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잘한기쁨 Sep 19. 2020

아줌마는 기분이 언짢다.

친구라는 이름의 동상이몽

갑자기 눈을 비비는 유를 데리고 안과에 갔었다. 알레르기 결막염이라기에 안약을 처방받고, 

돼지 소리를 내가며 코를 붙잡고 킁킁대기에 이비인후과도 갔다. 역시나 비염. 간 김에 며칠 전부터 코 밑이며 턱 밑 그리고 팔다리에 상처가 많아진 온이도 진료를 봐볼까 말까 하다가 봤더니 농가진.

후덥지근한 날씨에 온이와 유를 데리고 다니다 집에 들어와 내 몰골을 보니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우리는 상황이 다르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고, 또 그 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왜. 그날의 말투와 목소리톤 표정까지 빠짐없이 기억이 나는 건지.. 기분이 언짢다.


작년 3월.

유가 갑자기 열이 펄펄 끓었다. 애들 키우는 집에 하나씩 있다던 체온계로 열을 쟀는데 39.8 

해열제를 먹어도 39.0

하루 종일 버티다 저녁쯤 해열제를 먹고도 40도를 찍었다. 유는 끓는 열에 축 늘어지고 나는 마음이 타들어갔다. 119 의료상담 중 급하게 구급차를 보내주셔서 급히 응급실로 갔다. 여러 검사 끝에 독감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시간을 끌다 집으로 왔다. 그런데 집에 온 지 다섯 시간 만에 또 열. 결국 또 응급실.

두 번째 응급실에서는 아예 격리실로 이동해 하루를 꼬박 보내고도 입원실이 없어 이튿날 어린이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그 사이 언제 옮았는지 온이도 열이 끓는다는 전화를 받고 결국 온이와 유 둘을 데리고 1인실 온돌방에 입원을 했었다.


입원한 지 3일째 됐을 때는 열이 떨어지니까 온이와 유는 활기를 되찾고 주사 줄을 돌리고 뛰어넘고, 호기심이 폭발한 온이는 주사 줄로 미로 찾기 놀이를 하더니 주사 줄을 잘라 피가 솟구치고, 잠시라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친구는 서울에 온 김에 얼굴을 보고 가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

어떻게 메너 있게 거절할까 고민하다가 굳이 먼 거리까지 오겠다는 친구의 성의까지 거절할 수 없었다.


친구는 캐리어와 쇼핑을 마친 여러 가방을 어깨에 메고 입원실 안을 들어오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나와는 다른 이유로 많이도 지쳐있었다.

온이와 유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이모였고, 친구 역시 온이와 유를 처음 봤는데 벌써 다섯 살.

낯설다고 거리를 두던 온이와 유는 엄마와 다르게 반짝반짝 빛이 나는 이모에게 다가갔다.


"이모는 누구예요?"


"우리 아프다고 해서 우리 보러 온 거예요?"


"이모는 어디 갔다 온 거예요?"


"예술의 전당 갔다 왔는데?"


"거기서 뭐 했어요? 이모 뭐 타고 왔어요?"


"얘들아. 이모는 아이들이랑 놀 줄 몰라. 그래서 너희를 어른처럼 대할 거야."


"엄마 어른처럼 대하는 게 뭐야?"


예상치 못한 말에 말문이 막힌 엄마와 달리, 낯선 이모의 말에 온이와 유는 형님이 되었다고 이해한 건지 한껏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황당해서 눈만 껌뻑거리고 있다가 아차 싶어 온이와 유에게 말했다.


"엄마가 볼 때 이제 너희가 멋진 형아 같은데 이모가 볼 때도 그런가 봐. "


친구는 호텔에서 체크아웃하자마자 전시를 보고 또 바로 오느라 밥을 먹지 못했다고 했다. 배고픈데 뭐 먹을 것 없냐고 찾던 그 이모에게 나는 대접할 것이 없었다.

부랴부랴 병원 1층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캔커피, 라면.. 편의점에서 먹을 수 있는 흔한 요깃거리를 사다 날랐다.

'입원실에서 편의점까지는 5분도 안되는데 나는 왜 애들이 먹다 남긴 밥 한 숟갈. 두 숟갈로 며칠을 지내면 왜 사다 먹을 생각을 못했을까' 입 맛도, 먹고 싶은 것도 없었지만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으면서.. 편의접에서 물건을 고르면서 헛웃음이 났었다.

땅바닥까지 떨어지는 기분을 가까스로 붙잡고 오는 줄도 모르고,  봉지 가득 먹을거리를 사서 들어오는 나를 보자마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야, 티비에서 보면 애 엄마들이 다 목 늘어나고 소매 늘어난 옷 입고 있던데 너도 그러고 있네?"


"어?"


