으로 봐주길 바랐다.

친구들이 혼자 사회생활을 배워나가는 것처럼, 서로에게 기대거나 의지하는 건 집에서 충분하니까 밖에서만큼은 오롯이 혼자 부딪치고 배워나갔으면 했던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늘 같이 있던 녀석들을 떨어트리는 걱정과 불안감은 아이들보다, 사실 엄마가 느끼게 될 부담감과 긴장감이었다.

챙겨야 할 것도,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은데 엄마가 놓쳐서 아이의 실수가 되는 게 싫었고, 표면적으로는 무던했지만 태연하지 못했던 엄마의 불안감이었다.

이 모든 걱정을 완벽히 덜 수는 없지만, 매일 하루 잘 굴러가는 게 익숙할 때쯤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결국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 같았다.


쌍둥이는 둘 중 하나가 주목받으면 '나도 잘해야 할 것' 같고, '나도 잘할 수 있는데' 하는 시샘과 질투가 생기는데, 분반의 가장 좋은 점은 이런 점들이 해소가 된다는 점이었다.

또 친구들과의 놀이에서 주도적으로 하는 아이가 있고, '같이 놀자고 말할까'하는 고민 한번 없이 이미 만들어진 판에 쓱 들어가는 아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도적인 아이 옆에 있다가 노력 없이 만들어진 무리에 쏙 들어가는 게 고정값이라면 나중을 위해서 변화가 필요했다.

또 둘이 같이 있다 보면 양보를 기대하는 사람이 있고, 양보를 강요받는 일이 있다. 아직은 아이다 보니 이런 것들이 때때로 다툼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떨어져 지내면서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학교생활을 하고, 그동안 누르고 있던 각자의 성향과 기질대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오롯이 '나'로 성장하길 바랐다.

쌍둥이 형제이면서 평생 제일 친한 친구가 되길 바라는 부모 마음은 변함없지만, 그 마음과 별개로 분반을 한 결과로만 보자면 무조건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성향이 너무 다른 두 녀석은 친한 친구들의 분위기도 달랐고, 수업 시간은 물론 놀이시간에도 각자의 개성대로 커가는 게 보였으니까.

작년 겨울방학을 맞이할 때쯤 선생님께서 5학년 때도 분반할 건지 미리 여쭤보셨다.

나는 당연히 분반하겠다고 했는데, 녀석들은 같은 반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엄마, 학교에 다른 쌍둥이들은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고, 지금도 같은 반인데 왜 우리는 같은 반이 안 되는 거예요?"


"같은 반 되고 싶어?"


"네. 같은 반 되면 재밌을 거 같아요!"


"그건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이라 엄마도 잘 모르는데, 같은 반 되기를 기대해 보자. 안되면 어쩔 수 없고…."


이미 분반을 신청했고, 또 분반의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이 돼서인지, 무르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학교 선생님이 결정하시는 일이라고 했다.

굳이, 분반의 완벽한 단점을 꼽으라면, 같은 교실에서 볼 수 있는 참관수업의 기회를 포기했기 때문에 남편이 휴가를 내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 왔다 갔다 하는 번거로움 있다는 것.

미주알고주알 학교생활을 말하지 않는 녀석들 덕에 알림장을 확인하지 않으면 정보 깜깜이가 된다는 것 정도인데, 몰라서 속 편할 때도 있고, 몰라서 답답한 것도 많지만 결국은 스스로 잘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만 굳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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