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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잘한기쁨 Dec 25. 2020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얘들아 산타할아버지한테 편지 쓰자 그래야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시지"


"맞아! 옛날에 내가 산타할아버지한테 갖고 싶은 거 편지 썼는데 산타할아버지가 편지를 늦게 봐서 다른 거 줘서 엄청 속상해서 나 울었어."


그 꼬꼬마 때를 기억하고 있다니.. 말 그대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아. 그때가 생각나?"


그런데 온이는 네 살 때 기억을 끄집어내며 말했다.

"옛날에 내가 좀 아기였을 때. 그때 산타할아버지가 원하는 선물을 안 주셔서 내가 엉엉 울었잖아!"


그랬다. 그때 온이는 숨이 넘어가라 펑펑 울었다.


어린이집에서 산타 이벤트를 준비했었다. 선생님들께서는 노래와 율동을 해주셨고, 산타할아버지는 빨간 자루에서 선물을 꺼내 주셨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했고, 어린이집 친구들이 한데 섞여 마치 동네잔치인 듯 군집을 이루었다.  

산타할아버지가 이름을 부르자 유는 쭈뼛쭈뼛 나가서 선물을 받아왔다.

그런데 그때 그 많은 아이들 중 온이만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산타할아버지가 주시는데 받아야지"


"싫어요"


아무리 등을 떠밀어도 버텨내더니, 받지 않겠다는 선물을 산타할아버지가 손에 선물을 쥐어주려고 하자 주먹을 꼭 쥐었다. 그런 온이의 손에 덥석 선물을 얹자 온이는 엉엉 울었다. 마치 꾹 참았던 울음을 폭발하듯 한참을 소리 내 울었다.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시키고 진정이 되고서야 물었다.


"온이야 무서워서 눈물이 났던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산타할아버지한테 편지 썼는데 내가 갖고 싶은 게 아니었어. 그래서 너무 속상했어."


"그랬구나. 일찍 자면 산타할아버지가 온이가 쓴 편지랑 선물 가지고 오실 거야. 우리 내일 기다려보자."


"근데 왜 산타할아버지는 내가 갖고 싶은 걸 안 주시고 마음대로 주셨을까?"


애가 닳도록 기다렸는데, 원하지 않은 선물을 주신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숨 넘어갈 듯 울던 온이는 이튿날 선물을 보고 세상 전부를 가진 표정을 보였었다.


산타에 대한 기억이 각인되었던 네 살, 그리고 다섯 살 때 받은 선물이 뭔지 줄줄이 읊어댔다.


"네 살 때는 산타할아버지가 처음에 내가 원하는 거 안 주셔서 울었는데, 다섯 살 때는 우리가 브롤 스타즈 딱지 갖고 싶다고 편지 썼는데 진짜 양말 가득 주셨어. 근데 있잖아. 또 산타할아버지가 톡톡 찍는 물감도 주셨어."


"그걸 다 기억하고 있어?"


"응. 근데 엄마도 산타할아버지한테 전화할 수 있어?"


"아니"


"우리 반 선생님이랑 원감 선생님은 산타할아버지한테 전화할 수도 있대."


"어? 우리 반 선생님도 전화할 수 있댔는데!"


"우와! 진짜 멋지다. 엄마도 전화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그건 몰라 선생님이 남극에 전화를 해야 된대."


"엄마는 남극 전화번호 몰라?"


"응 모르는데.."


"그러면 엄마도 편지 써서 엄마가 갖고 싶은 장난감 꼭 달라고 편지 쓰면 되겠다."


"온이는 뭐 갖고 싶어?"


"나는 아이언맨 레고!"


"유는?"


"나는 동생!"


"산타할아버지가 우는 아기 인형 주시겠는데?"


"아니 인형 말고 진짜 아기 말이야 내 동생. 엄마가 응애응애 아기를 낳는 거야!"


"음.. 산타할아버지가 응애응애 아기를 데려오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와야 돼. 그리고 선물 자루도 들어야 되고 사슴도 끌어야 되는데 아기를 어떻게 안고 오지.. 아기도 춥겠다."


