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텃밭
4월 말쯤 토마토 모종을 심었다.
작고 작은 토마토 모종 3개를 비닐봉지에 담아 오는 동안 가지가 부러질까 조심 또 조심하며..온이와 유, 아빠는 텃밭 상자에 흙을 붓고 토마토 모종을 심었다.
매일 하루에 열두 번은 더 토마토 키가 자랐나. 물을 더 주어야 할까. 를 고민하던 온이와 유는 분무기에서 물 뿌리게 그리고 결국 물호스까지 손에 잡아 베란다를 워터파크로 만들었다.
엄마의 샤우팅을 예상했던 온이와 유는 흠칫 놀라 그만하는 듯하다가 씩 웃어 보였다.
어떤 날은 흙으로 또 어떤 날은 물로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지만 이러자고 시작한 거니까 엄마는 화가 오르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게으른 엄마에게 부지런한 엄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흥건한 베란다를 허리 숙여 치우고 또 치웠다. 그러다가 출입금지 엄포를 놓기도 하고, 또 그러다 온이와 유 그리고 엄마는 셋이서 물을 주다가 베란다가 흠뻑 젖도록 물총놀이도 했다.
이런 난장판을 몇 번이나 했을까.. 한 뼘 길이에서 시작한 토마토 모종은 자라고 자라 곧 천장에 닿아 더 이상 위로 오를 수 없자 가지는 천장 옆으로 뻗어나갔다.
온이와 유는 천장에 구멍을 내주자고 했다. 그래서 토마토가 더 잘 자라게 그 김에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것처럼 황금알도 하프도 가져오자고 흥분하며 말했다.
"엄마 엄마 토마토가 천장을 뚫으면 우리도 타고 올라가요"
"우리 집 토마토는 나무야 나무"
엄마는 너희의 한 껏 올라간 목소리에 웃음이 났다.
엄마는 날마다 물을 주고, 가지가 부러지지 않게 지지대를 세웠다. 면봉과 붓으로 수정도 시켰다. 아빠는 토마토가 잘 자라도록 속아내고 잡초들을 뽑아주었다.
호수로 시원하게 토마토에 물을 뿌리고 나면 오늘처럼 비 오는 날 시골에서나 맡을 수 있는 풀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엄마 흙냄새 나요. 아 좋다."
"엄마 풀냄새 나~시골냄새 좋다."
"엄마 잘 때 토마토나무를 보고 잘 수 있어서 좋아요"
온이와 유는 집안에 퍼지는 냄새가 좋다고 했다. 엄마도 좋았다. 기분까지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온이와 유는 의자를 놓고 붓을 들고 수정을 시켰다. 그러다 꽃잎이 떨어지면 “어이고 불쌍해서 어떡해”하며 조심조심 꽃에서 꽃으로 붓과 면봉으로 콕콕 찍어 보였다. 수정을 이렇게 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참 열심히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완두콩만 한 것이 송알송알 열리더니 탐스런 청포도처럼 커졌다. 초록 가지마다 빨간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린 것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잘 익은 토마토를 따서 온이와 유는 니미락내미락 하다가 아빠 입 속으로 엄마 입 속으로 쏙쏙 집어넣었다.
아빠와 엄마는 토마토에게 어른이 할 수 있는 정성을 보였다면 너희는 토마토에게 여섯 살 형아가 할 수 있는 마음을 다했다.
유는 눈만 뜨면 베란다로 뛰어나와 "토마토야 사랑해"하며 토마토에 손가락 하트를 날렸고, 온이는 잎을 들여다보고 세심하게도 살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하면서 세상 나 혼자 밖에 모르던 때는 감히 짐작도 안됐던 마음들을 알게 됐던 것처럼 식물을 키우는 일 역시 그러했다. 그러면서 '내 엄마가 화초에 정성을 들였던 이유를, 화분을 가꾸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을 보면서 왜 마음이 들뜨고 가라앉는지, 열매를 맺었을 때의 기쁨이 어떤 건지' 하나하나 다시 배우는 기분이었다.
토마토 모종이 이렇게까지 클 수 있다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토마토를 기르는 정성과 기대한 적 없던 엄마의 청결함을 더 해서 일까 토마토는 무럭무럭 자라주고 있다.
참 기특하게도 특별하게 해주는 게 없는데도 잘 자라는 걸 보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 아이들이 자라는 것처럼 토마토도 그렇게 자라는 것 같았다.
여섯 살 너희에게도 그리고 엄마 아빠에게도 처음이었던 우리 가족 첫 베란다 텃밭에서.
기르고 수확하는 기쁨을 함께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