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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Sep 16. 2020

모두 제자리 모두 제자리 모두 모두 제자리

오전 8시 15분.

온이와 유 유치원 등원 시간.

어지간한 회사원 출근시간보다도 빠른 시간.

아침마다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온이와 유는 유산균에 물 한잔 꼴깍 삼키고, 밥숟갈 한 번에 양말 한 짝 신기고 또 밥숟갈 한 번에 티셔츠 한 장 입히고. 스스로 등원 준비를 하는 건지 등원 준비를 갖춰주는 건지 엄마 혼자 마음이 급한 건가 싶을 정도로 시간에 쫓긴다.

스스로 하는 습관이 생기게 스스로 하게 내버려 두고 싶지만 8시 10분에 엘리베이터를 타야 등원차량을 놓치지 않는데, 7시 30분에 일어나는 여섯 살 꼬맹이들을 무슨 수로 아침밥을 거르지 않고 준비를 시킬까..


사실 스스로 마음을 놓으면 불가능은 아니다.

'아침 뭐 한 끼 거른다고 뭐 큰일 나? 유치원 가면 우유 주는데' 이렇게 생각도 안 해본 것도 아닌데,

고작 몇 숟갈. 아침이라고 먹고 가도 등원하자마자 마시는 우유가 너무 차가워서 몸이 덜덜 떨린다는 아이한테 서두르며 등원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등원하는 모습을 차례로 보고, 정규수업이 시작하기까지 한 시간 이상을 교실이 친구들로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등원 시간이 빠르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빨리해" "늦었어" "서두르라고 했잖아" 말투에 온기라고는 없는 재촉하는 말로 아이들의 아침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양몰이하듯 보내고 나면 기운이 빠지는 건 둘째고 이렇게까지 해서 유치원에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고 텅 빈 듯한 집이 갑자기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조금 늦게 가더라도 아침부터 아이의 기분을 망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보면 온이와 유가 4살 때까지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눈 오면 눈싸움도 하다가 눈밭에 뒹굴다가 눈썰매를 타고,

비 오면 비 옷 입고 참방 거리다 다 젖어서,

날이 좋으면 꽃도 보고, 벌레도 잡고 동네 한 바퀴 돌며 세월아 네월아 등원했었다.

등원 시간이 이르면 10시 반이었으니 뭐 말 다했지..

하원도 마찬가지였다.


다섯 살. 유치원 차량을 타고부터는 등원차량 타러 가는 길에 강아지 또치에게 인사를 하거나 차량을 기다리며 화단에 있는 벌레를 잡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여섯 살이 되고 등원 차량 시간이 역대급으로 빨라지면서 아침을 아침답게 보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7시 30분에 일어나 느긋하게 아침밥도 먹고, 책도 읽고, 스스로 옷도 입고 집에서 한 시간 이상을 여유 있게 준비해서 라이딩을 해주면 오히려 나도 마음이 편했다.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 나는 그게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출근시간이 늦춰진 아빠는 온이와 유의 등원 준비를 도왔고, 등원 길도 함께했다.

뽀뽀하고 안아주고 잘 다녀오라고 손 흔들어주는 게 고작인데 그게 뭐라고 아침마다 행복했다.

어쩌다 등원차량을 타고 가는 날이면 "아빠 버스 따라와요" 하며 버스에 올라, 창문에 얼굴을 대고 버스 따라 오라며 손짓을 하고, 하트를 날렸다. 아빠는 온이와 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아침부터 노란 버스를 바라보며 게걸음으로 더 이상 쫓아갈 수 없을 때까지 쫓아가 손을 흔들며 출근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두 블록을 걸어가 신호등을 건너 더 이상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신랑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정말이지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등원 차량으로 배웅을 하는 건 고작 서너 번.

굳이 걸어가겠다는 신랑을 차에 태워 나 혼자 나의 로망을 계속해서 실현시켰다.

신랑을 지하철역에 내려주고 그 길에 온이와 유를 유치원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마치 다 다 이룬 것만 같은 행복감에 설레기까지 했다. 그래. 정말 내가 꿈꾸었던 게 이런 거였다.

코로나 덕분인지. 때문인지. 이렇게 일상에서 로망도 발견하고 실현하게 되었다.

한 동안 낙이었던 유치원 등원은 쉼표를 찍었고,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은 온가족 몸무게를 정점을 찍게 했다.

유치원 꾸러미를 가져다주시던 선생님은 "애들이 안 본 사이 키가 많이 큰 것 같아요"라고 인사치레를 했지만 나는 "먹기만 하다 보니 키라도 컸나 봐요."라고 진심을 말해버렸다. 말하는 사람도 말을 듣는 사람도 깔깔 웃었다.



여섯 살. 2학기라서 곧 있으면 7살이 된다고 좋아하는 너희에게

유치원비와 급식비를 다 내고도 유치원은 가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시켜줄 수 있을까.

온이는 아무리 설명해 줘도 코로나가 마치 미세먼지와 같다고 생각하는지

"엄마 아무리 봐도 오늘 날씨는 코로나가 지나간 거 같아요. 하늘이 맑아요."라고 한다.

미세먼지도 최악 중에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때가 꿈만 같고,

등원 시간이 너무 빨라서 속상했던 그때가 그래도 배부른 때였고, 지금은 그 마저도 꿈을 꾸어야 되는 게 믿을 수가 없다.


요즘 온이와 유가 정리할 때 곧잘 부르던 노래를 자주 되뇐다.

'모두 제자리. 모두 제자리. 모두 모두 제자리.'


언제가 될지 모를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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