"아니 나는 드라마에서나 그런 줄 알았지. 진짜 이렇게 있는지는 몰랐지. 웃긴다"


둘을 데리고 혼자 발악을 하느라 집에서 부랴부랴 나온 그 모습 그대로 며칠을 보냈다는 걸 깨닫기도 전에, 

땅바닥에 떨어지는 기분을 줍기도 전에, 그녀는 내 기분을 구덩이 속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런데 거울 속 나는 그녀의 말처럼 목이 늘어나고 소매가 다 늘어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응급실을 드나들어서 그렇다고, 열나는 거 체크하느라 보초 서서 그렇다고, 아픈 애들보다 보니 입맛도 없고 피곤해서 그랬다고. 그래서 나는 나를 잊고 내가 다해야 할 역할만 생각했었나 보다고' 말할걸 그랬다.


열이 들끓는 유는 젖가슴을 만지려고 목으로 손을 집어 놓고, 온이는 팔을 걷어 팔꿈치를 만졌다. 이렇게 해서라도 애들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면 다행이니까 옷이 늘어나건 말건 중요한 게 아니었고, 내 꼴이 어떤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꼴을 하고도 창피하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창피한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중이었고, 또 아이들을 두고 엄마가 아닌 나를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말이 뭐라고 말문이 막혀서는 갑자기 거울에 비친 내 꼴이 너무도 처량하고, 나는 없는 내 모습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초라해지기까지 했다.


"이야. 너도 아줌마 다 됐다"


뒤돌아서서 싱글인 친구들과 했으면 더 좋았을 말들을 내게 꼭 했어야 했을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꼴이 우습다고, 사람까지 우스워진 건가?

배려나 이해를 바란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지 않나?

화가 났어야 되는데 갑자기 울고 싶어 졌고, 울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누르자 갑자기 숨고 싶어 졌다.

강산이 변하고 또 변해갈 만큼 가깝게 지냈던 그녀에게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으려면 도대체 어떤 큰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깟 말에 상처를 받고 말았다.

그런데도 나는 왜 말을 그 따위로 하냐고 말하지 않았다.

어쭙잖은 이해나 사과를 받고 싶지 않았고, 이렇게 무례한 그녀를 그동안 친구로 곁에 두고 있었던 내가 얼마나 멍청했는지 알게 된 걸로 충분했다.


그녀는 이 모든 말을 웃으면서 했고 심지어 재미있어했다.

그래. 농담이니까 같이 웃어 보기로 했다. 실없어 보이기로 했다.


"완전 리얼하지? 애엄마의 라이브. 힘들기로 따지면 역대급인데 제대로 봐서 다행이네"


그 와중에 편의점 음식 말고 밥이 먹고 싶은데 방법이 없냐던 그녀한테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은 온이와 유가 손도 안 댄 병원식을 주는 것이었다.

친구는 밥뚜껑을 열고 3찬을 골고루 숟가락에 얹어 야무지게 먹었다. 식판의 대부분을 다 비우고 자리 좀 비켜달라던 친구는 아이들을 한쪽으로 몰아내고 누웠다.


"이모 비켜주세요. 나도 누울 거예요"


"이모 일어나세요. 이모 일어나세요"


"엄마 이모 이제 좀 가라고 하면 안 돼? 이모 왜 왔어?"


"엄마 이모 좀 깨워. 내 밥도 이모가 다 먹고, 내 자리도 이모가 누워 있고. 이모 미워 이모 가라고 해"


"이모가 온이랑 유 보려고 멀리서 왔는데 조금 피곤했나 봐 우리가 이모 일어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줄까?"

슬금슬금 올라오던 짜증을 애써 누르며 애들을 달랬다.


"이모는 진짜 너무해"


아니. 아무리 결혼을 안 했어도, 애가 없어도 이 건 모든 핑계를 넘어서 예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이 입원을 했다는데, 애들은 괜찮냐 너는 안 힘드냐라고 물어보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그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다치자, 그런데 링거 줄까지 꼽고 있는 애들을 밀어내고 그 좁은 병실에서 낮잠까지 잤어야 했나. 염치가 없는 걸까? 생각이 없는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도 미칠 것 같았다. 화가 나서.


나는 그만 좀 일어나 보라고 깨웠다. 나른한 표정으로 겨우 눈을 뜨더니 그녀는 차 시간이 다 됐다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떠났다.

밥 먹고, 한숨 자고 차 시간에 맞춰 적당히 시간 때울 곳이 필요했던 그녀에게 나를 보러 와주었다는 착각을 거두었다. 그리고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그녀는 연락이 없고, 안타깝게도 나도 연락할 마음이 없다.

쓰다 보니 요즘 말로 주작 같고, 또 쓰다 보니 슬금슬금 화가 오르려는 것 보면 결혼을 하고 아이 엄마가 된 나와 여전히 화려한 아가씨인 그녀 사이에 간격, 사는 방식, 생각까지 예전의 우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친구라는 이름의 동상이몽은 그렇게 끝이 났다.

작가의 이전글 모두 제자리 모두 제자리 모두 모두 제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