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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Dec 17. 2020

형제애가 폭발했다.

온이의 오른쪽 눈이 조금 부어 보였다.

시도 때도 없이 상하좌우 돌아가면서 다래끼가 나서 고생했던 탓에 다래끼라고 하면 징글징글한데 온이의 눈에 그 징글징글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싹을 잘라버려야 할 것 같아 다래끼 시작부터 항생제와 안연고를 넣었는데도 콩알처럼 딱딱한 다래끼는 없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항생제를 일주일을 먹고도 안돼서 다니던 병원에 갔더니 농이 차있어서 온찜질로 없애는 건 이미 틀렸고, 째서 긁어내야 한다는 것.

아무리 팔다리를 붙잡는다고 해도 도라질 한 번이면 다래끼 제거는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이 뻔했다.

의사 선생님도 마취를 하고 긁어내자고 하셨다.

아침 8시까지 병원으로 오라는 말에 조금 더 늦었다가 출근시간에 묶여 시간을 놓칠까 조금 서둘러 6시 40분에 출발했다.


전날부터 금식한 온이는 두려움에 덜덜 떨고, 덩달아 금식한 유는 배고픔에 덜덜 떨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온이는 잔뜩 겁을 집어 먹고 애처롭게 울었다.

그런 온이를 달래느라 유를 챙기지 못했다.

배고프다는 유에게 조금만 참으라고 했고, 심심하다는 유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서성이는 유에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고, 나는 온통 신경이 온이에게 쏟아져 유에게는 계속 부정적인 말만 하고 있었다. 그냥 부정적인 말만 한 게 아니었다. 애달픈 마음이 생기니 조급한 마음도 생기고 불안한 마음도 커졌다. 그러니까 당연히 인상도 찌푸렸을 거다.

유를 채근하면서 '아 내가 잘못하고 있구나' 느끼면서 동시에 둘을 데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유에게 이해와 양보를 기대했다.

엄마라는 사람의 그릇이 얼마나 작은지 절실히 깨달으면서..


마취에서 깬 온이는 온몸을 덜덜 떨었고, 아프고 무서웠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지듯 울음을 터트렸다.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따가운 일일 텐데 여섯 살 너에게는 대단히 아픈 일이라 대신 아파 줄 수 없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그런 마음을 유는 알기라도 하는 듯 온이를 보며 최선을 다해 웃기기 시작했다. 시키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과장된 웃음으로 아주 큰 소리로 숨넘어가듯 웃어 보였다.

그런 유를 보면서 온이는 그만하라고 소리 내 울다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더니 울다가 웃었다. 천금 같은 웃음소리를 들은 유는 이제 엉덩이에 뿔도 나겠다며 깔깔거렸다.

익살스럽지만 감동적인 유의 모습을 보고 미안함과 고마움이 밀려왔다. 나는 그런 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싸우기 바쁜 요즘 보기 힘든 형제애였다.



수납도 하고, 약도 타고,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강변북로를 타고 양화대교로 빠지는데 갑자기 네비가 멈추었다.

유턴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돌아가더라도 안전하게 가자 싶어 일단 직진.


온이는 꾸벅꾸벅 졸고, 유는 창밖을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엄마 아까 지나간 길을 왜 또 지나가요? 아까는 저쪽으로 갔는데 지금은 이렇게 가고 계속 같은데 아니에요? 엄마 동네 구경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신호를 아무리 깜빡여도 그 많은 차들이 끼워주지 않아서 직진을 했다고..' 말하지 못했다.

홍대를 돌아 연남동도 한 바퀴 때 아닌 동네 구경도 하다가 양화대교로 넘어오자 긴장이라는 게 조금 풀렸다.


백밀러에 비친 유에게 "사랑해"라고 하자,

유는 잔뜩 서운한 표정으로 손가랑 하트를 그리더니 곧장 팔을 뻗어 큰 엑스자를 그렸다.


"엄마는 유를 정말 많이 사랑해"


"아니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 같아"


"서운했지? 엄마가 온이만 안아주고 온이만 챙기는 것 같아서 많이 서운했지? 미안해.. 엄마가 오늘 많이 걱정했거든. 아빠는 출근하시고 온이는 잠들어서 하는 수술 하느라 걱정 많았는데 그래도 유가 엄마 옆에서 힘들었을 텐데 잘 기다려줘서 고맙고, 엄마 많이 도와줘서 정말 고마웠어"라고 말하자 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실 나도 온이가 마취에서 완전히 깨고 울음이 멈추고 나서야 약간의 긴장이 풀렸고, 그때서야 주눅 들어있는 유의 모습이 보였다.

온종일 미안했다.

나는 유의 마음을 어떻게든 다독이고 싶었다. 그래서 퇴근하고 돌아온 신랑을 보고 목소리 톤을 높여 흥분하듯 이야기했다.


"아빠 그거 아세요? 오늘 유가 얼마나 형님 같았는지 엄마가 엄청 고마웠다니까요. 온이 신경 쓰느라 엄마가 유를 챙기지 못했는데도 스스로 하고, 또 의젓하게 기다려주고, 온이도 달래주고 엄마가 너무 고마웠어요."


"사실 엄마가 온이랑 수술 갔을 때 혼자 있는 거 무섭고 싫어서 나가고 싶었는데 나 꾹 참았어"


"그랬지? 우리 유 엄마가 알아.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서 너무 힘들었는데 함께 와줘서 고맙고, 온이 마취에서 깨어나라고 웃겨주는 거 보고 엄마 엄청 든든하고 고마웠어. 그리고 있잖아 엄마가 또 많이 미안했어 엄마가 정신이 없어서 유를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화만 낸 거 같아서. 미안해"


"내가 온이 수술하고 깨어날 때 아플까 봐 일부러 엄청 웃겨준 거야."


"엄마가 알지, 엄마는 우리 유 표정만 봐도 아는데 고마워 유야 오늘 엄마가 유 덕분에 많이 힘났어. 고맙고 사랑해. 많이."

 

누구도 서운하지 않게 동시에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여전히 어렵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누구도 섭섭하지 않게 나누어야 할 것이 많은 온이와 유.

그래서 티 나게, 보이지 않게 경쟁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 마음이 아프고,

또 그걸 요령껏 해결해주지 못해서 짠하다.

서로가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니라, 서로를 보듬어야 할 사이라는 걸 오늘처럼 조금씩 알아가겠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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