"맞다 아기는 마스크도 못쓰는데 코로나 걸릴 수도 있겠다. 어떡하지 난 꼭 아기 동생이어야 되는데 그럼 준서 내 동생 하면 안 돼?"


"응. 그건 안될 거 같아"


"맞다. 아기가 코로나 걸리면 큰 일이잖아. 그럼... 보트킹!"


"오 그래 그게 좋겠다."


보트킹이 뭔지 모르겠지만 셋째 출산보다는 현실적이었다.


"엄마는 어른인데도 주실까?"


"응"


"근데 온이랑 유는 받을 수 있을까?"


"응"


"산타할아버지가 다 보셨을 텐데, 싸우는 모습도 떼 부리는 모습도.. 어떡해?"


"아.. 안 주시면 어떡하지."


"그럼 엄마가 편지에 엄마는 안 주셔도 되니까 온이랑 유 선물은 꼭 달라고 편지 쓸게."


"아니야. 엄마가 갖고 싶은 장난감 써도 돼. 우리가 만약에 많이 싸워서 안 주시는 거면 어쩔 수 없지. 대신에 달님한테 기도는 해줘"


"우리 편지 꼭 보시고 꼭 선물 주시라고 말이야"


"근데 엄마 생각에는 너희 예쁜 마음까지 다 보고 계시니까 주실 거 같아."


"진짜? 그러겠지?"


"응"


"근데 엄마 우리 집이 아주 꼭대기층이니까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1등으로 오시겠다 그렇지? 제일 먼저 선물 주고 가시겠다!"


"어! 진짜 그러겠다! 우와 너무 좋다!"


아이들과 편지를 쓰면서 맞장구도 치고, 동심에 바람도 넣었다.

혹시나 선물을 못 받게 될까 걱정하던 온이와 유는 퇴근하고 오신 아빠를 보자마자 세상 밝은 표정으로 편지를 내밀었다.


"아빠. 이 거 봐요"


"이게 뭐야?"


"산타할아버지한테 편지 썼어요!"


"우와.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시겠는데?"


"응 우리 집에 1등으로 오실 수도 있어요! 우리는 굴뚝으로 안 들어와도 되고 제일 꼭대기잖아!"


"아니 우리가 싸워서 안 가져다 줄 수도 있대. 그러니까 아빠가 마트 가서 그냥 사주면 안 돼요?"


선물을 못 받게 돼도 괜찮다며 엄마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편지에 쓰라더니 이렇게 아빠 찬스를 쓰게 될 줄이야..

선물을 못 받을 수도 있단 생각에 대안을 찾은 거라면 찾은 건데.. 조금 똑똑해졌다고 할까, 세상 물정을 깨달았다고 할까.


먼저 일어난 아빠가 온이와 유를 불렀다.


"어? 얘들아. 크리스마스 트리에 뭔가 있는 거 같아!"


엄마가 보기엔 아빠 목소리는 연기톤인데 온이와 유는 진정성이 느껴진 듯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틀거리며 거실로 걸어 나갔다.

곧이어 소란스럽고 흥분된 목소리가 들렸다.


"우와 내가 편지에 썼던 게 진짜 있어요."


"우와 또봇 보트킹이다!"


"오! 아이언맨! 엄마. 엄마가 우리 선물 달라는 기도 들어주신 거 같아요! 진짜 있어!"


크리스마스가 뭔지, 산타가 뭔지도 모르지만 선물 포장지도 뜯고, 풍선도 주니까 좋았던 세 살.

갖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지 그중에 하나를 골라내기가 어려워 이틀에 한 번 꼴로 받고 싶은 선물이 바뀌더니 크리스마스이브 때까지 바뀌는 바람에 결국 화곡동 장난감 도매상까지 갔었던 네 살.

브롤 스타즈가 뭔지도 모르는 녀석들이 놀이터 형아들이 하는 걸 보고선 갖고 싶었던 다섯 살.

그리고 원하는 아기 동생은 아니지만 변신로봇과 레고를 선물 받은 여섯 살 오늘.


오늘을 손꼽아 기다리던 너희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너희의 동심이 너무 예뻐서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너희의 모습이 예뻐서

설레고, 행복하고, 기대했던 너희의 오늘이 엄마에게도 선물이 되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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