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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Dec 05. 2020

옷걸이 하나 부서진 게 뭐라고

옷걸이 하나 부서진 게 뭐라고 나는 그날 밤 화가 솟구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잠자기 전 양치질을 하던 유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엄마 오늘 내가 유치원에서 옷걸이에 옷을 걸다가 옷걸이가 부러졌는데 선생님이 물어내라고 했는데, 근데 나중에는 괜찮다고 했어. 다행이지?"


'아니 뭐가 다행이지?

두꺼운 겨울옷을 걸다가 플라스틱 옷걸이가 부러졌으면 날카로운 파편이 튀지는 않았는지, 다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는 게 먼저가 아닐까'라는 생각 들었다.

아마 나였다면 그랬겠다. 엄마여서가 아니라, 옷걸이를 부러뜨린 아이는 당황했을 거고, 어쩌면 바닥으로 부러진 옷걸이의 일부가 바닥에 떨어져 발을 다칠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몇 번을 생각해봐도 엄마인 내가, 어른인 나도, 그렇게 생각이 드는데 왜 선생님은 그러지 못했나 하고 생각할수록 감정이 섞여 화가 났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짜고짜 물어내라니..'


"옷이 무거워서 걸다가 부러졌어?"


"응"


"날씨가 추워지니까 옷이 두꺼워지고 플라스틱 옷걸이는 힘이 약하니까 잘 부서질 수도 있지.. 다치진 않았어?"


"응"


"다행이다. 부서진 건 잘 주워서 선생님 드렸어?"


"응"


"안 다쳐서 다행이다. 근데 다음번엔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루자. 옷걸이가 부서져서 선생님도 속상한 마음이 커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야."


"네"


곱씹고 곱씹어 봐도 '물어내라는 말'은 아무래도 잘못된 말이었다.

유치원을 보내면서 늘 감사하다고 했었다. 말 그대로 믿고 맡겼고 즐겁게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이번에는 엄마가 화났다고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아이를 통하는 방법이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유야, 선생님이 속상해서 물어내라고 하셨잖아. 그러면 물어 드리는 게 맞는 거 같아.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사러 갈 수도 없고, 우리 집에 있는 어린이 옷걸이 중에서 제일 깨끗한 걸로 갖다 드리고 다음부터는 조심하겠다고 말씀도 드리고"


유는 갑자기 서러운 눈물을 쏟았다.

엉엉 울었다. 한 30분을 꺽꺽 소리 내며 울었다. 


"옷걸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물건을 망가뜨리면 물어주는 게 맞아. 그러니까 속상해도 그렇게 하자."


유를 통해 엄마의 감정이 전달되고 있다는 거 알면서도 나도 고집을 피웠다.



이튿날.

담임선생님이 연락이 왔다.


"어머님, 유가 오늘 옷걸이를 가지고 왔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방에 넣으라고 했어요" 나는 화가 났는데 선생님은 하하 웃으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네. 잘 받으셨는지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어요. 제가 선생님 갖다 드리라고 했어요."


"아. 그러셨구나."


"네. 선생님께서 옷걸이가 부러졌으니 물어내라고 하셔서 일단 보내드린 거예요. 근데 저는 그 상황에 없었고, 전해 들은 거라 오해가 있을 수 있겠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플라스틱이 깨져서 바닥에 떨어졌으면 다치진 않았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고, 그다음에 주의를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 네.. 그렇죠"


"선생님께서 물어내라는 말을 농담으로 하셨는지, 아니면 안 하셨는지, 선생님의 표정 말투 어떤 것도 저는 알 길이 없지만 아이 입에서 물어내라고 말을 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네.. 제가 조심했어야 했는데.."


"선생님 유가 덜렁거리고 장난기가 있는 건 저도 잘 알아요. 그런데 아이가 느낀 게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가 오해하고 있는 거면 말씀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아,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행동을 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아이들 편에서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내 입장에서도 이렇게 말하는 게 쉬운 건 아니었다. 기관에 보내면서 언제나 말 그대로 '을'이었고, 괜히 말하고 나서 밉보이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고, 또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아쉬운 소리 한 번 할 수 없었다.

원에서 무얼 했는지, 누가 칭찬 친구였는지, 어떤 반찬이 나왔는지, 어떤 놀이를 했는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늘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아이의 말을 듣다 보면 원 생활의 큰 그림이 그려지고 대략적인 반 분위기나 선생님의 스타일까지 가늠하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황이 예측이 되고, 이해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농담이었다 해도 썩 유쾌하진 않았을 텐데, 유가 말하는 그날의 분위기나 표정 말투는 의미를 담지 않고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어쨌거나, 이런 일로 대화가 오가는 건 정말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상처 받는 아이 마음을 보듬는 것도,

화나는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고민하고 드러내는 것도,

너무 힘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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